(※이 글은 「학교도서관저널」2015년 11월호에 실린 “테마도서전시 – ‘노동’을 이야기 하는 책들”을 재정리했습니다.)

초-중-고를 막론하고 ‘진로 교육’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는 시기이다. 2016년에는 전국의 모든 중학교에 자유학기제가 도입됨에 따라 ‘진로‧직업’에 관한 활동이 더욱 강조되고, 또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내가 평생에 걸쳐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지 끊임없이 ‘탐색하고, 체험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런 ‘진로’ 교육과 더불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노동’에 대한 교육이다.

‘진로’를 정하고 ‘꿈’을 쫓으라는 말을 수없이 들으며 학교 문턱을 나와 성인이 되었을 때, 많은 이들이 마주하는 건 더 이상 ‘진로’라는 추상적인 언어가 아니다. ‘취업’이고 생계를 잇는 ‘일’ 그 자체이며, ‘노동’으로 일컬어지는 현실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시행하는 ‘진로’ 교육은 오로지 꿈과 직업을 찾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10대 학생들도 경험하는 알바 노동, 노동 현장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문제, 부당한 고용 조건, 노동의 의미와 가치, 권리 등 어떤 진로와 직업을 택하기까지의 과정이나 그 이후에 경험할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와 근원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나중에 일을 하면서 직접 부딪치라 말해야 하는 걸까?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라는 무시무시한 성경 구절이 암시하듯 일하지 않고 돈을 벌고 삶을 영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물론 있기는 있다!) 살아간다는 말에는 ‘일한다’는 의미가 이미 들어가 있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하고 있고, 오랜 시간동안 해야 하며, 매일매일 벌어지는 “노동”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책들을 골라 보았다. 쉬운 책도 있고, 어려운 책도 있고, 재밌는 책도 있으며 무겁게 가라앉는 책도 있다. 책을 읽는 상황과 기호에 따라 골라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그림으로 읽는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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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책 | 앤서니 브라운 글,그림/허은미 역 | 웅진주니어 | 2001

세계적인 동화작가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은 대개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다루어지곤 하지만 여기서는 ‘노동’이라는 측면에 집중하고 싶다. 어느 날, “너희들은 돼지야”라는 메모와 함께 모든 가사 노동을 가족들에게 넘기고(파업하고) 떠나버린 엄마. 언제나 여성의 전유물로 인식되고,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가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이 책은 단지 유아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집안일은 ‘노동’일까? 집안일은 누구의 것일까? 같은 질문을 던져볼수록 이야기는 풍성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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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청소 노동자예요! | 다이애나 콘 글/프란시스코 델가도 그림/마음물꼬 역 | 고래이야기 | 2014

초등 저학년 아이들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그림책이다. 200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벌어진 8,000명의 청소노동자 파업 실화를 바탕으로 한 책으로, 아이들에게 ‘파업’이 무엇인지 노동 약자와 노동의 권리가 무엇인지 쉬운 언어로 설명하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다. 멕시코 출신의 화가가 그린 삽화 역시 매력적이다.

 

‘노동’을 다룬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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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 로버트 뉴턴 펙 저/김옥수 역 | 사계절 | 2005

이 작품은 대표적인 성장소설로 분류된다. 열두 살에서 열세 살이 되는 로버트의 성장을 지켜보는 동안, 로버트 아버지의 ‘노동’은 매우 거칠고, 때로는 잔인하지만 로버트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각 건물과 스마트폰 밖 세상의 오래된 단면을 보여주는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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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무지개 | 최인석 저 | 한겨레출판 | 2014

2100년대를 배경으로 그려낸 자본주의의 민낯. 쳇바퀴 돌리듯 살아가는 일상, 언제든 해고로 몰릴 수 있는 불안정한 고용 현실, 안락한 삶으로 가장한 ‘감시’ 사회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바로 ‘지금’ 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

“비참한 삶 가운데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슬픔과 좌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 하는 삶, 감당해내야 하는 세계, 그런 자세.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난 시시포스나 프로메테우스 같은 존재를 본다.” – 작가 인터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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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베트남 | 카롤린 필립스 저/정지현 역 | 검둥소 | 2010

베트남의 열네 살 소녀 ‘란’이 운동화 공장에서 일하는 동안 겪는 부당한 착취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 제 3세계 아동 청소년 노동 현실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베트남의 전통과 문화 또한 엿볼 수 있다. 나의 소비가 지구 저 먼 곳의 또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르포르타주 ․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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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원 인생 | 안수찬,임인택,임지선,전종휘 공저 | 한겨레출판 | 2010

시사 주간지 <한겨레 21>의 기자들이 직접 서울 갈빗집과 인천 감자탕집, 서울의 한 대형마트, 경기도 마석 가구공장, 안산 난로공장에 취업하여 현장의 노동 경험을 꾸밈없이 전한다. ‘비정규직’ 이라는 무색무취한 집단이 아닌, 한 명 한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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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들의 유쾌한 반란 | 권문석 · 박정훈| 박종철출판사 | 2014

이른바 “알바”들을 조직하고, ‘최저임금 1만원’ 인상 운동에 주력해 온  알바연대, 알바노조가 그간의 활동과 여러 사례를 담아낸 책. 생생한 현실 폭로와 함께 ‘최저임금 1만원’이 왜 중요하고, 필요한 지를 설명하고 있다. 10대 청소년들의 주된 노동 형태가 ‘알바’라는 점을 두고 볼 때 꽤 도움이 될 만한 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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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안건모 저 | 보리 | 2006

이 책은 저자가 20년 동안 버스 운전사로 생활하며 쓴 일터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버스 운전을 하며 만난 변호사, 식당 아주머니, 그와 함께 생활한 둘레 사람들 이야기를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과 일하는 사람들의 구어체로 거침없이 적어 내려 술술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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