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와 달리(?) 술꾼으로 소문난 데다 음악까지 좋아하니 음주와 음감은 일상이나 마찬가지였다(과거형이며 가무는 절대 포함되지 않는다). 사정이 이러해서 취중에서 찾는 노래를 열곡만 고르기란 한 해 동안 맥주를 열병만 마시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실은 앉은 자리에서 그 정도 이상은 마신다). 물론 음악-바에서 막상 신청곡을 쪽지에 적으려고 볼펜을 들고나면 어찌된 일인지 좀처럼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긴 하지만 말이다.

여기에서 ‘술 마시고 듣는 노래’라 함은 적당히 분위기를 돋우려 하거나, 새로운 음악을 지인들에게 권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성을 상실하고 감성과 추억에 충실해진 상태에서 듣고 싶어 하는 (나에게는 뻔한) 음악을 말한다. 그런 상태에서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엘에이 건스(L.A. Guns)의 <Crystal Eyes>와 같은 추억의 헤비메탈 발라드라든가, 익스플로전스 인 더 스카이(Explosions In The Sky)의 곡들처럼 감성에 충실한 음악을 찾기 마련이고, 개인적인 공간에서는 시나위의 <겨울비>를 들으며 추억에 빠져 청승을 떨곤 한다. 근래에는 윤영배의 <선언>과 <위험한 세계>, 혹은 권나무의 <이건 편협한 사고>처럼 아름다우면서 사회적 의미가 있는 노래들의 감동을 몸을 추스르지 못한 채로 되새기곤 한다.

지금부터 하나씩 써내려갈 열 곡은 보편성, 그러니까 ‘나도 좋아한다’는 동의를 구하거나, 최소한 ‘들어보니 좋다’는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음악이라는 기준에 부합하는 음악이다. 그리고 당연히 지금 이 글도 목적에 충실하기 위하여 살신성인의 자세로 술을 마시며 쓰고 있다.

1~2. 리메이크로 듣는 <Superstar><Hu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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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많은 밤을 함께 보낸 소닉 유스(Sonic Youth)의 <Superstar>는 1959년에 발표된 딜레니 앤 보니(Delaney & Bonnie)의 원곡을 1994년에 다시 태어나게 했다. 그것은 완벽한 배반이었고, 성공한 변신이었다. 전혀 다른 색깔의 페인트로 칠한 덧씌움(cover)이었다. 원곡조차 스스로 발견하지 못해 감추어질 수밖에 없었던 매력을 자기네 방식으로 끄집어냄으로써, 발견을 넘어 발명해냄으로써, 아예 전복해버림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 대표사례이다. 더구나 많은 이들과 밤을 함께 하면서 또 하나의 ‘오리지널’이 되고 말았다.

 

Sonic Youth – ‘Super Star’

 

컨트리 음악의 대부이자 선행(先行) 음악가인 자니 캐시(Johnny Cash)는 나이 들어 디페시 모드(Depeche Mode)와 스팅(Sting) 그리고 비틀즈(The Beatles)의 곡들을 불렀다. <Hurt>를 원주인인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가 연주할 때 와 자니 캐시의 눈주름 사이사이에서 음성이 배어나올 때, 놀랍게도 노래의 의미 자체가 확연히 달라지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Johnny Cash – ‘Hurt’

3~4. <비 오는 밤><챠우챠우>에 관한 가설

보너스 트랙은 단지 추신 정도일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한국 인디음악의 전설인 코코어(Cocore)의 데뷔앨범 [Odoe](1998)의 히든트랙은 특별했다. 어떤 전형을 따르며 애잔한 분위기로 흐르는 중에 지극히 자연스레 튀어나오는 “너는 어디에, 밥은 먹었는지”라는 노랫말이라든가, 자세히 들어보면 (연인이 아니라) ‘집 나간 개나 고양이’에 대한 걱정이 아닌가 싶은 이야기, 그럼에도 충분한 서정을 간직한 곡이 <비오는 밤>이다. 발표 당시에 제목도 표기하지 않았던 이 곡은 슬로우 템포의 서정가요 혹은 록발라드의 관성화한 기법을 따르면서도 소재를 비틀어버림으로써 전형성으로 전형성을 반박해버린 건 아닌가 싶다.

아마 적지 않은 청춘들이 괜히 들떠 있었던, 한국에서 인디음악이 발흥하던 1990년대 무렵의 바람이 깃들어서겠지만, 어딘지 촌스러운 이 곡은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아련하고 통쾌하다. 그래선지 <비오는 밤>은 그 후에도 꾸준히, 가끔은 손에 맥주잔을 들고 책상에 다리를 길게 올려놓고 누운 자세로 듣곤 한다. – 그런데 앞에서 말한 이 노랫말의 해석은 엉터리일 수도 있다.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코코어 – ‘비오는 밤’

델리 스파이스(Deli Spice)의 데뷔앨범 [deli spice](1997)에 실린 <챠우챠우> 또한 한국 인디음악을 대표하는 명곡의 반열에 올랐다. 그런데 이 곡과 큐어(The Cure)의 <Disintegration> 사이에는 표절논란까지 불거질 정도의 유사성, 그리고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너의 목소리”가 지칭하는 대상에 대한 가설을 하나 가지고 있다. “너의 목소리”는 풍문처럼 평론가라든가 챠우챠우라는 견종의 ‘개소리’가 아니라 창작자로서 단호히 거부해야 하지만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 즉 또 다른 음악인 큐어였을지도 모른다. – 물론 지금까지 말한 것도 엉터리일 수 있다.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델리스파이스 – ‘챠우챠우’

5~6. 십대 이후를 함께 한 <그녀의 웃음소리뿐><옛사랑>

“아, 이 곡이 벌써 10년(20년, 30년, 40년)이 되었나?” 이런 말을 얼마나 자주 하는가에 따라 나이 먹음을 자가진단 할 수 있다. 어쩌다보니 ‘이 곡이 벌써 30년…’과 같은 탄식(?)을 하는 정도의 나이가 되었다. 아직 ‘이 곡이 벌써 40년…’은 무리인데 태교음악이나 유아기에 신곡을 들었을 리는 만무하니까…. <그녀의 웃음소리뿐>은 중학생 때에, <옛사랑>은 고등학생 때에 나온 곡들이다. 그 무렵이 중요했고, 그 때에 만난 사람들이 중요했기에 기억창고 안에서 이 노래들과 만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세상 여기저기에 숨겨진 보물들은 대체로 찾는 노고에 비하면 그다지 가치가 없어 보이기 마련이지만, 예외가 있다면 이 노래들이다.

이문세 3집부터 7집까지 다섯 장의 앨범들에 실린 노래 전곡을 외워 부르고, 학교 앞 서점에서 참고서에 끼워주던 ‘이문세 코팅 책갈피’를 한 다발 모아 벽 위에 내 이름을 만들어 붙여놓을 정도였다. 그 정도의 ‘광팬’이었다고는 해도 <그녀의 웃음소리뿐>을 말하는 것은 수록곡 모두가 훌륭한 [이문세 4]의 (<어허야 둥기둥기>를 제외하면) 맨 마지막에서 당시로선 상당한 시간인 6분 40초에 달하는 대곡이고, 발표 후 수년이 지나서도 라디오 순위의 상위권을 유지했기 때문이 아니다. 완벽했기 때문이다. 록을 대동한 가요-팝인 <그녀의 웃음소리뿐>은 편곡과 악기 편성, 곡의 진행과 연주, 리드보컬과 코러스에 이르기까지 완결성을 지녔다. 한 세대가 흘러버린 지금도 <그녀의 웃음소리뿐>이 완벽한 곡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고, 그 시절과 지금의 감상․감정은 거의 일치한다. 음악의 동시성에 대한 확답이다.

이문세 – ‘그녀의 웃음소리뿐’

의아한 면도 있다. <안개꽃 추억으로>(5집, 1988), <다시 만나리>(6집, 1989), <풋잠 속에 문득>(7집, 1991). 왜 이영훈은 이문세로 하여금 음역과는 썩 맞지 않는 곡들을 부르게 했을까? 트레이닝을 하려던 것일까? 1988년, 어째서 잠실 롯데월드 앞에 리어카를 가져다놓고 복제테이프를 판매하던 아저씨는 <안개꽃 추억으로>를 틀어댔을까? 소싯적 ‘록’을 좋아하는 기질이 무언가를 알아챘기 때문일까? 이영훈은 로커가 부르길 원했거나 이문세가 로커의 역할도 해주길 바랐던 것은 아닐까? 나중에 <풋잠 속에 문득>은 애초에 전인권 같은 이가 불렀으면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역시 그랬구나 싶었다(그 바람은 2007년에 이루어진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도 하지만 이영훈, 그에게는 더 이상 시간이 없다.

이문세가 가장 안정적이면서 훌륭하게 부른 노래들이 있다. 나이 들어가는 것에 관하여 생각하기에 [이문세 7]만큼 어울리는 물건도 드물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새파란 나이였으나, 어쨌든 당시엔 30대 초반을 살게 된 음악인들의 깊어진 ‘마음걸음’이 모여 있었다. 늘 그랬듯 참여한 음악인들의 면모 또한 당대 최고였고, 재즈와 현악의 뉘앙스로 가득한 곡들로 채워진다.

과거와 고궁, 종교성에 가까울 정도가 된 어떤 사랑, 그리고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늘 함께 했던 이영훈은 생전에 하늘사진을 많이 찍었다고 한다. 자신을 “꽃을 피우는 잡초”라 하고 예술가를 “밤을 훔치는 도둑”이라 적기도 한 그는 임종 직전, 천국의 멜로디를 듣고 허공에 손을 올려 지휘를 했다고 한다. 지금도 어떤 책에서 그 대목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그때나 지금이나, 작곡가 스스로 이후의 곡들은 별첨일 뿐이라 말했을 정도로 하나의 기념비였던, <옛사랑>을 겨울에 듣는 것만큼 먹먹해지는 일도 드물다.

이문세 – ‘옛사랑’

  1. 어느 장면, Envy <Scene>

그 날 지하공연장은 괜히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로 채워졌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그들을 알아왔다고, 자기는 앨범들을 다 가지고 있다고, 혹은 직접 만난 적이 있다고. 사실 그럴 필요가 없다. 주말거리를 배회하는 사람들과 달리 그때 거기에서 그런 음악을 듣고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감동은 공평하다. 서양 고전음악의 지휘자가 일종의 댄서라면, 연주하면서 격하게 고개를 쳐올리던 멤버들의 땀이 조명 앞에서 분수처럼 퍼지는 장면은 감성의 이퀼라이저 그래픽이었을지 모른다. 듣는 동안이라도 오만함을 품도록 하는 음악, 때로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올 정도로 감동적인 음악, 누군가는 그 리스트에 엔비(Envy)를 적어놓았을 것이다. – 엔비의 두 번째 내한공연을 보고 –

1990년대에 유럽 익스트림 신이 탐구적인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았다면, 2000년대에는 하드코어에서 출발한 뮤지션들이 역동적인 활기로 그 맥을 잇고 있다. 엔비는 포스트-록/익스페리멘틀의 접경에서 사색하는 풍경을 만들어내며 진지한 음악팬들과 교류했다. 같은 표현도 사람마다 달리 수용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하고, 그래서 전달법이 중요하지만, 동시에 이제 문신이 저마다 다양한 의미로 쓰이듯 그 폭은 넓어지고 느슨해지고 있기도 했다. 진취적인 예술이나 생각은 당대엔 멍청해보였다. 물론 멍청해 보인다고 다 진취적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엔비는 같은 코너에 있어본 적 없는 장르들을 융화시켜 자기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이 위험한 모험을 아무렇지 않게 감행하여 장르를 통하여 정체성을 지키고 신(scene)의 지지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취향의 신호’를 송수신하며 장르성과 경계 넘나들기의 장점을 모두 획득한 것이다.

아무리 거리가 멀어도 가슴이 닿지 못할 곳은 없다고 누군가 노래했고, 내면과 외부의 조화라는 점에서도 기막힌 만남이었다. 엔비의 음악은 예열과 분출을 오가는 패턴으로 감성의 고양과 침잠의 교차를 이끄는 특징이 있다. 청명한 아르페지오와 테츠야 후카가와의 낮은 음성으로 천천히 걸음을 뗀 후, 폭발과 절규로 전화하는 순간, 순간이 연장되듯 마음 주위에 구름이 만들어진다. 슬픔과 고통과 고독의 아름다움을 그리는 엔비를 말하며 다시 바라보자고 청하고픈 흔하디흔한 다른 단어는 감상(感想)이다.

기술을 접목하여 만들어낸 움직이는 그림과 사진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건 순간의 힘이 없어서가 아닌가. 멈춰있는 것을 움직이게 한다고 발전이 아니고, 늘 단순함에서 복잡함으로 발전하지도 않는다. 본능적인 기법과 감성에 충실한 엔비는 이미 펑크·하드코어를 넘어 새로운 록의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들의 음악에는 귀 없이 듣는 듯한 파들거림, 즉 파동의 힘이 담겨있다. 어둡고 우울한 흐림 그리고 그늘짐이 아름다움과 극적으로 대비되는 엔비는 화려하게 떨어져 사라지는 꽃잎들을 연상케 한다. 일본의 문학과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분홍빛 벚꽃은 만개했다 일순 사라진다. 하지만 그 꽃은 도쿄에도, 뉴욕 부근에도, 그리고 여기에도 핀다.

책을 읽을 때마다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는 발견은 책이 변한 탓이 아니다. 세상이 아니라 우리가 변하고 있다. <Scene>은 엔비의 돌무덤이었고, 이들은 터벅터벅 가던 길로 갔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문을 통과하며 산다. 아침마다 반복되는 일과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어딘지 불편한 공기와 맞닥뜨리기도 하고, 짐을 내려놓은 듯 해방감을 얻기도 하며, 뭔가가 들끓거나 아늑하게 가라앉은 장에 흡수되거나 휴식의 공간에 안기기도 한다. 특별한 경우에 문의 열림과 닫힘이 갖는 의미는 더욱 선명해진다. 고택을 지키는 오래된 나무문이 삐걱 열리면 다른 시간과 공간이 순식간에 몸과 정신을 감싸 안는다. 엔비는 엔비답게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어딘가로 들어가고 어디로부터 나오는 문이 되어주는 음악이 있다. 그 때 우리는 내면으로 향하는 시선에 이끌려 동작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곤 하는 것이다. – 개인블로그에 적은 메모 –

Envy – ‘Scene’

  1. 숨겨지지 못한 걸작, 최양락의 <개구리왕눈이>

이쯤 되면 정말 취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수 있겠다. 하지만 꿋꿋하게 써야만 한다. 그의 이름을 함부로 적을 수 없다.

‘네로25시’의 황제 개그에서 ‘슈퍼차부부’의 서민 개그에 이르기까지 그는 신분을 넘나드는 코미디언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면 재미있는 희극인들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런데 ‘괜찮아유’가 있었다. 언젠가부터 충청도말이 TV드라마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사투리가 된 이유는, 쉬워보였기 때문이다. 사모님과 못된 맏며느리의 잔소리를 감내하는 서산댁과 회당 두어 줄의 대사 량을 소화한 연탄가게 이씨 등은 하나같이 엉터리 충청도말을 써야 했다. 그러나 ‘괜찮아유’는 말끝에 “~유”만 붙이면 충청도말인 줄 아는 경박한 풍토에서 억양만 얄팍하게 흉내 내는 것이 아닌 혼이 서린 사투리와 충청도 어느 마을에서건 볼 수 있음직한 캐릭터, 그리고 도도한 휴머니즘의 정서를 품은 로컬 리얼리즘 코미디의 정수였다.

그래도 거기까지였다면 좋은 코미디언들 중 하나로 기억되었을지 모른다. ‘알까기’와 ‘재미있는 라디오’에 이르기까지 바이오그래피를 충실히 채워갔지만, 또 하나의 결정적 순간이 있었다. [작품하나]로 거둔 대중적 성공에 머물지 않고 전대미문의 실험을 감행한 음악작품을 통하여 그는 비로소 선생님이 된다. 전까지 선택받은 자들만이 소중히 간직하며 (자기들끼리) 걸작으로 추앙한 작품, 2001년에 발표된 [Night Fever!!!]이다.

윤태원 프로듀서부터 심상치 않는 인물이었다. 음악 감독을 맡은 세인트바이너리(Saint Binary)와 함께 참여한 팀 토마(Team MOMA)의 정체는 테크노계를 이끌어가는 실력파 뮤지션들인 이스트포에이(east4A), 전자맨, 프랙탈(Fractal)이었다. 여기에 함춘호의 기타와 스트링 세션마저 가세했다. 그러니 이 웃기려고 만든 앨범은 웃기기만 하기엔 수준급이었고, 수준급의 음악이라기엔 훌륭하게 유치했다. 다른 말로 유치함과 음악성이 결합된 전무후무한 코믹앨범으로 2000년대 초에 양산된 어지간한 댄스가수들의 음반들보다 나았다.

<우주소년 짱가>의 현란하고 정교한 루프와 <그랜다이저>의 완성도 높은 편곡이 예증하고, 서정어린 멜로디라인의 간주와 뽕짝 보컬이 만난 <메칸더 V>는 감성까지 자극한다. 훗날 범람할 샘플링을 고즈넉한 기타연주로 선보인 <엄마 찾아 삼만리>의 우스꽝스러운 노래 뒤편에 예스러운 여성 코러스까지 진지하게 수놓이면서 기묘한 카타르시스가 조성된다. 오래 전 학교에서 경험한 ‘명상의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아기 공룡 둘리>에 이르기까지 [Night Fever!!!]는 규정을 거부하는 전위적인 작품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였다면 완성도 높은 코믹앨범 중 하나로 기억되었을지 모른다.

히사이시 조 풍의 인트로에 이어 넥스트(N.EX.T)가 울고 갈 장엄한 신스터치와 드라이브감 넘치는 테크노댄스의 향연이 펼쳐진 <개구리 왕눈이>는 멍키헤드(Monkey Head)와 새드 레전드(Sad Legend)의 리메이크를 능가하는 명곡이다. 스웨덴의 쎄리온(Therion)이 한창 시절 구사한 그로테스크한 코러스를 MBC어린이합창단과의 앙상블로 구현한 장면은 단연 백미이며, 특히 닭살 돋는 트로트 창법에 이어진 “왕눈이는 하나를 알려주면 하나를 알았고 둘을 알려주면 둘을 알았습니다”라는 허무주의 성향의 내레이션은 감동의 눈물을 자아낸다.

마지막 트랙에서 <애국가>를 끝끝내 4절까지 들려주고야 마는 장인의 고집까지 담긴 이 작품은 뒤늦게 진지한 음악양식에 키치 혹은 개그 코드를 조합해보고 있는 후대의 젊은 음악인들을 지엄하게 꾸짖고 있다. 이보다 골 때리는 앨범은 이후 10년 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없었다. ‘웹-타운가’를 중심으로 바람을 일으켰고, 장중한 코러스를 동반한 당대 최고의 싱글 <당근쏭>도 실린 [꼬마네티즌 엽기쏭+기쁜 우리 동요]와 같은 ‘저주받지 못한 걸작’마저도 결국 [Night Fever!!!]의 숭고한 벽을 넘지는 못했다.

이제 뒤늦게 이름을 고이 적어본다. 그가 바로 최양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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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0. 그리고, <A Whiter Shade Of Pale><Elegy>

이제 가장 오랫동안 좋아해온 곡들을 소개할 시간이다. 몇 해 전까진 살면서 가장 많이 들어온 세 곡을 꼽을 수 있었다. 학창시절 덕에 여간해선 불변의 순위임에도 세월을 이겨내지 못하고 <애국가>는 퇴장했다. 그리고 남은 하나는 영국 밴드 프로콜 하룸(Procol Harum)이 1967년에 발표한 <A Whiter Shade of Pale>이다. 초현실적이거나 아무런 의미 없는 노랫말과 특유의 선율 덕분에 고전으로 자리 잡은 명곡이다.

무수히 리메이크되었지만, 가장 좋아하는 버전은 주인공이 직접 책임지는 2006년 라이브이다(Live at Ledreborg Palace). 1967년에 발표한 곡을 39년 후에 부르는 노신사의 모습에서 음악은 삶이 되고, 삶이 영화가 되는 장면을 보았다. 리메이크 중에선 데이빗 란쯔(David Lanz)의 버전과 가장 각별한 편인데, 그의 영상들 중에선 2011년 11월 11일 버전(Live at Centralia Washington)을 가장 좋아한다. 청소년기에 상상했던 장면들 중 하나가 (부끄럽게도) ‘밤에 아무도 없는 교회 예배당에서 이 곡을 연주하는 나’였는데, 그런 장면과 비슷한 면도 없지 않다. 남자는 등으로 말한다고나 할까. 역시 나이든 피아니스트의 뒷모습에서 음악은 삶이 되고, 삶이 영화가 되는 장면을 보았다.

Procol Harum – ‘A Whiter shade of pale’

그렇다면 내 생의 한 순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청소년기의 첫 단짝은 대갈이었다. 혜화동에서 전학 온 대갈이와 등하굣길에 소주병을 숨겨두고 함께 마셨던 우간다, 이렇게 셋은 같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녔다. 어린이대공원에서 소주 나발을 불기도 하고 밤새 라디오를 틀어놓고 놀다가 아침에 방송되는 음악에 맞춰 국민체조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중에 우간다는 목포로 돌아갔고, 20대 중반 이후 대갈이와도 연락을 하지 않게 된다. 고등학교 안에서는 투투와 부시맨이 음악과 영화에 조예가 있어 어울렸는데, 졸업 후에 투투가 내 오카리나를 빌려갔다가 두 동강 낸 이후로 연락을 끊었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무리는 메기를 시작으로 이어진 칠득이와 노가리 등이다. 고개 쳐들고 잠실 동네를 활보하며 둑방전설을 남긴 예닐곱의 무리가 모인 곳은 우습게도 교회였다(여자애들 중에는 홍익인간도 있었다). 그 중 가장 늦게 알게 되었지만 가장 많은 추억과 음악을 나눈 친구가 뿌리였고, 그가 청소년기 나의 마지막 단짝이다. 그리고 2013년에 뿌리(본명 이주호)를 국회라는 전혀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만났다. 우리는 밤늦도록 술을 마셨고, ‘그 시절의 테마송’ <Elegy>를 함께 들었다.

그 곡이 담긴 음반이 나의 첫 CD이다. 까까머리 소년이 처음 산 LP와 테이프의 기억은 흐릿하다. 폭발적으로 음악에 몰입한 열두 살부터 일상이 되었기에 대수롭지 않았던 모양이다. 여러 해 뒤, 뭔가 대단한 물건에 대한 풍문이 번져왔다. 아트 록 LP가 많던 뿌리네에도, 헤비메탈 테이프를 잔뜩 쌓아둔 메기네에도 그런 물건은 없었다. 어느 날 CD 한 장을 자랑스레 내보였을 때 노가리는 그림이 멋지다 했고, 앨범커버아트의 알레고리에 흥미를 보이던 뿌리는 수염에 붙어있는 성에가 인간들처럼 보인다고 했다. 잠시 무서워지긴 했으나, 그런 것 같진 않다. 제스로 툴의 [Stormwatch](1979/Chrysalis Records)를 산 음반점 자리에 옷가게와 아이스크림 체인점이 들어서는 동안 나는 대학교에 기부금이나 바치는 학생이 되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졌으며, 잊히고 잊어갔다. 그렇게 맑은 거울 같던 CD 역시 작은 상처들을 무수히 입어갔지만, 가장 많이 들어온 곡은 여기 마지막 자리에 변함없이 남아있다.

Jethro Tull – ‘Ele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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