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을 빌어 시인 한 명을 소개하려 한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다. 그는 2002년 11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죽음이 당시 크게 알려지진 않았던 것 같다. 살아 생전에 그가 시인이라는 걸 안 사람은 아주 적었다. 남양주의 어느 작은 아파트에서 홀로 시를 쓰다 세상을 떠난 남자. 한 편의 시로 등단을 했을 뿐 그 흔한 지면 한 곳에도 작품을 발표해 본 적 없는(발표하지 않은) 망자의 직업을 세상은 뭐라고 받아 적었을까. 죽음 이후에야 그가 써내려 간 시와 미완의 작품들이 남겨진 이들에 의해 세상에 흩뿌려졌다. 그의 첫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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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으로 새들이 걸어간다, 여림, 2003

 

 

그의 이름은 ‘여림’이다. 자신의 성과 존경하던 ‘최하림’ 시인의 이름을 따 필명을 ‘여림’이라 지었다. 시인 여림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한 권 뿐인 시집을 통해 그를 접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그마저도 절판이 되어 한동안 구할래야 구할 수 없었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그의 시집을 접하게 되었고 오랫동안 가슴에 새겨두고 있었다. 책을 구하기는 힘들지만 그의 이름을 인터넷에 치면 삶과 죽음, 그의 시 몇 편을 접할 수 있다. 그를 애도하고 소개하는 글 역시 많다. 그럼에도 매체에 그의 이야기와 시를 실으려는 건 첫째로 그의 시가 더 많이 알려지길 바라기 때문이고, 둘째로 그를 가깝게 생각하고 있는 개인적인 사연 때문이다.

세상을 떠난, 그것도 요절한 시인의 작품을 읽는다는 건 그 사실 만으로 가슴이 시리게 한다. 요절한 시인의 이름 몇을 댈 수 있겠으나  여림은 그 중에서도 내게 가장 특별하다. 그의 시가 좋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가 남양주 마석 인근에 살았었고, 산책을 위해 북한강변과 모란공원을 자주 찾았으며 죽음 직후에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장례식장을 거쳐 갔음을 동료 시인들의 글을 통해 알게 되었다. 장례식장은 ‘어내미 고개’라는 가파른 고갯길 가장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다. 행정구역이 바뀌는 기점이기도 한 이 고개를, 나는 매일 출퇴근을 위해 꼭 지나간다. (동네와 바깥을 오가는 하나의 관문과도 같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의 풍경을 무심히 지나치기만 하다가 한 시인의 삶과 죽음이 그 안으로 들어온 순간 공간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이 곳에 있었고, 그와 절친한 사이였던 박형준 시인이 택시를 타고 달려와 어두운 새벽, 이 고갯길을 터벅터벅 걸어 내려간 사연을 알게 된 이후로 매일까지는 아니더라도 비교적 자주 버스 차창 밖을 바라보며 그를 떠올리곤 한다.

완전히 낯선 타인을 통해 하나의 공간이 기억으로 박제되는 경험은 흔치 않은 일이다. 한 번도 만나본 적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이며 그의 얼굴 생김조차 자세히 알지 못하는 내가 그의 생을, 내면을 읽으려 하다니. 만나본 적도 없는 이의 삶을 불완전하지만 이해하고 느끼고 있다는 것. ‘그게 바로 예술인가’ 자뭇 심각한 질문이 떠오르다 피식 웃어버리고 만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하루에도 수십, 많게는 수백개의 생각들을 접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좋아요”와 “리트윗”을 손에 쥐고 낯선 타인을 알 듯 말 듯 지켜보는 시대. (그리고? 실제로 보면 어색해하거나 모른 체 한다!)   창문 밖의 남양주 장례식장을 바다보다가 문득 사람들이 빼곡한 버스 안으로 눈길을 돌린다. 몇몇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늘 침묵이 가득한 이 곳에 시인이 있을 지 모른다. 혹은 그냥 시를 쓰는 노동자가, 저마다 소설과도 같은 이야기 하나씩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품은 채로 노곤해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 눈길 또한 부드러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올해 절판되었던 여림의 시집이 ‘유고 전집’이라는 부제와 함께 다시 출간되었다. (정식 제목은 수록된 시의 제목이기도 한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이다.) 시집 “안개 속으로 새들이 달려간다”과 더불어 공개되지 않았던 유고 시, 작품을 위해 적어둔 메모, 산문들이 추가되었다. 소식을 듣고 망설임없이 책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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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 여림, 최측의 농간 펴냄, 2016

 

미완의 시가 원형 그대로 실려 있는 시집을 여림은 어떻게 생각할까. 작품 중엔 아직 살을 채우고 빼는 과정이 덜 되어 공개하기 싫은 것도 있을 것이다. “시인이 살아 있었더라면 포함시키지 않았을 작품도 있었을 것”이라는  편집자의 염려와 미안함은 그럼에도 “유고 파편들을 독자들에게 한 편이라도 더 소개하는 것이 의의가 있다”는 판단으로 조금은 녹아내렸으리라. “작품 자체에 아쉽거나 미진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면 모든 책임은 편집자에게 있다”는 당부에서 시인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 글을 읽고 당신이 책을 구입하거나 도서관에서 빌려보길 권하면서도, 분량이 아주 길지 않은 시의 특성 상,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시 일부를 올리는 것은 큰 결례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글의 말미에 직접 타이핑 해 옮길 시들이 독자의 마음에 와닿는다면 새로운 독서로 이어질 수 있다.

“시로 인해 피폐해진”  한 사람의 이야기는 이렇게 계속 기억될 것이다.


 

즐거운 나날이었다 가끔 공원에서 비둘기 떼와
낮술을 마시기도 하고 정오 무렵 비둘기 떼가 역으로
교회로 가방을 챙겨 떠나고 나면 나는 오후 내내
순환선 열차에 앉아 고개를 꾸벅이며 제자리걸음을 했다
가고 싶은 곳들이 많았다 산으로도 가고 강으로도
가고 아버지 산소 앞에서 한나절을 보내기도 했다
저녁이면 친구들을 만나 여느 날의 퇴근길처럼
포장마차에 들러 하루 분의 끼니를 해결하고
(…중략)
아내와 아이들의 성적 문제로 조금 실랑이질을 하다가
잠자리에 들어서는 다음날 해야 할 일들로
가슴이 벅차 오히려 잠을 설쳐야 했다
이력서를 쓰기에도 이력이 난 나이
출근길마다 나는 호출기에 메시지를 남긴다
‘지금 나의 삶은 부재중이오니 희망을
알려주시면 어디로든 곧장 달려가겠습니다’

(여림의 신춘문예 등단작 “실업” 中에서..)
“아내와 아이들의 성적 문제로 조금 실랑이질을 하다가”라는 구절이 나오지만 실제 그는 독신이었다고 한다.


 

흐르는 강물에도 세월의 흔적이 있다는 것을
겨울, 북한강에 와서 나는 깨닫는다
강기슭에서 등을 말리는 오래된 폐선과
담장이 허물어져 내린 민박집들 사이로
하모니카 같은 기차가 젊은 날의 유적들처럼
비음 섞인 기적을 울리며 지나는 새벽
나는 한 떼의 눈발을 이끌고 강가로 나가
깊은 강심으로 소주 몇 잔을 떨구었다
조금씩 흔들리는 섬세한 강의 뿌리
이 세상 뿌리 없는 것들은 잠지 머물렀다
어디론가 쉼 없이 흘러가기만 한다는 것을
나는 강물 위를 떠가는 폐비닐 몇 장으로 보았다
따뜻하게 안겨오는 강의 온기 속으로
수척한 물결은 저를 깨우며 또 흐르고
손바닥을 적시고 가는 투명한 강의 수화,
너도… 살고 싶은 게로구나

(“겨울, 북한강에서 일박” 中에서..)

※ 그는 시상을 얻기 위해 북한강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당신들은 나를 빌어 욕을 하지만
그러나 나는 기꺼이 당신들의 밥이 된다
밥맛없는……밥값도 못하는……밥벌이도
못하는 주제에……밥벌레 같은……밥통 같은,
밥줄이 끊어진 당신들이 모여 앉아 나를
두고 하는 말들을 들으면 나는 밥투정을
하는 아이처럼 울고 싶어지다가도 밥술을
구걸하러 온 시동생의 뺨을 밥주걱으로
사정없이 올려붙인 놀부 마누라처럼
당신들을 향해 밥상을 엎고 싶어진다
…(중략)
밥 한 끼를 벌기 위해 오늘도 수없이 많은
밥맛 앞에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이고 돌아온
내게 밥이 말한다
나는 당신들의 밥이 아니다

(“밥이 내게 말한다” 中에서..)

 

 


 

술을 마시는 게 두려운 나날이었습니다
옷장 속에, 책상 서랍에 술병을 숨겨두고
혼자 마시는 술은 독약이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이력서를 쓰다 말고
내어다 본 창문 밖은 이른봄이었겠지요
허름한 옷에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요즘은 도시 공공 근로자 일을 합니다
은빛 피라미 떼 같은 햇살이 자욱한 점심때
양은 도시락 하나씩을 찬 손에 꺼내 들고
저희들은 잔디밭에 둘러앉아 밥을 먹습니다
밥 대신 소주 한 병을 꺼내놓는 노인도 계시지요
추위에도 떨고, 술 때문에 떨면서도 누구도
제 옷깃을 바로 여미는 사람은 없습니다
산다는 일은 어쩌면 이렇게 조금씩 제 몸을
떨면서도 애써 모르는 척하는 것은 아닐까요

(- 未完으로 남은 시 “나는 공원으로 간다”  中에서..)

※ 여림은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공공 근로를 했던 경험을 적어내려간 미완의 시.

 


 

나는 절망한다
아니,
절망도 아닌 그 무엇
어머니는 새벽기도를 나가시고 나는,
갈수록 흐려지는 눈을 헤집으며 여기 앉았다
이빨을 지그시 짓누르는 삶의 회한들
그러고도 모자란 듯 호흡은 갈수록 나를 괴롭힌다
시를 쓰는 자들의 영특함, 혹은 영악함
자신과의 어떤 축, 혹은 城을 구축하려는 모습이
눈을 감고 그 눈 속이 쓰릴 만큼 아프다
나는 꿈을 이루었다
이것으로 되었다
시인이 되고 싶었을 따름이지 시인으로서 굳이
어떤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중략)
힘이 든다
여지껏 시와 내가 지녀왔던 경계심, 혹은 긴장감들이 한꺼번에 용해되면서 나는 밤낮으로 죽지 않을 만큼만 술을 먹었고 그 술에 아팠다.
생각해 보라
35년을 아니, 거기에서 10년을 뺀 나머지의 생애를 한 사람이 시로 인해서 피폐해 갔다

 

(1999년 2월 3일 아침 04시 40분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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