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 사업장 노동자는 임금 1파운드당 12파운드의 사회적 가치를 생산했다. 반면 투자 은행가는 경제적 가치 1파운드를 생산할 때마다 사회적 가치 7파운드를 파괴했다. 이 연구의 최종 결론은 ‘고소득층일수록 사회에 해롭다’는 것이다.

 

“돈 많이 받으려면 공부 잘해서 대학을 나왔어야지.”

김포공항 청소노동자들의 항의를 받고 관리자가 했다는 말은 청소노동자들의 ‘말문을 막아’ 버렸다. 이 언사에 깃든 사고는 물론 남성 정규직 관리자가 간접고용 여성 청소노동자들에게 저지른 성범죄 만행을 무죄로 하지 못한다. 그리고 취업을 못해 아우성인 수많은 대졸 청년들의 처지에 비춰 시대착오이다. 그러나 이 말에는 노동시장의 착취, 불평등, 억압을 묵인, 승인, 동조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이 담겨 있다. 시장에서 각자 가져가는 몫이 능력에 따라 분배되고 있으며 또 그래야 한다는 사고는 자유주의 경제 사상의 큰 물줄기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태동기의 정치경제학은 인간의 불평등을 ‘자연의 법칙’으로 정당화했다. 제러미 벤담, 조지프 타운센드 등은 빈곤과 굶주림이 없으면 산업이 불가능하다고 역설했다. 이 자유주의 사상가들에게 위험하고 고달픈 노동을 묵묵히 수행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존재는 자연의 이치와 같았다. 빌프레도 파레토는 어떤 체제이든 지배자들과 피지배자들 사이의 소득 분포는 변하지 않더라는 신비한 법칙을 발견했다. 그의 발견은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한 재분배 정책은 결국 무용하다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기저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하버드대 학생들이 학교 노동자들에게 시간당 최저임금 10.25달러를 지급하라고 주장하며 농성을 벌일 때, <맨큐의 경제학>의 저자 그레고리 맨큐 교수는 학생들의 농성을 지지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맨큐의 경제학>은 “낮은 수준의 기술과 경험을 가진 노동자들에게 높은 최저임금은 수요와 공급의 균형 수준보다 더 많은 임금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김포공항 청소노동자들의 막혀버린 말문은 어디에서 트일 수 있을까?

시장에서 각자가 생산에 기여한 만큼 가져간다는 주류 경제학 이론을 비판하기 위해 굳이 자본-노동의 구조적 착취 관계를 분석한 마르크스의 사상까지 소급할 필요는 없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문제를 보자. 라인만 다를 뿐 정규직과 동일한 조립 업무를 수행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는 현저히 불평등한 조건으로 일한다. 이것은 주류 경제학의 분배 이론에 대한 파산 선고다. 여기저기 자살, 산업재해 사망, 단식 농성이 끊이지 않는 100만명 안팎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처지는 파견법 같은 간접고용 제도가 없었더라면 마땅히 누릴 수 있었던 몫을 자본이 앗아간 결과이다.

영국 신경제재단에 소속된 일단의 연구원들은 소득 최상위층과 최하위층의 대표적인 직업 몇 개를 선별해 소득액과 직업 활동에서 창출되는 ‘사회적 가치’를 비교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재활용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임금 1파운드당 12파운드의 사회적 가치를 생산했다. 반면 소득 최상층에 속하는 투자 은행가는 경제적 가치 1파운드를 생산할 때마다 사회적 가치 7파운드를 파괴했다. 이 연구의 최종 결론은 ‘고소득층일수록 사회에 해롭다’는 것이었다.

김포공항 청소노동자들의 급여와 근무조건은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이후 공공부문 사업장에서 핵심 업무와 비핵심 업무를 나누고 비핵심 업무를 외주화한 정책 결정의 결과다. 그러나 청소노동은 과연 비핵심 업무인가? 청소가 없다면 이용객들이 공항을 이용할 수 없을 정도로 불결해질 텐데도? 많은 사람들은 청소노동이 최저임금 수준의 가치를 갖고 있고, 또 그것이 어느 정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인식의 형성은 오히려 반대의 과정을 밟는다. 그들이 처한 노동 조건이야말로 그들의 노동이 그 정도의 가치를 갖는 것으로 평가되는 원인인 것이다.

이미 세상에 상세히 알려진 김포공항 청소노동자들의 상황을 복기해보자. 하루 11시간의 중노동을 마치면 아침에 손과 무릎을 제대로 펴지 못한다. 정부가 ‘공공부문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에서 정한 시급 8200원과 상여금 400%는 용역업체나 원청이 중간에서 떼어먹는다. 동료와의 짧은 대화, 간식 섭취, 화장실 이용, 무표정 등 인간의 활동과 존재 그 자체가 해고 사유가 된다.

자연과학에 적용되는 방법으로 어떤 분배 이론이 옳은지 검증할 수는 없다. 갑의 분배 이론이 설령 진실이라 해도, 이 냉혹한 자연의 법칙을 동료 인간에게 강요할지 말지는 또다시 ‘사회’의 몫이다. 문명사회라면 그들의 고투가 한가위 전에 결실을 맺게 하여 가족, 이웃들과 함께 따뜻한 명절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 이 코너는 주류의 경제학이 아닌 ‘좌파의 시각에서 보는 약자의 경제학’이라는 관점을 갖고 <한겨레신문>에 연재 중인 글들이며,  지면에 실리고 일정 기간 후에 <이-음>에도 게재됩니다. 칼럼을 쓰시는 장흥배 씨는 노동당 정책실장이자 경기도 지역 당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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