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코너는 주류의 경제학이 아닌 ‘좌파의 시각에서 보는 약자의 경제학’이라는 관점을 갖고 <한겨레신문>에 연재 중인 글들이며,  지면에 실리고 일정 기간 후에 <이-음>에도 게재됩니다. 칼럼을 쓰시는 장흥배 씨는 노동당 정책실장이자 경기도 지역 당원이기도 합니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은 국가, 정치, 민주주의가 시장과 경제에 개입해선 안 된다는 이론을 압축한 표현이다. 국가와 자본의 공고한 결탁에 관한 한 이 경구는 참으로 진실이다. 비싸도 몇만원 안팎 점심도 공짜가 아닐진대 1인당 수십만원대에 이르는 골프 접대가 공짜일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연간 1조원의 골프 접대는 연간 1조원의 포괄적 뇌물이다.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장차관 워크숍 만찬에서 ‘골프 좀 치라’고 권하자 장차관들이 ‘머리띠를 두르고 가자’, ‘인증샷을 올리자’며 화답했다는 내용이 화제가 됐다. 같은 달 말에는 청와대가 골프장 이용에 부과되는 개별소비세의 폐지를 검토한다는 기사가 떴다. 보수언론들도 ‘부킹 절벽’에 내몰린 골프 업계의 처지를 자신의 일인 양 안타까워하면서 골프장 개별소비세 폐지를 요구하는 각종 기사와 사설을 싣고 있다.

1536년 발표한 <기독교 강요>에서 칼뱅은 지상에서 재물을 축적한 사람은 천국에 갈 운명이라고 해서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하느님과 재물의 오랜 불화를 해소한 칼뱅의 신학은 당시 약동하던 상업자본주의의 요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골프와 고위 공직자의 만남에 세간의 이목이 쏠린 거의 대부분이 불미스러운 경우였다. 국가적 재난이 발생한 즈음에 필드에서 샷을 즐기던 관계 장관은 언론의 도마에 올라야 한다. 국회의원들에게 이것은 한마디 질타 없이는 넘어갈 수 없는 사안이다. 그런 국회의원들이라도 골프장에서 은밀히 만난 기업가나 브로커와의 부패 스캔들에서 예외는 아니다. 따라서 최고 공직자인 대통령의 떠들썩한 골프 권유는 대놓고 떳떳지 못했던 공직 사회의 골프 사랑을 ‘애국’으로 인증해준 것이 아니겠는가. 그 배경은 ‘소비 절벽’으로 표현되는 내수 위축이다.

‘머리띠 두르고’, ‘인증샷 올리자’는 발언은 꽤 희극적이어서 많이 회자됐다. 그런데 특별한 관심을 받지 못했던 “자비로” 골프 치자 했던 발언은 경제학적 분석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고무에 들떴던 탓인지 장차관들은 김영란법 시행 전에는 대체로 남의 돈으로 골프를 쳐왔다는 사실을 무심코 고백하고 말았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회원제 골프 예약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고 하는데, 골프 수요의 절반이 행정, 입법, 언론, 사법 등 공공 분야에서 힘을 쓰는 인사들이 민간으로부터 받는 접대였다는 해석은 자연스럽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회원제 골프장의 연간 매출이 1조원 이상 줄 것이라고 한다. 접대 골프 규모가 연간 1조원 이상이었다는 말이다.

주류 경제학에서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은 국가(정부), 정치, 민주주의가 시장과 경제에 개입해선 안 된다는 이론을 압축한 표현이다. 국가와 자본의 공고한 결탁에 관한 한 이 경구는 참으로 진실이다. 비싸도 몇만원 안팎 점심도 공짜가 아닐진대 1인당 수십만원대에 이르는 골프 접대가 공짜일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연간 1조원의 골프 접대는 연간 1조원의 포괄적 뇌물이다.

“경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법인세 인상은 단호히 막겠다”고 하는 걸 보면 이 뇌물의 용도를 짐작할 수 있다. 20대 국회에 계류된 야당의 법인세 인상안이 통과될 경우 재벌들은 연간 3조~4조원의 법인세를 더 내야 한다. 경제를 전혀 모르는 이정현 대표의 활약이 성공한다면 자본의 1조원 골프 접대 비용은 재벌의 2조~3조원의 이익으로 돌아온다!

정부는 김영란법에 따라 줄어든 골프장 소비의 유지책을 골프장 개별소비세 폐지에서 찾으려 한다. 이 법안을 발의한 강효상 새누리당 의원은 “법률 개정으로 그린피가 적정 수준으로 떨어진다면 자기 돈을 내고 골프를 하는 개인 수요가 기존의 접대 골프 수요를 메울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의 의도대로 되더라도 경제적으로 총수요의 증가는 없다. 남는 것은 무엇인가? 연 2000억~3000억원으로 추정되는 골프장 개별소비세수의 증발이다. 용어의 사전적 의미에 정확히 부합하는 부자감세다.

애덤 스미스는 “사치 마차에 대한 통행료를 필수 마차에 대한 통행료보다 높게 해서 부자들의 교만과 허영이 빈민들의 구제에 기여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18세기에 경제학에서 말하는 ‘외부성’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전국 각지에 우후죽순 들어선 골프장이 일으키는 환경 파괴와 농업 피해 등의 막대한 비용은 어디에 물려야 하는가? 각종 규제완화로 골프장 개설에 대한 국가 규제가 무력화된 상황에서 개별소비세는 골프장이 일으키는 부정적 외부 효과를 일부라도 억제하고 그 결과를 시정하는 거의 유일한 제도로 남아 있다.

연간 1조원대의 골프 접대를 주고받다가 김영란법으로 불편해하는 사람들은 골프장의 부정적 외부효과에 따른 비용을 전체 사회로 전가하는 기막힌 방법을 내놓고 골프장에서 만나고 싶어 한다. 골프장이 아니더라도 어디서든 만나 서로 애틋한 이들이 연대를 확인할 때마다 을들에게 괴롭고 피곤한 일들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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