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가 최고 권력을 이용해 한참 돈벌이에 몰두했을 법한 2014년 2월에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이 있었다. 세 모녀의 통장에 최씨가 걸친 패션의 값어치에 해당하는 예금만 있었다면 어땠을까. 재벌들이 박근혜-최순실의 관계를 간파하고 800억원이라는 거금을 최씨의 사업에 거저 몰아줬을 때, 재벌들의 시장경제는 대통령을 홀린 최씨의 샤머니즘과 무슨 차이란 말인가.

 

 

검찰 수사를 받으러 가면서 벗겨진 최순실씨의 신발 한 짝을 잡은 카메라는 초점을 곧장 최씨가 걸친 모든 패션의 브랜드로, 한때 최씨 가족이 거주하던 시가 수백억대 건물의 신발장에 놓여 있는 수많은 명품 신발들로 확대했다. ‘악마는 프라다를 신는다’, ‘순데렐라’ 등의 재치 있는 조어에는 야유와 분노가 절반씩 섞여 있다. 그런데 사람들의 정의 관념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어서 불의한 모든 것에 분노할 수는 없다. 어떤 것에 분노한다는 것은 다른 것에는 분노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사회가 무엇에 분노하고 무엇에 분노하지 않는지를 전체 차원에서 조망해 보는 것은 그 사회가 운영되는 방식을 보는 좋은 방법이다.

경제학자 김낙연 교수의 분석을 보면, 20살 이상 우리나라 소득 상위 0.1%의 연소득은 3억1700만원 이상, 0.01%의 연소득은 약 12억원 이상이다. 그 반대편에 전체의 48.4%에 해당하는 연간소득 1000만원 미만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상위 1%의 소득 집중도는 약 13%인데, 미국(22.46%)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수준이고 이 추세는 강화되고 있다. 사실 우리는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연예계 스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루는 매체들에서 최고급 소비재를 향유하는 계층의 삶을 매일 간접 경험한다. 그들은 0.01%에 속하는 사람들이고 재벌이라 불린다. 쉬 노출되지도 않아 짐작만 하는 재벌가 일원의 소비 행태는 선망의 대상이 될지언정 여론의 분노를 사는 일은 거의 없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삼성가의 3대 세습 과정을 보면 적어도 재산 축적의 도덕성이 기준은 아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1995년 아버지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약 60억원을 증여받아 상속세 16억원을 내고 남은 44억원으로 삼성그룹 비상장 계열사의 주식을 사들였다. 2015년 현재 그는 시가총액 330조원 규모 삼성그룹의 실질적인 최고경영자(CEO)이다. 총수 일가의 그룹 지배력을 이용해 계열사 주식을 헐값으로 사들인 다음 천문학적인 상장 차익을 얻는 방법이 되풀이됐다. 아무도 구속되지 않았고 불법 축적한 그들의 재산도 건재하다. 삼성 총수 일가의 재산 축적 과정은 다른 재벌들이 따르는 모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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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세습 ‘삼성’]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파문도 언젠가는 가라앉을 것이다. 그때 먹고사는 문제와 맞물린 사람들의 견고한 일상을 미리 예상해 보는 것은 우리의 분노가 미쳐야 할 폭과 깊이를 확장하기 위해서이다.

최저임금을 받는 수백만의 노동자에게는 2017년에 월 135만원의 임금이 책정될 것이다. 이들을 포함한 1000만 안팎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부족한 소득을 연장근로를 통해 보충하려 할 것이다. 또 다른 수백만의 영세 자영업자들은 재벌들의 유통 체인에 맞서 온 가족의 노동을 합쳐 현재의 자리를 지키려 할 것이다. ‘귀족’ 노동자들은 성과연봉제와 저성과자 퇴출제에 적응하기 위해 어지간한 모욕에는 무감해져야 할 것이다. 조선업에 불어닥친 구조조정은 2018년까지 이 분야 노동자들의 절반을 현재의 일터에서 쫓아내고, 쫓겨난 그들은 변변한 실업보호제도가 이 나라에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절대다수의 일상은 세계 최악의 소득과 자산 불평등, 청년과 노인 자살률, 산재사망률,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 등의 지표로 합산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서 있는 자리라도 지키기 위해 생계의 대부분을 쏟아야 하는 사람들은 이 지표를 바꿀 분노가 더는 남아 있지 않다. 최씨의 패션 너머에 자리 잡은 재벌체제는 이렇게 해서 분노를 피해왔다.

최씨가 최고 권력을 이용해 한참 돈벌이에 몰두했을 법한 2014년 2월에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이 있었다. 세 모녀의 통장에 최씨가 걸친 패션의 값어치에 해당하는 예금만 있었다면 어땠을까. 최씨가 아니라도 누군가의 몸에 한 번 걸치는 패션의 가치가 수많은 누군가의 목숨 값이 되는 체제이다. 주류 경제학은 이 체제를 바꾸려는 모든 시도들, 최저임금 1만원,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 비정규직 철폐, 재벌 증세와 복지 확대 등에 대해 시종일관 적대적인 태도를 취한다. 재벌들이 언제나 내세우는 논리는 ‘시장경제체제’이다. 하지만 재벌들이 박근혜-최순실의 관계를 간파하고 800억원이라는 거금을 최씨의 사업에 거저 몰아줬을 때, 재벌들의 시장경제는 대통령을 홀린 최씨의 샤머니즘과 무슨 차이란 말인가.

 

 


 

※ 이 코너는 주류의 경제학이 아닌 ‘좌파의 시각에서 보는 약자의 경제학’이라는 관점을 갖고 <한겨레신문>에 연재 중인 글들이며,  지면에 실리고 일정 기간 후에 <이-음>에도 게재됩니다. 칼럼을 쓰시는 장흥배 씨는 노동당 정책실장이자 경기도 지역 당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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