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 고양 · 파주 당협 위원장 신지혜 씨의 새 연재 “신지혜가 만난 세상”이 시작됩니다. 청년 문제, 여성 문제 등 지역에서 정치 활동을 하며 느낀 현안들을 공유하고 정책과 제도적 측면의 고민을 담아내는 칼럼이 이어질 예정입니다. 첫 칼럼은 청년과 주거 문제를 다룹니다.


전화가 걸려왔다. 여름휴가의 첫 날 저녁, 휴가를 보낼 곳에 막 도착해 근처 시장에서 장을 보고 있던 찰나였다. 액정 화면에는 ‘화정 집주인’이라는 글자가 찍혀 있었다. 전화를 받을까 말까 망설여졌다. 계약기간이 한 달 남은 시점, 어떤 말을 들을 지 뻔했기 때문이다. 조심스레 전화를 받았고, 집주인은 내가 집에 있다면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여행을 왔기 때문에 전화로 이야기 하자 했다. 집주인은 미안한 말투로 “보증금을 일부 돌려 줄테니 월세를 대폭 올렸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고, 나는 “(월급)사정상 불가하니 이사를 하겠다”고 대답했다. 푹푹 찌는 여름, 휴가의 마지막을 이사할 집을 알아보기 위해 돌아다녔다. 그렇게 4년 간 살았던 집을 또 떠났지만 동네를 벗어나고 싶지는 않아 그 주변으로 이사를 했다. 어느덧 새 집에 이사한지 한 달하고 10일이 지났다.

나는 이사를 끔찍이 싫어한다. 어릴 적 이사를 많이 하는 바람에 초등학교를 5군데를 다녔다. 중•고등학교는 다행스럽게도 옮기진 않았지만, 6년간 3번의 이사를 했다. 대학에 입학한 후 이사의 주기는 더 짧아졌다. 잦은 이사로 짐을 싸고 풀기를 반복하다보니 자연스레 집의 가구를 늘리는 것을 꺼리며 최소한의 가구로 살게 되었다. 집과 살고 있는 동네에 정을 붙이기는 커녕 집은 늘 나에게 ‘잠자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대학 졸업 후 처음으로 집의 느낌을 물씬 주던 곳에서 이사를 하는 일은 꽤 아쉬웠다. 한편으론 새로운 질문이 자연스레 맴돌았다. ‘이렇게 집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청년이 지역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가능할까?’

201611-01
Ⓒ 한국일보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5187094&memberNo=12475563&vType=VERTICAL (출처)

누구나 그러하듯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에 분노하고 행동한다. 지금의 혼란스러운 시국에 많은 국민들이 폭발적으로 반응하게 된 계기도 ‘내가 위임한 권력’이 동의한 적 없는 개인과 권력에게 넘어간 것, 그리고 그 권력이 남용되어 만들어진 수많은 부패와 비리들에 내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있음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수많은 청소년들과 청년들의 살아가고자 애쓴 노력들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린 순간, 국민들은 거리로 쏟아졌다. 그렇기에 밤늦게까지 광화문광장에 열린 시민발언대에서도 청소년이나 청년들은 최순실-정유라의 입학 및 학업 비리에 대해 꼭 언급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혹은 내 가족이 그 부패와 비리로 인해 피해를 입었거나 입을 수도 있다는 분노의 힘은 대단했다.

지역에서 더 많은 청년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주거정책을 바꿔야 한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다면, 그것이 나의 문제라고 인식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지역정치에 청년이 목소리 내기를 바란다면 청년들이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아갈 수 있는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이 지역도 언젠가 살다가 독립해서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로 여겨진다면 청년들은 지역정치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하등 없다. 주거정책은 주민들 속에 속해있지도 못했던, 정책대상이라 여겨지지도 못했던 청년들에게 우리 사회의 시민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하는 방향으로 이어져야 한다. ‘공공주택 특별법’에 ‘청년층 우선 공급’ 내용을 담아 개정한다는 소식이 반가운 이유도 그동안 주거정책에서 청년이 소외되어있었던 현실을 조금이나마 바꿔보고자 하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20161115
Ⓒ 건설경제신문 http://www.cnews.co.kr/uhtml/read.jsp?idxno=201611111716212000793 (출처)

하지만 중앙정부의 주거정책 변화만으로는 지역에서 살고 있는 청년들에게 정책의 변화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지자체의 적극적인 정책 변화를 통해 청년들과 소통할 때 청년들은 변화를 실감할 것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고양시는 지난 5월 장항지구에 행복주택단지가 대규모로 들어설 것이라 발표했다. 청년들을 위한 주거정책이라며 현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행복주택’에 관해서도 집값이 떨어지는 게 걱정인 주변 주민들의 반대의 목소리만 들리고, 정작 당사자인 청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매우 씁쓸한 일이다. 이는 정부와 고양시 모두 청년에게 안정적인 주거 환경이 조성되어야 할 이유와 청년이 지역사회에 유입으로 인한 지역사회의 비전 등으로 지역주민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주택단지의 규모와 주변 시설 등을 이야기하는 것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지 아닐까.

11월 5일,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에서는 지역주민들이 직접 꾸린 ‘박근혜 퇴진 촉구 동네잔치’가 열렸다. 지역주민들이 수년간 ‘교육’을 중심으로 공동육아어린이집, 대안학교, 작은도서관 등의 마을네트워크를 꾸려 운영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동네잔치였다. 지역정치에 있어 ‘공동체’는 핵심이다. 지역 현안에 대해 지역 주민이 직접 개입하며 목소리를 내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지역정치에 함께 하기 위해서라도 공동체는 필요하다. 청년들이 거점으로 삼을 공간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도 청년들의 네트워크인 공동체를 만들기 위함이다. 청년들은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다양한 부분들 속에서 이미 활동하고 있으며, 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청년들이 지역에서 공동체를 꾸리기 위해선 먼저 지역에 청년들이 살아갈 ‘집’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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