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질에게 분갈이를 해주고 오랜만에 미용실에 들렀다. 상가 건물의 북향 점포에 입주해 있어 1년 내내 볕이 들지 않는 이 가게의 이름은 ‘해바라기 미용실’이다. 중년 사내가 머리를 맡기고 멀뚱히 앉아 있는 동안 테이블에 놓여있던(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신문을 뒤적였더니, 소비․금융자본주의 시스템의 변화가 절실하다는 논설이 인쇄되어 실려 있었다.

이 신문에도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기사들이 종종 실리지만 매번 어딘가에 멈춰서거나, 말미에 가면 엉뚱한 하수구를 찾아 흘러들어가곤 했다. 문제의식과 자기조건이 어긋난 곳에 북향에 자리 잡은 해바라기가 핀다.

영화 <맨 온 파이어>에서 소녀 납치에 가담했거나, 돈을 가로챈 부패 경찰들은 크리스(덴젤 워싱턴)에게 응징을 당할 때마다 “내 일을 했을 뿐”이라고 항변한다.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그들은 ‘자기 일을 했을 뿐’이었기에 죄인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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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맨 온 파이어>의 한 장면. 부패 경찰들은 모두  “내 일을 했을 뿐” 이라 말한다.]


정치적 문제로 고가도로에서 분신한 남자에 대하여 경찰은 ‘빚 독촉’ 운운하며 언론에 정보를 흘렸다. 밀양에서 거대 송전탑에 반대하는 농민이 세상으로부터 숨을 돌리자 언론 담당 경찰은 분신하신 분에 대해선 ‘실화로 인한 사고’ 운운했고, 농약을 마신 농민에 대해선 ‘가정불화’ 운운했다. 아무리 자기네 업무가 사태를 사적인 문제로 축소시켜 여론을 호도하는 것이라 해도 최소한의 예의가 있다. 망자에 대한 예의조차 저버리는 자들이 과연 인간인가?

자기 일에 충실했을 뿐이기에 남에게 상처를 주는 부류는 군인과 경찰, 핵 기술자, 철거업자, 금융업자와 정치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주식 ‘투기’와 부동산 차익에 연연하며 돈을 굴려 덩치를 키우는 프로는 사실 포로일 뿐이다. 선한 얼굴의 금융회사 직원들은 컴퓨터가 놓인 책상 앞에 앉아, 자기 일에 충실한 덕에 어떤 가정들을 파괴하고, 가장들을 자살로 내모는 ‘얼굴 없는 잔인성’을 실천해버렸다. 여신의 질투어린 저주로 괴물이 되어버린 미녀, 메두사처럼 누구든 원치 않게 악당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장기판에서 종횡무진 하는 말도 장기판 밖에선 아이들의 노리감이 될 뿐이다. 많은 사회인들이 물고기를 잡아도 삼키지 못하도록 목을 동여맨 새를 이용하는 가마우지 낚시의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영광을 얻었다. 물론 맡은 배역은 어부가 아니다! 기꺼이 이 질서의 일부로 살고자 하는 이들은 제 아무리 다수처럼 보인다 해도 적벽의 조조(曹操)군에 지나지 않고, 설령 크게 성공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국 유방(劉邦)의 동지들과 같은 운명일 뿐이다.

숀 펜과 나오미 와츠, 그리고 베네치오 델 토로의 열연과 “삶은 계속된다.”는 대사로 각인된 <21그램>은 할리우드에 입성한 안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작품이다. 그의 <비우티풀(Biutiful)>과 변영주 감독의 <화차>에는 약자가 약자를 파괴하고 자책하는 비극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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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티풀>과 <화차> 두 작품 모두 약자가 약자를 파괴하고 자책하는 사회의 비극을 그린다.]


그리고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당시로선 흔치 않게 채식을 했고, 음주를 하지 않았으며,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평생 비혼을 고집했다. 음악과 미술, 영화와 건축에 조예가 있었다. 정치인이 되고, 마지막 날까지 블론디라는 이름을 가진 애견과 함께 한 그가 속한 정당은 동물보호법의 선례를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조국의 피폐한 경제를 부흥시키고 유럽에서 최초로 고속도로를 건설했다. 바그너를 특별히 좋아한 그는 죽는 날에야 오랜 연인과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동반 자살했다. 그의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이다.

역사 속에는 비슷한 살육을 저지르고도 승자가 되거나, 패자였으면서도 뒤에 숨어 그럴 듯한 초상화로 기억되는 자들이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럴만한 시간이 없었다. 유명한 독재자들은 대개 경제부흥과 국민지지라는 공(功)을 가지고 있다. 히틀러가 그랬고, 무솔리니가 그랬다(한국의 박정희 가문처럼).

그들의 공과(功過)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체제와 근본의 가치관으로부터 떼어진 개인적 생활관과 취향은 이토록 허망하기 짝이 없다. 이 구조 안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이룩한 성공과 업적이라도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영웅적인 활약을 펼친 병사가 나치독일에게 받은 훈장과 같다.

그 영광은 곧 부질없이 사라지고-오히려 불명예가 되고, 그저 패전국 전사자들의 묘지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뿐이다. 그들은 아직 그들의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

※이 글은 언론협동조합 <개미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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