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난 최순실 일가의 재산이 대략 4000억원이라고 한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그의 아들 이재용 부회장의 재산은 합쳐서 22조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현대인에게도 이 액수의 크기는 적절한 비유를 통해서만 실감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어떤 계층의 사람들 몇 명에게 어떤 복지가 얼마 동안 가능하다’는 식의 묘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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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이 정복하기 이전의 북아메리카 인디언 추장이나 남태평양 원주민에게 이 돈의 크기를 설명하는 일은 지난한 일이 될 것이다. 우선 일반적 교환수단이나 가치저장 수단으로서 화폐 개념을 이해시켜야 한다. 이것은 문명 전체는 아닐지라도 그 핵심을 이해시키는 작업이다.


진짜 어려운 일은 4000억원이나 22조원에 절대 만족하지 못해 동료들의 것을 훔쳐서라도 더 많이 축적하려는 인간을 이해시키는 일이다. 상대가 베푼 호의보다 더 많은 것을 답례하는 것이 권리이자 의무인 이들에게는 축적 그 자체가 전적인 목적이 된 인간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리고 공동체 성원 누구도 굶주림에 놓이지 않도록 하는 그들의 평등 관념은 이 거대한 부의 축적이 그것을 능가하는 규모의 거대한 빈곤과 나란히 놓여 있는 사실 앞에, 나아가 부와 빈곤이 서로의 원인이 되는 시스템 앞에서 경악할 것이다.

인류 전체 역사의 끝자락에 등장한 이 새로운 인간상은 주류 경제학 저서에서는 마치 까마득한 옛날부터 인간의 본래 형상인 것처럼 들어앉아 있다. 라이어널 로빈스 교수는 1932년에 출판한 저서에서 ‘욕망은 무한한데 자원은 희소한 상태’를 경제의 기본 문제로 규정했다. 경제학은 인간의 욕망이 무한하다는 것을 힘써 증명하는 대신 자명한 전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약 2400년 전 고대의 한 철학자의 생각은 달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재물에 대한 인간의 욕심에 한계를 없애는 특수한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인간 재물욕의 보편적인 무한성을 부인했다. 어떤 사람도 집을 그 고유한 목적대로 사용하기 위해 10채나 혹은 20채 이상 가지려 하지는 않는다. 그가 아무리 부지런히 거처를 옮겨 산다 해도 이용할 수 있는 집의 개수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한 투기 목적의 집에 대해서는 100채나 1000채가 문제되지 않는다. 경제학 용어를 빌려 표현하자면, 사용가치에 대한 인간의 욕망에는 한계가 있지만 교환가치에 대해서는 한계가 없다. 카를 마르크스는 교환가치에 대한 치부욕을 사용가치에 대한 물욕과 구별하고, 무한한 치부욕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화폐 경제의 수립으로 등장한 사회적·역사적 산물로 규정했다.

물론 주류 경제학에 들어선 새로운 인간상으로 최순실, 이재용의 면모를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경제학에서 희소한 자원을 다투는 태생적인 욕심꾸러기들의 싸움은 시장 경쟁에 의해 파괴적 적대가 아닌 조화로 나간다. 국가에는 이 경쟁이 공정하게 진행되도록 게임의 룰을 정하고 감시하는 역할이 할당된다. 그런데 박근혜 게이트에서는 주류 경제학이 전제하는 시장이나 국가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가장 희극적인 것은 평소 입이 닳도록 시장경제를 외쳤던 재벌들이 실천하는 마르크스주의자의 모습으로 박근혜 게이트에 입장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국가를 부르주아지의 집행위원회라고 했다. 사실, 경제학이 그린 시장과 국가의 모습은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이상향을 표현한 것이다.

50년이나 100년쯤 지나 박근혜 게이트가 여러 버전으로 각색된 옛이야기가 되었을 때를 상상해 보자. 탐욕이 화를 부른다는 옛이야기들이 부족해서 박근혜 게이트가 일어난 것은 아니다. 옛이야기 ‘박근혜 게이트’의 교훈이 탐욕에 대한 도덕적 훈계라면, 그것은 진부한 만큼이나 무용할 것이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인간은 어떤 조건에서 무한한 욕망을 탐하는가?

탐욕과 가난에 대한 공포라는 두 가지 동기에 의해 돈벌이에 나서는 체제가 인간 실존의 조건인 한에서 그러하다. 극소수의 수중에 4000억원이나 22조원을 집중시키고도 자원이 희소하다는 주장이 도전받지 않는 공리로 떠받들어지는 체제에서 그러하다. 옛이야기 ‘박근혜 게이트’가 이 교훈을 제도화한다면, 우리의 후대는 다른 체제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다른 체제를 남기기 위한 지금 여기의 노력은 결코 낯설지 않다. 노동3권의 실질적 보장, 누진적인 세금제도와 복지에 의한 재분배 강화, 부동산과 금융 투기의 금지, 소득과 자산 소유의 한계 설정, 공공재의 영리상품화 금지, 부패 기업인들의 경영권 박탈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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