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보기가 두려운 세상이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정보들이 가득한데, 그 정보들이 하나같이 ‘설마’했던 것들이라 마음이 푹푹 내려앉는다. 온 국민을 ‘자괴감’에 빠뜨린 대통령은 여전히 청와대에서 방 뺄 생각이 없어 보인다. 탄핵이 가결되어도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담담히 받아들이겠다는 말을 한 것을 보면, 청와대 100m앞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오열하며 외쳤던 ‘퇴진’이 들리지도 않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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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6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세월호 유가족들이 서울 종로구 청와대 근방 100m 지점에 닿아 경찰 차벽 앞에서 박근혜 퇴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원문보기: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73210.html#csidx3ea236450f137f391246930ca55c5bb

박근혜 게이트가 터지면서 온 국민과 언론계, 정치계 등은 지난 4년을 되돌아보고 있다. 박근혜와 관련된 패션, 미용, 연예인 등이 검색어 순위권에 등장하며 박근혜를 ‘마리 앙투아네트’와 비교하는 의견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대혁명 당시 왕이었던 루이 16세의 왕비로 엄청난 사치와 낭비의 대명사가 되었다. 박근혜가 지난 4년 동안 단 한 번밖에 입지 않았던 수백 벌의 옷들과 미용 목적의 주사에 대한 수많은 의혹까지, 마리 앙투아네트와 박근혜에게서 겹쳐지는 장면들이 몇 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항상 떠오르는 책 한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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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린 헌트의 <프랑스혁명의 가족로망스>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혁명 전후로 희대의 ‘음탕한 여자’가 되었다. 이 책은 국가의 아버지인 루이 16세를 명예롭게 죽이는 과정에서 오는 혼란스러움이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증오심으로 커져나갔다고 설명하고 있다. 증오심은 성적인 표현으로 주로 나타나 마리 앙투아네트를 희롱하기 위한 포르노그라피가 넘쳐났고, 혁명에서의 여성참여가 더욱 배제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박근혜와 관련된 성추문 의혹들도 끊이지 않고 있다. 박근혜가 ‘영애’의 자리로 있을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얼마 전 고양시 박근혜퇴진 집회에서 만난 한 사람이 나에게 와 ‘아무래도 박근혜 야동이 있는 것 같다’ 하고 이야기를 했다. 청와대에서 비아그라를 대량 주문했다는 사실이 알려진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그는 이어서 ‘그것(야동)이 공개되면 우리가 이렇게 집회하지 않아도 될텐데.’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거기에 대해 나는 ‘(야동이) 공개되면, 그것을 찍고 유포한 사람도 당연히 처벌받아야죠.’라고 답했고, 그는 더 이상 야동 루머에 대해 말을 잇지 않았다.

대화는 끝났지만 계속해서 고민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야동’이 공개되었으면 한다는 그 마음속에 박근혜퇴진 집회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자리가 없을 것 같다는 고민. 박근혜를 욕하는 노래가 아무리 속 시원해도 혐오표현이 있는 노래를 광장의 중앙 무대에 세우지 말자고 목소리를 내면 벽을 치는 사람들에 대한 고민. 광장 속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쳤던 수많은 사람들 속에 노동자를 성차별하며 보복해고한 어떤 복지관 관장도 있었다는 소식을 접하며 누군가에게는 가해자인 사람들도 이 광장에 함께 서 있다는 불편한 고민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프랑스혁명 당시 프랑스 시민과 지금의 한국 시민은 분명히 다를 것이라 믿는다. 프랑스혁명 당시에는 포르노그라피로 혁명의 열기를 고취시킨 측면이 있지만, 지금은 더 다양한 목소리들이 광장 안에 쏟아져 나온다. 박근혜 게이트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겪고 있었던 문제까지 함께 해결해나가자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여러 투쟁사업장들의 이야기도 어느 때보다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지금이다. 광장 안의 목소리에 누군가를 혐오하는 발언이 섞여 있을 때에는 다른 언어로 바꾸자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 나오는 광장이 나는 좋다. 누구나 정치의 주체가 되는 광장에서 어떤 정치를 이어나갈 것인지, 어떤 국가에서 살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광장에 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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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600년 만에 열렸다는 청와대 100m 앞 시위에서. (신지혜, 이갑용대표, 허영구대변인)

광장의 분위기가 바뀔 날이 머지않았다. 9일 탄핵안이 가결되느냐 부결되느냐에 따라 광장의 분위기는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결과를 마주하든지 먹고사는 문제로 다른 이들의 삶에 무관심했었던 우리를 반성하고,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사회에 대해 계속 이야기 해나가길 바란다. 박근혜게이트의 공동 주범들을 함께 처벌하지 않고 그저 ‘박근혜를 퇴진시켰으니 됐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탄핵안 가결 여부를 떠나 온 국민을 주말도 없이 피곤하게 만든 박근혜가 국민들의 자괴감 회복을 위해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기를 바란다. 박근혜가 퇴진한 세상에서 당신과, 나, 우리가 공존하며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을 당장 이번주부터 해나가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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