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들이 규제청정지역법으로 부르는 ‘규제프리존법’이 국민의당과 자칭 진보 시민단체의 찬성을 받는 공청회까지 거쳐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노동시장 선진화 법안들도 새누리당 의원들에 의해 그대로 재발의된 상태이다. 최순실이 감옥에 갇히고 박근혜가 탄핵 소추된 상황에서 그들이 재벌들로부터 주문제작 의뢰받아 만든 규제 완화 법안들은 건재하다.

탄핵 소추된 대통령 박근혜가 임기 전체를 통틀어 일관되고 정열적으로 옹호한 한 가지 경제적 신념이 있었으니 그것은 규제 완화였다. 그에게 규제는 “쳐부숴야 할 원수”나 “암 덩어리”로 은유되고, “한꺼번에 단두대에 올려 처리해야” 하거나 “모두 물에 빠뜨리고 필요한 것만 건지는” 대상이었다. 만천하에 드러난 그의 지적 수준에도 불구하고 규제에 관한 그의 깊은 적대감은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약 80년 전에 <고용, 이자,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에서 묘사한 대목을 연상시킨다.

“경제학자와 정치철학자의 사고는 그것이 옳을 때나 틀릴 때나 모두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력하다. …실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지적인 영향권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이미 고인이 된 어떤 경제학자의 노예일 뿐인 경우가 보통이다. 권좌에 있는 미치광이는 허공에서 목소리를 듣지만, 그 광기는 몇 년 전에 있었던 어떤 학구적인 난문으로부터 증류되어 나오는 것이다.”

최순실이 만약 주술적 힘을 가져 죽은 경제학자의 목소리를 박근혜에게 전해주었다면,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2006년 사망한 자유주의 경제학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이었으리라. 그는 사인의 특정한 능력을 국가가 인정하고 관리하는 모든 제도들, 즉 인가제, 면허제, 등록제 등에 반대했다. 시장의 힘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믿음을 드러내기 위해 그는 만인의 상식에 과감히 도전했다. 그는 의료면허제도를 공격했다. 시장은 결국 돌팔이를 도태시키고 명의를 부자로 만들어 각자의 능력에 따른 정의를 실현할 것이었다.

시장의 힘에 대한 신뢰에 비례하는 국가의 역할에 대한 불신, 이것이야말로 프리드먼이 대변하고자 했던 규제 완화 사상의 요체이다. 그런데 박근혜 게이트의 거의 모든 스캔들에서 확인되는 국가의 타락상에 깜짝깜짝 놀라는 마음들은 국가의 힘을 줄이고 시장에 힘을 실어주자는 주장에 솔깃해질 수 있다. 사실 규제 완화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포함해 역대 정부의 일관된 흐름이었다. 또 국가 청렴도에서 높은 수준에 있는 많은 유럽 국가들에서도 나타나는 역사적 추세이다. 따라서 규제 완화 자체의 논리에 대한 올바른 사고를 위해서는 우리나라에서 규제 완화가 재벌들의 노골적인 뇌물 거래로 진행됐다는 사실을 잠시 제쳐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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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 선진화법은 규제 완화를 사고할 수 있는 예이다. 박근혜 정부는 기간제 기간 연장, 파견제 파견 대상 확대 등으로 사용자의 비정규직 사용의 자유를 더 확대하고자 했다. 또 정리해고와 징계해고만 가능했던 합법 해고의 범위를 저성과자에 대한 일반해고까지 확대하고,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을 완화해 노동자의 고용 안정성을 더 낮추고자 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1944년 채택한 필라델피아 선언의 첫번째 조항은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고 선언한다. 노동시장 선진화법은 노동력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데 방해가 되는 여러 규제들을 최대한 없애겠다는 것이다. 노동권이 잘 보호되는 것으로 유명한 프랑스에서도 1990년대 이후 해고의 자유가 전반적으로 확대됐다. 사용자들은 “오늘의 해고가 내일의 고용을 창출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런데 오늘날 프랑스에서 고용이 늘었다는 소식은 없다.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이후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고 한 직장에서 근무하는 기간이 가장 짧은 나라가 된 한국에서도 기업 투자는 내리막길이고 실업률은 유례없이 높다.

박근혜가 프리드먼의 사상을 접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규제 완화가 재벌들로부터 돈을 거둬들일 요술 지팡이라는 사실은 귀신처럼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재벌들의 불법정치자금과 뇌물은 규제 완화만을 거래 대상으로 삼는다. 그리고 규제 완화 일변도 국정 운영 속에서 재벌과 부자들은 더 많은 재산을 쌓았지만 노동자와 가계는 더 가난해졌다. 규제 완화는 공익을 해하는 사익 추구의 논리이다.

재벌들이 규제청정지역법으로 부르는 일명 ‘규제프리존법’이 국민의당과 자칭 진보 시민단체의 찬성을 받는 공청회까지 거쳐 2017년 어느 때쯤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 법안의 내용은 규제를 아예 말살하겠다는 수준이다. 19대 국회에서 자동폐기된 노동시장 선진화 법안들도 총선 이후 새누리당 의원들에 의해 그대로 재발의된 상태이다. 최순실이 감옥에 갇히고 박근혜가 탄핵 소추된 상황에서 그들이 재벌들로부터 주문제작 의뢰받아 만들어진 규제 완화 법안들은 건재하다. 촛불 시민항쟁에도 불구하고 공익을 해하는 사익 추구의 체제가 건재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

[관련 영상] 한겨레TV | 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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