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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운전 노동자로 일하고 계신 노동당 당원 이의환 님의 <대리 노동자가 본 세상> 연재를 시작합니다. 매주 월요일, 총 11주에 걸쳐 업데이트 될 예정 입니다. 대리 노동자가 본 세상의 면면들이 구수한 입담과 함께 펼쳐집니다.  ■편집자


[대리노동자가 본 세상 #1] 우리 갱상도 사나이는 그런 거 몬 합니다? 쪽팔리게~

민락동에서 송파로 가는 콜이 떴다. 가격은 좋은데 후불이다. 대리기사 입장에서 후불이란 손님이 카드로 결제한 경우이거나 누적된 마일리지로 결제한 경우를 말한다. 이 경우 기사는 종착지에서 현금을 받아서는 안 된다. 수당은 오더 수행이 완료되면 대리회사에서 통상 10분정도 후에 기사의 충전금 통장에 입금한다. 대개 기사들은 현금으로 받는 걸 더 선호한다. 심리적으로 눈에 보이는 현찰박치기가 돈 받는 재미도 있기 때문이다.

출발지 횟집에 도착하니 40대 후반의 곱상하고 귀티 나는 남자와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인상 좋은 분이 식당입구에서 서있다. 키를 받아 출발 대기 중 10여분 이상 대화가 끝나지 않는다. 이럴 때 기사들은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피크 타임일 때는 속이 타들어 간다. 잠시 후 차문을 연채로 한 발을 뒷좌석에 딛고서 “형이 니 잘사는 거보니 마음이 좋구나”라며 차문을 닫는다. 귀티나는 동생이 “기사님! 카드결제 한 거 아시지요? 잘 좀 부탁하입시더”, “네 그래야죠.” 차가 출발하자,

“제 동생입니더. 오래 기다리셨지요? 미안합니다.”

” 어쩐지 두 분이 비슷하셔서 형제라고 짐작했어요.”

“그리 봤십니까? 저흰 한눈에도 형제 티가 팍팍 납니다. 마 저노마가 세짼기라예. 잘 생겼지요?”

“네 귀티도 나시고요.“

그렇게 잠시 침묵이 흐른 후 한동안 달리는데 뒷좌석에서 한숨 소리가 연신 들리더니, “마, 오늘 마음이 깝~깝~하고 해서 동생하고 한잔 했습니다”하며 한숨을 내쉰다.

“뭐 안 좋은 일이 있으신가 봐요?”

“안 좋고 깝깝해서 동생 보며 위로 쫌 받으려 술 좀 했습니다. 그런데 풀리진 않네예. 형제 가족이라도 안 되는게 있는 기라예.”

“어려울수록 형제나 가족들한테 솔직하게 힘든 건 힘들다고 하시지요?”

“그라믄 안되지? 우리 갱상도 사나이는 그런 거 몬합니다? 쪽팔리게… 정 힘들면 찾아가 붙잡고 우는 사람은 따로 있는기라. 장남이 되어 갖고 동생들 걱정주면 안되지요.”


그러더니 ~ 폰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으응, 잘 지내나?”
“~~”
“그래 아빠가 니 요즘 바쁜 거 같아 쫌 참았다! 스서방은 요즘 어찌지내노?”
“~~”
“그래,~ 맞다! 맞다! 그 친구 나라의 풍속이란 게 있는 기제. 거긴 날씨가 어떠노? ”
“~~”
” 미란아! 아빠는 니들 사랑한데이. 니는 아빠 안보고 싶나?”
“~~~”
” 그래 여그는 걱정 말고 아들 잘 키우고 있그라. 스서방도 다리 다친 거 나스면 좋은 거 쫌 해 멕이고 알았제? 아빤 우리 미란이는 걱정 안한다!”
“~~“

아마도 스서방은 스미스나 스티브일 거라는 상상을 했다.

그렇게 통화가 끝나는가 싶더니 잠시 후 다시 전화를 건다. 이번에는 화상 통화 같다. 호음이 들리더니 앳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빠~아?”

“음 우리 막내 잘 지냈나아?”

“응~ 아빠 나 오늘 무지 바빴어!”

“그래~ 근데 와 벌써 목도리 했나?”

“캐릭터, 아이템이야.“

(잠시 뜸을 들이더니) “미경아.”

“응”

“런던엔 갔다 왔나?”

“응 어제 돌아 왔어”

“아빠 얼굴 안보이제?” (하더니 뒷좌석 불을 켜고) “보이나?”

“응~ 아빠 어디야?”

“아빠 집에 가다 딸 목소리가 듣고 싶어 차에서 전화했다.”

“잘 해떠~ 근데 운전하면서 폰 하는 거야?”

“아니다. 뒷자리에서 하는 기다. 미경아~ 아빠는 니가 원하는 대로 해줄 수밖에 없다. 너무 멀리 있어서 항상 걱정이지만 울 딸이 잘해왔으니 아빤 널 믿는다.”

“아빠 고마워.”

“미경아~ 니가 선택한 거니까 딴 거 겁내지 말고 앞으로만 가라! 아라쩨?”

“응, 아빠~”

“미경아”

“응, 아빠!”

“아빠가 우리 막내딸이 마이 보고 싶구나.” (순간 소리가 살짝 떨린다.) “사랑한다.”

“아빠! 나도 사랑해요!”

“그래 감기조심하고?” (하더니 폰을 향해 밝은 표정으로 빨려 들어갈 듯이 손을 흔들며) “안녕! 사랑해!“


부녀지간의 애틋한 대화를 들으며 나도 일본에 간 딸이 보고 싶어 졌다. 통화가 끝나고 쑥쓰러웠던지 한 마디 덧붙인다.

“죄송합니다. 제 막내입니다. 이대 다니다 영국으로 유학 가겠다고 해서 보냈는데 항상 걱정입니다.”

“그러시죠? 저도 딸이 일본에 있어서 늘 보고 싶고 걱정이 앞서네요.”

“아? 그러십니까?, 아빠들은 다 그런가 봅니다.”

“네, 그래도 어차피 지들 인생인데~ 지켜봐줘야죠.”

“그렇습니다. 그런데 따님은 어디에 있나요?”

“큐슈 OOOO대학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래도 기사님은 가까우니 뭔 일 있으면 당장 달려갈 수 있지만 전 너무 멀다보니 엄두가 잘 안 납니다.”

“그러시군요.”

“아무리 자식이지만 부모 맘대로 할 수 없으니 지켜보는데, 항상 불안하죠.”

“그러게요. 부모 맘은 다 같은 거 같네요.”


그렇게 잠시 공감을 하고 나서 한동안 조용히 밤하늘 창밖을 응시하더니 다시 깊은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제가 오늘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사실은, 제 밑에 직원이 200명 정도 됩니다. 사업한지 20년이 넘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월급을 못줬습니다. 몇 달만 지나면 괜찮아 질텐데…”

아, 그래서 한숨소리가 유독 깊었구나!

“아, 그러시군요. 답답하시겠어요?”

궁금했지만 더 깊이 물어보는 건 예의가 아닌 거 같았다.

“우리 젊을 때는 몇 달 안 받고도 일했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직원월급 만큼은 절대 밀리면 안 되는 긴데… 차암…” 이어 또 한숨소리가 들린다. 그러더니 “기사님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이 질문은 내게 답을 바래고 한 질문은 아닐 게다. 오죽 답답했으면…
“직원들과 허심탄회 하게 얘기를 나눠보시죠”
“그래야겠지요 그래야 할낀데~에…”

그렇게 대화가 끝나고 다시 한숨소리가 들린다. 멋쩍어서 인지 손가락 관절에서 드드득 하는 소리까지 들려온다. 밤하늘 별을 보며 달리는 나까지도 마음이 편치 않아졌다. 그렇게 도착지에 주차를 하는데,

“내 별소리를 했네요. 미안합니데이.”
“아닙니다. 잘 되실 겁니다. 너무 걱정 마셔요 내일도 태양은 또 뜨니까요. 시간이 약이라 하지 않습니까?”

준비된 위로의 멘트를 하고서 지하주차장 엘리베이터로 향하는데 사장님의 어깨가 슬프고 힘없어 보였다. 두 딸과 아내가 저 모습을 보면 참으로 가슴 아파할 거 같다. 힘내세요, 사장님!

경제가 어렵긴 어려운가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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