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노동자가 본 세상 #2] 사장이 퇴직금을 2년 치만 주겠다네요! 나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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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이가팔리. 공장이 많은 주변 식당에서 콜이 떴다. 동네에서 꽤 유명한 식당이다. 평소에도 콜을 많이 받았던 곳이다. 머리가 짧고 시골스럽게 생긴 젊은 친구와 긴 머리의 매부리코를 한 호리호리한 50대 초반의 남자 둘이 담뱃불을 끄고 나서 서로 악수를 하더니 부둥켜안으며 진하게 인사를 나눈다. 아쉬움이 많은 것 같아 보인다.


“과장님, 잘 되셔야 합니다!”

“그래 경석아, 고마워! 조만간 다시 모이자, 내가 안정되면 전화할게!”

어두운 주차장을 빠져 나오는데, 매부리코의 남자가 긴 한숨을 내쉰다. 그러더니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조금 전 행동이 쑥쓰러웠는 지 먼저 말을 건넨다.

“제가 오늘부로 공장을 그만두었거든요.”

“아, 그러시군요! 어쩐지 두 분이 각별하게 인사를 나누셔서…”

8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내일부터 다른 회사로 출근을 한단다.

“퇴직하셨는데 하루도 못 쉬시고 출근을 하시네요?”

“자식새끼와 마누라까지 합쳐서 저만 쳐다보는 입이 4개인데 어쩝니까?”

룸 미러로 슬쩍 쳐다보니, 수심이 가득해 보인다. 잠시 후 창문을 열더니 양해를 구한다.

“기사님 담배한대 태우겠습니다. 담배 피우시면 같이 피우시고요.”

“괜찮습니다. 태우셔요. 전 끊었어요.”

“아 그러셔요! 그럼 좀 참아 볼게요.”

“아닙니다. 전 간접흡연 좋아해요. 피우셔요.”

손님을 편하게 해주려는 나의 상투적인 멘트다. 실제로도 아직 담배연기냄새가 좋다. 매부리코의 과장님은 ‘네 그럼 한 대만’하며 담뱃불을 붙인다. 요즘은 손님의 80%이상은 기사에게 흡연의 허락을 받으며 피운다. 가끔 비매너의 손님은 옆자리에서도 묻지도 않고, 담배연기를 푹~푹~ 뿜어대곤 하지만. 창문을 닫고 스마트폰 문자를 보내는 것 같더니 말문을 연다.

“제가 사실은 회사를 그만두는데 아무리 작은 회사지만 회사에선 수고했다 술 한 잔 안사주네요.”

“아 그러시군요. 그건 좀 너무했네요. 8년간 청춘 바쳐 일해 준 직장인데…” (그런데 청춘 맞나?)

“다행히, 동생들이 섭섭하다고 간단하게 한잔하고 헤어지는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8년간 출퇴근시간 포함해서 관리자로서 열심히 일했으면 밥 한 끼라도 나누며 수고했다 하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요?”

되레 내가 화가 나서 말이 많아 졌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사장이 퇴직금을 2년 치만 주겠다네요! 나참…”

“그건 또, 왜 그러죠?”

“이 회사가 2년 전에 법인으로 전환했는데요, 개인회사에서 법인으로 전환할 때 제가 3일간 회사를 ‘그만둔다!’ 하고 안 나간 적이 있어요!”

회사에서 이제 와서 그때 퇴사처리 되었다고 하면서 6년 동안의 퇴직금은 안준다고 우기는 모양이다. 순진한 매부리코 과장님!

“아니 그럼 어떻게 하셨어요?”

“제가 그럼 차라리 법인 근무 2년 치를 주지 말고 개인회사일 때 6년 근무한 퇴직금이라도 달라했지요.”

“회사에서는 뭐라하나요?”

“사장님이 그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좀 더 물어보니 3일간 무단결근은 회사 사장하고 말다툼하고 ‘그만둔다’ 말하고 출근을 안했는데 사장님이 다시 나와 달라고 해서 화해하고 다시 근무를 했단다.. 월급도 3일치 공제는 없었고 정상으로 받았단다.

“회사가 망해도 임금채권은 최우선으로 보장해주는데 그건 말이 안 됩니다. 그런데, 사모님도 그 사실을 아세요?”

“아뇨, 마누라 알면 난리 칠거예요”

“그럼 다음 달 말일까지 기다렸다가 안 나오면 그때 얘기하시고…”

 

하면서 내가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서 방법을 알려줬다. 운전하면서 손님보다 내가 더 흥분을 하다니… 얘기를 더 나눠보니, 요즘도 이런 분들이 있구나 싶을 정도로 세상물정 모르고 열심히 일한 티가 났다. 사장 힘들 땐 월급도 자진해서 깎아 받으며 일했더니 다시 회사가 잘되니까 모질게 대하고 견디다 못해 그만두는 것이란다.

“제가 직접 도와드리거나 필요하면 제가 아는 노무사님을 소개해드릴 수도 있지만, 직접 해보시면서 권리를 찾아보셔요. 제 전화번호 알려드릴게요.” 하면서 번호를 불러드렸다.

하여간 이놈의 쓰잘 데 없는 오지랖이 문제다. 도착지에서 차 키를 건네자 매부리코의 과장님이 밝은 얼굴로 악수를 청한다.

“감사합니다. 제가 참 무식하지요?”

“피곤하실텐 데, 잘 쉬시고, 새 직장에서 잘 적응하시기 바랍니다”

저녁 별빛을 보며 걸어가다가 (스스로에게) “너나 잘해라 임마!”하고 혼잣말을 되뇌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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