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은 주당 52시간제가 실제로 잘 지켜지도록 하자고 한다. 이 제안은 위기의 수준에 비해 너무 쩨쩨한 점이 문제다. 세계적 저성장 국면이 지속되고 있고 더욱 거세질 정보화·자동화 추세까지 고려한다면 주당 35시간+5시간(연장근로) 상한제를 과감히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 정도의 획기적 노동시간 단축은 200만개 이상의 신규 일자리를 만들어낸다.

실업의 원인은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936년 발표한 <고용, 이자,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에서 이 말장난 같은 사실을 공들여 증명해야 했다. 케인스 이전 주류 경제학은 경제적 생산 활동이 일자리 수요를 자동으로 보장한다고 보아 실업의 존재를 부인했다. 그래서 실업 대책이란 것도 성립할 수 없었다.

오늘날의 경제학은 케인스가 증명한 비자발적 실업의 존재를 부인하고 주류의 전통으로 복귀했다. 경제학자 로버트 루커스에 따르면, 사람들이 실업자가 되는 이유는 일하지 않는 즐거움이 노동을 통해 얻는 보상보다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루커스의 눈에 실업자들은 여가를 즐기기 위해 돈을 벌지 않기로 선택한 고집 센 무리들이다. 이로부터 도출되는 실업 대책은 노동시장에 공공이 개입하지 않고 자유경쟁 노동시장에 맡기는 것이다. 2010년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3인의 경제학자가 실업의 원인 중 하나로 실업수당 인상을 지목한 것도 이런 전통의 연장이다.

우리는 이런 사고가 반영된 정치적 선전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눈높이를 낮추면 일자리는 있다”(이명박), “부족한 청년 일자리, 중동 등 해외에서 해결”(박근혜), “노동개혁으로 청년 일자리 해결”(김무성) 등등. 권력을 가진 자들의 주문대로 우리나라도 소위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임금을 낮추고 해고를 더 쉽게 해왔다. 그런데도 실업 문제는 재앙으로 치닫고 있다.

나라 경제를 걱정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많은 정치인, 전문가들은 실업 문제의 해결책으로 더 많은 비정규직과 더 쉬운 해고를 내용으로 하는 ‘노동개악’을 주문하는 한편에서 저출산 문제에도 심각한 의견 표명을 해야 한다. 누구는 과로로 죽고 누구는 일자리가 없어 죽는다는 호소가 나온 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고용과 실업 문제를 둘러싼 이 도착적 현실의 지속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최악에 속하는 자살률, 산재사망률, 출산율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출생과 사망에 관한 인구통계는 너무 멀게 느껴지지 않는 시간대 안에 한국인의 경제적 ‘멸종’을 계산해낼지도 모른다고 한다면 과장일까.


다행히도 우리보다 앞서 실업 문제로 몸살을 겪어온 각국은 사회적, 정치적 합의를 통한 실험을 축적해왔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가 그것이다. 프랑스는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오브리법을 통해 주당 노동시간을 39시간에서 35시간으로 단축했다. 몇 가지 제도적 미비로 고용효과는 기대 수준의 절반 정도에 머물렀지만 불황기에는 노동시간 단축이 일자리 창출의 가장 유력한 대책이라는 교훈은 바래지 않았다. 오브리법은 보수 정부의 등장으로 폐지됐지만, 프랑스는 2016년 주 35시간제를 다시 도입했다.

박근혜 게이트로 형성된 조기대선 정국에서 주요 대선 주자들이 노동시간 단축을 꺼내든 것은 일자리 위기가 공멸이냐 공존이냐의 선택을 더 미룰 수 없는 상황으로 진전된 현실을 반영한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은 주당 52시간제가 실제로 잘 지켜지도록 하자고 한다. 이 제안은 우선 위기의 수준에 비해 너무 쩨쩨한 점이 문제다.

정부 공식 통계로 한국인의 노동시간은 OECD 국가 2위인 2113시간이다. OECD 평균보다 무려 43일을 더 일한다. 주당 52시간을 연간으로 환산하면 무려 2549시간이다. 유럽에서는 주당 30시간 이하의 요구와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세계적 저성장 국면이 지속되고 있고 앞으로 더욱 거세질 정보화·자동화 추세까지 고려한다면 주당 35시간+5시간(연장근로) 상한제를 과감히 도입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연구 결과를 보면 이 정도의 획기적 노동시간 단축은 200만개 이상의 신규 일자리를 만들어낸다.

노동시간의 양적인 축소가 추가 고용으로 이어지도록 하려면 노동권의 획기적 강화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허영구 <월간좌파> 편집위원장이 2015년부터 동 매체에 연재한 ‘노동시간 이야기’는 한국의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은 노동시간을 사용자에게 절도당하고 있는지에 관한 빛나는 보고서이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정 노동자들은 장시간 저임금 노동으로 내모는 사용자의 위세에 저항하지 못한다.

일하는 대신 여가를 즐기는 선택을 실업의 원인으로 보는 사고에 바탕한 일자리 약속은 일종의 속임수였다는 것이 이제 충분히 증명되었다. 노동시간의 획기적 단축과 불안정 노동의 철폐가 가장 유력한 일자리 대책이다. 이 대책은 3명이 적정 인원인 업무에 2명의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를 고용해 장시간 부려먹는 게 언제나 훨씬 수지가 맞는 자본의 이해에 맞서는 일이다. 시장 스스로 그 일을 할 수 없어 오늘날과 같은 일자리 위기가 왔다. 살만한 일자리를 만들고 지키는 일은 결국 사회와 정치의 몫이다.  ■

Comments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