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지나니 이제야 온전히 새해를 맞이한 것 같습니다. 2017년 2월 1일부터 제6기 노동당 경기도당 위원장 임기를 시작했고, <이-음> 발행인의 역할도 계속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래와 같은 인사도 오늘이 마지막이겠군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러고 보면 21세기가 된 지 한참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의 모습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것을 빼면 정말 21세기가 맞나 싶습니다. 헌법재판관 몇 명의 판단에 국운을 걸고, 검사들의 의지로 권력이 정리되며, 미국의 세계전략에 복종하여 위안부 졸속협상과 사드배치를 추진하다 동북아에서 고립 중인 2017년의 모습 말입니다.

저는 2017년의 화두로 ‘폭’을 삼고자 합니다. ‘열폭’에 그치지 않고 ‘폭주’하는 해, ‘광폭’으로 움직이며 ‘폭’을 넓히는 해로 만들어볼까 합니다. 이러한 마음과 함께 지난 1월, 조금은 차분하게 노동당원들과 나눈 이야기를 ‘노래 두 곡과 영화 한 편’으로 엮어봅니다.


노래 두 곡 : <위험한 세계>에서 <선언>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밥 딜런이 수상하여 화제가 되었습니다. 시대의 예술이자 기록인 대중음악의 가치에 대한 인정이며, 평생 자신의 길을 걸어온 싱어송라이터 그리고 그와 함께 호흡해온 대중에 대한 존중의 표시로 생각합니다.

한국에도 그에 견줄만한 음악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최근 새 앨범을 발표한 조동진, 그리고 한대수와 김민기, 정태춘 같은 이들이 대표적이죠. 물론 젊은 음악인들 중에서도 여럿을 호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 중 한 사람, 윤영배를 불러들이려 합니다.

솔로앨범은 몇 장 내지 않았지만 실은 아주 오랫동안 작사/작곡가로 활동해온 사람입니다. 장필순의 대표작들을 함께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죠. 또한 곳곳의 현장에 연대해온 실천적 예술인이고, 노동당이 주최하는 ‘레드 어워드’에서 ‘올해의 음악’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음반 《위험한 세계》를 열어보면 지금 살고 있는 제주도 풍경사진들로 가득하지만 목가 풍의 낭만을 노래하고 있진 않습니다. ‘자본주의’와 ‘점거’, ‘구속’을 노래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면서도 선율과 분위기가 무척 아름다운데 저는 두 곡을 특별히 좋아합니다.

“저기 철탑 위에 오르는 사람이 보이는가”로 시작하는 <위험한 세계>는 우리사회 곳곳의 아픔을 더듬고 보듬습니다. <선언>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세상을 소망합니다. “나와 같은 생각이 온 세상에 가득 차 넘치는 날”이라 노래할 때의 절실함은 마음의 페달을 움직이게 하는 힘을 지녔습니다. 저도 열심히 페달을 밟겠습니다. 이 오르막이 끝나는 그 자리에 함께 서있는 장면을 그려봅니다.

 


영화 한 편 : <내일을 위한 시간>

벨기에의 영화감독 다르덴 형제가 만든 <내일을 위한 시간(Two Days One Night)>(2014)이란 작품을 아십니까? 원제대로 풀면 ‘1박2일’인데, 한국의 유명한 예능프로그램과 같은 제목입니다. 물론 여행을 다니며 괜한 고생을 하다가 맛있는 음식 혹은 까나리 액젓을 먹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줄거리를 적어보겠습니다. 우울증 치료를 위하여 장기휴직을 마친 주인공이 회사에 복직하기 직전, 해고 통보를 받습니다.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이 투표로 해고를 결정했다는데, 알고 보니 석연치 않은 절차를 거쳤습니다. 게다가 회사는 동료들에게 보너스를 나눠주기로 했답니다. 약 한 사람 분의 딱 1년 치 연봉을 16명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는 대신, 노동자 한 명을 아예 해고할 수 있으니 회사에게는 이득이고, 다른 노동자들에게는 의외의 선물인 셈입니다.

주인공은 재투표를 요구하고, 동료들을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해고에 반대해달라고 설득합니다. 그런데 동료들의 반응은 기대와 다릅니다. 우리식으로 하면 “밀린 공과금과 자녀 학원비 낼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기 힘들어서, 또는 “보너스를 포기해선 안 된다, 우리 사정부터 생각하라”고 말리는 가족들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회사 사장과 관리자는 주인공을 압박합니다. 눈물겨운 노력 끝에 시작된 투표,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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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네 가지에 주목합니다. 첫째는 주인공이 불안정한 상태의 여성이라는 겁니다. 둘째는 노동자들이 경영에 관여하는, 이 영화에서는 해고를 직접투표로 결정하는 제도입니다. 셋째는 아무리 북유럽 권의 국가라 해도 서민의 삶은 비슷하고 동료보다 보너스에 강한 유혹을 받는 처지라는 겁니다. 넷째는 결말과 관련되어 있는데, 연대와 자존에 관한 문제입니다. 우리사회로 돌아와 보았을 때에 각각에 해당하는 변화, 즉 주체, 제도, 조건, 공동체의 변화를 누가 이끌어내야 할까요? 바로 우리입니다.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은 해피엔드도, 그렇다고 절망으로 끝난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선지 더욱 깊은 감동과 긴 여운을 남깁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이유로, 저마다의 시기에 노동당으로 모였습니다. 그동안 실망하고 기운이 빠진 분도 있을 겁니다. 반면, 각자의 자리에서 새로이 의욕적으로 움직이는 분들이 계십니다. ‘내일을 위한 시간’, 다시-함께 만들어갔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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