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노동자가 본 세상 #3] 존재를 무시하려고 하는 순간 그것은 폭력이 된다

“존재를 무시하려고 하는 순간 그것은 폭력이 된다”
– mila의 나누고 싶은 이야기 中(https://brunch.co.kr/@mila) –

woman-1006102_1280

“아저씨, 편의점 알바보다 더 괜찮네요!”

지난 겨울, 나 홀로 아파트로 가시는 여성 고객이 감정을 섞어 내게 던진 말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말하지 마셔요!”

“시간당 6천원 알바 보다 20~30분 운전하고 8천원 받으면 더 많이 받는 거잖아요!”

대리운전을 하면 손님에게 받는 대리비용 중 20%가 대리회사의 몫(중개 수수료)이다. 어떻게 받아 가냐고?

대리기사 마다 가상의 충전금 계좌가 있어서 자기 계좌에 충전금을 입금해 놓아야만 대리오더를 받는다. 원 단위의 계좌에서 기사가 대리운전을 끝내고 스마트 앱 프로그램에서 완료버튼을 누르는 순간 자동으로 내 가상계좌에서 대리회사(오더를 명령한 중개회사)로 20 %가 빠져나가는 형태이다. 대리기사 수수료20%는 일률적이어서 오더 금액이 클수록 대리회사의 수수료 수입도 더 커지는 형태이다.

대리기사가 먼 거리의 콜을 배차 받고 택시로 출발지로 이동하면 수수료 빼고 교통비 빼고 콜당 들어가는 보험료와 프로그램 사용료와 각종 비용 공제하면 그다지 많이 가져가는 것 같지 않다. 통상 콜비의 65%정도를 실제 수입으로 계산하면 얼추 맞는다. 현실적으로 수수료 비율을 축소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노동은 대리기사가 하고 수수료 수입 명목으로 회사가 상대적으로 더 가져가는 구조이다.

물론 대리회사의 판촉비 영업비, 각종 홍보비를 생각하면 대리업계의 구조에서 가장 큰 수입을 차지하는 쪽은 프로그램사인것 같다. 통상 대리회사도 영세한 업체는 2중 3중의 어려움이 상존해 있는 것으로 안다.


그 날은 집에서 빈둥빈둥 대던 차에 경기도 안양으로 가는 콜이 떴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 금액이 제법 괜찮아서 오더를 잡았다. 출발지에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 네 팀이 기다리고 있었다. 차 두 대가 동시에 움직이는 콜이다. 차 안에서 내내 젊은 여성과 남자사이에 오가는 욕설과 똑같은 얘기를 반복해서 들으며 귀를 후비며 운전을 해야 했다. 요즘 젊은이들 중 여관을 전전하며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더니 이들인 것 같다. 목적지에 가면서도 내내 일주일 내내 머물던 모텔 얘기를 하더니 최종 목적지도 모텔이다.

두 번째 콜은 1시간을 넘게 기다려도 소식이 없어 무료하게 대기만 하고 있었는데 직선거리로 3키로(실제거리 4.5키로)밖에서 남양주 별내동 가는 콜이 떴다. 즉시 콜오더를 잡고 손님에게 “7분정도 소요됩니다.” 말하고 택시로 이동해보니 신형 에쿠스가 비상등을 켜고 기다리고 있다. 차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으려는데,

       “7분 걸린다더니 약속을 위반했어요.”

반바지에 줄무늬 남방을 입은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스마트 폰을 보며 불만 섞인 소리를 한다. 옆에 않은 단발머리의 젊은 여성이 “아이, 유도리가 있는 거지!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래요!” 하고 말한다. 룸미러로 보니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미인이었다.

그렇게 운전대를 잡고 차를 몰고 나오는데 “신호위반 과속하면 대리비 안 줍니다” 하고 엄포를 놓는다. 나는 ‘거, 짜식 말 더럽게 많네’ 하면서도 “네 당연히 그래야죠” 하고 대답했다. 두 남녀가 나누는 대화로 미루어 보아 여성은 부동산 중개소 실장이고 남자는 땅 매입고객(투자자)이다.

      “내 이번에 김 실장하고 안 사장 덕에 싸게 매입은 했지만 다음에 다시 되팔 때 분명히 한턱 쏜다.”

      “호호호, 다 사장님 실력이고 안목이죠, 운도 좀 따랐고요. 잔금이나 빨리 입금해주셔요.”

      “알았어. 하. 내가 그런 땅이 있을 줄 몰랐어! 하여간 김 실장 조만간 한번 크게 대접할게.”

      “아니에요, 우리 안 사장님께 대접하셔요.”

      “아냐, 안 사장 그 자슥은 이미 내가 해줄 만큼 해줬어!”

      “지난번 건은 언제쯤 정리하실 계획이셔요?”

      “포천에 있는 친구와 지분을 정리하고 팔자고!”

한참을 대화가 오가더니 어느 순간 여자의 코 비명이 들려온다.

      “아이~, 왜 이러셔요?”

      “가만있어봐, 내가 팔이 아파서 그래”

여자 쪽으로 기운 남자의 모습으로 보아 한 팔을 여자의 어깨에 걸친 게다. 남자를 밀치며 ” 어머머 사장님 모냥 빠지게 지금 뭐하셔요?”, “모냥?, 모냥이 뭐야. 가만히 좀 있어봐” 하더니 이내 머리가 여자 쪽으로 기운 듯 싶더니 남자가 여자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게다.

      “어머, 사장님 안 그러시더니 왜이래요. 안 사장님한테 이를 거예요!”

      “좀 피곤해서 그래 봐주라”

      “어머, 어머 왜 이러실까? 참. 내가 앞에 앉을 걸 그랬어.”

김 실장은 당황하고 불쾌한 듯 “빨리 일어나요”, 조금 단호한 듯 흔들며 얘기를 했지만 남자는 이내 잠들어 버리고 여자는 체념한 듯 창문을 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코를 골며 자는 남자를 자기 허벅지 위에 놓고 어이없고 부끄러웠던지 “별내 가시면 어떻게 가셔요?”, ” 날씨가 더워 힘드시죠?” 하면서 이런저런 질문을 던진다.

남자 놈은 잠시 후 여자의 허벅지를 만지고 다시 자세를 고쳐 눕는 모양이다. “어머, 어디를 잡아욧! 맞아 볼래요?!” 하고 남자 팔을 뜯어내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여자분이 단호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 이 남자놈은 갑의 위치에 있거나, 중요한 고객이다.

 

상대적 약자일수 밖에 없는 여성은 더럽고 화나는 상황을 많이 겪는다. 그것을 참는다는 게 엄청난 고통이다. 돈 많은 고객의 실수라고 하기엔 의도가 엿보이는데 그걸 참자니 얼마나 수치스럽고 화가 날까? 폭력 앞에 여성이 겪어야 할 자괴감과 무시당한 존재감은 어떻게 무뎌질지?

다행히 도착지 까지 더 이상의 불상사는 없었다. 아마도 여성의 불쾌한 감정표현이 주효한 게다. 여성이 먼저 아파트 앞에서 내리자, 남자가 “에이 씨발~” 하면서 다시 차를 돌려 안산으로 가잔다. ‘여자를 데려다 주는 거였구나!’ 참 웃기는 놈을 다 봤다. 나는 이제 집으로 가야 하겠기에 “가까운 곳에 대리기사들이 모인 곳에서 다시 대리신청을 하고 가셔요” 하고 차를 가까운 번화가에 대고 내렸다.

돈만 있는 놈의 더러운 추행을 생각하며 걸어가는 길에 긴 가래침을 뱉어냈다. 대리하면서 별거 다 본다. ■

 

Comments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