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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겨울, 유라시아 횡단기 #3] 연해주의 밤

남학생들보단, 여학생들로 북적이던 오전이었다. 이미지 사진을 주업으로 하는 번화가의 ‘스튜디오’가 으레 그렇듯이. 모두 증명사진이 필요했다. 한 녀석은 만료 직전의 여권을 갱신해야 했고, 나를 포함한 나머지는 여권을 처음 만들었다. 사진을 잘라주던 직원이 “같이 여행 가시나 봐요.”라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아셨어요… 라고 되물으려다 말았다. 방금 전에 차례로 사진을 찍고,

      “여권용이요.”

      “네 네 명 다요.”

했던 귀요미들이 우리였기 때문이다.

같은 날 같은 시에 찍은, 반명함판보다 컸던 여권용 사진. 우리는 각자의 사진을 두 장씩 나눠 가졌다. 항상 꺼내보면서 서로 생각해, 같은 건 아니었다. 그 얼마 전 경험자들에게 들은 바가 있어서였다. 외국에서 혹시 여권을 잃어버렸을 때 증명사진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신분을 증명하고 대사관에서 여행허가서를 발급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왜 보라색이나 파란색 구루뽕은 없는 거냐.”

      “몰라.”

앞머리를 말아 넣는 핑크색 ‘그루프’가 이미 유행이었다. 영양가 없는 대화 사이로 쟤네는 영신여고인가 수원여고인가, 이런 영양가 없는 생각을 하고 있던 우리. 희한하게도 남향이었던 사진관의 통유리 밖에서 Dimmer 100의 햇볕이 내리쬐던 날은, 나이를 알려주면 조금은 놀랄 스무살의 사내 네 명이 쪼르륵 사진을 받아가던

여름이었다.


1월 중순의 인천공항 내부는 그 여름만큼이나 더웠다. 여행으론 한참 비수기인데도 줄은 너무 길었다. 그 사이에 끼어 있던 출국심사 첫 단계에서 나는 남들보다 1분 더 대기해야 했다. 내가 봐도 반년 후의 나는 사진보다 훨씬 부어 있었다.

      “재수를 해서요.”

      “아~”

멋쩍어 뱉은 생색에 직원은 당황스럽게도 이해를 돌려줬다.

블라디보스톡에 갈 때는 러시아 국적기를 타는 편이 낫다. 북한 영공을 지나기에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보다 한 시간 정도 빨리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궤도에 오르면 샌드위치를 준다. 퍽퍽하고 말라 보이는 겉모양과 달리 내용물은 의외로 실했다. 실은 햄 하나 치즈 하나였지만, 끼워 넣은 모양은 꽤나 호방한 샌드위치였다. 대신 지나치게 많이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를 털다 보면, 순식간에 유라시아 대륙의 (인문학적)동쪽 끝에 닿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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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입국심사는 간단했다, 긴장한 게 아까울 정도로. ‘빠스뽈뜨(여권)’을 보여주면 얼굴을 흘깃 보고 도장을 찍어주는 게 전부였다. 사람이 드물었던 공항에서 가장 먼저 샀던 것은 100루블짜리 아메리카노였다. 단단히 차려입은 덕에 맑은 날 영하 15도는 커피 한 잔으로도 그럭저럭 견딜 만 했다.

러시아, 특히 우랄 산맥 동쪽의 ‘버스’ 크기는 스타렉스 급의 봉고 사이즈가 대세다. 시내까지 오천 루블을 부르는 택시기사들을 뒤로 하고 탔던 107번 버스가 그랬다. 우리 넷과 또 다른 한국인 모자, 캐리어 여섯 개를 태우니 버스가 꽉 찼다. 눈치 없이 컸던 내 28인치 캐리어가 좀 민망했다. 행선지는 ‘바끄잘(вокзал, 기차역)’. 삯은 짐 값을 포함해 모두 1000루블. 첫날부터 오천 루블을 부른 택시에 호구를 잡히지 않은 건, 선배 여행가들의 블로그 포스팅 덕분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연금술사>를 읽었다. 건방지게도 흥 별로 깊이는 없는데, 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달뜬 초보 여행자는 양치기 산티아고가 겪었던 ‘초심자의 행운’을 은근 기대하고 있었다. 회화책 하나 지니지 않았던 오만한 양치기에게는 좀 뻔뻔한 궁리였지만, 여정의 첫 날은 그 마음을 족히 채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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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리고 보니 이미 어두웠다. 역에서 멀지 않은 숙소를 찾아야 했는데, 블록이 너무 복잡했다. 대로변에 있을 것 같았던 호텔은 알고 보니 골목 사이에 숨어 보이지 않았다. 인적도 드물었다. 십 분을 헤맨 끝에 발견한 것이 저 앞에 가는 할아버지였다. 캐리어를 셋에게 맡겨두고 내가 뛰어갔다.

      “아… 젬추지나 호텔?”

백인 할아버지는 잭 니콜슨을 좀 선하게 닮았다(그게 가능한가?). 인상 좋으셨고,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문제는 내가 러시아어를 못 한다는 거였다. 할아버지가 뭐라고 말을 하는데, 알아듣지를 못하니 미칠 노릇이었다. 그렇게 서로 뜻 모를 몇 마디를 주고받으니, 별안간 그가 내 팔짱을 끼고 어딘가로 걸었다. 사실 무서웠는데, 횡단보도를 건널 때 차를 막아주는 걸 보니 좀 안심이 되기도 했다. 한 오 분을 걸었을까. 어느 건물로 이끄는데, 우리가 찾던 호텔이었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는 호텔의 경비원이었다.

너무 고마웠지만 진한 악수 끝에 할 말은 역시,

      “스파씨-바(감사합니다)!”

뿐이었다.

      “까레이(한국인)?”

      “아, 까레이스끼.”

      “굿 럭.”

      “스파씨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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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풀고 나서야 어두워진 시내를 활보했다. 레닌 동상이 솟아있던 혁명광장을 벗어나 두 블록을 지나니 한인식당이 있었다.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 주인아저씨가 음식을 했고, 미지근한 태도의 직원이 서빙을 했다. 어정쩡한 맛의 비빔밥과 돈가스에 이천오백 루블을 내고 나서 아쉬운 맛에 당기는 건 술이었다. 겨우 저녁 여덟시였지만 어둡고 춥고 한산한 거리는 어딘지 무서웠다. 소심한 우리는 술집 대신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 근처의 마트에선 코젤 맥주가 아주 쌌다. 씻는 동안 발코니에 두었던 맥주는 짜릿했다. 숙박을 구할 때 냉장고 옵션을 찾지 않아도 되는 것이 겨울 러시아의 매력이다. 안주도 없이 방에 모여 침대 밑에서 두 병씩을 비웠다. 문득 창밖을 봤다. 아무도 없는 일방통행의 차로 겉으로 전신주가 늘어서 있는 밋밋한 그림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그 그림을 더없이 차갑게 만드는 눈보라가 치고 있었다. 도시에 발을 처음 딛던 낮과는 완전히 다른 공기. 아, 일월의 연해주는 너무 선명한

겨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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