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10497_1128227737292671_4033614042990908015_o

 

 

배달사고 ; ‘통합이 아니라 조화입니다

지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배달사고’가 벌어졌습니다. 작품상 시상 순서에 여우주연상 수상작 카드가 잘못 배달된 거죠. 시상자 워렌 비티가 의아해하더니 일단 그대로 읽었습니다. 엉뚱한 수상자들(물론 그들도 훌륭한 영화인들입니다)이 감격에 겨워 얼싸안으며 수상소감을 차례로 말한 후, 진짜 수상자를 다시 발표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영화제의 해프닝은 나름 즐겁기라고 하지만 우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배달사고는 어떻습니까?

‘박근혜 집에 보일러 놔드려야겠어요’라며 온정의 마음을 베풀려던 차, ‘골목길 대리 메시지’는 온정의 마음을 수치심으로 바꾸어버렸고, 특별한 출두와 특별한 안심귀가는 분노를 샀습니다. 더 문제는 촛불 국면에서 펼쳐진 광장의 다양한 의견과 의지가 보수정치의 링 안에 갇히고 있는 것입니다. 탄핵안 상정조차 망설였던 여의도 정치인들의 옷자락을 시민들이 잡아끌어 오늘에 이르렀는데, 결국 대권 레이스와 분노의 관리로 수렴 중입니다.

저들은 ‘통합’을 강요합니다. 지금은 21세기,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의 조화’가 시대정신입니다. 시대착오적인, 바둑판 정치스러운 ‘몸집불리기와 대연정 등은 용광로가 아니라 구정물통’이 될 것입니다. 세상을 바꿀 듯 하던 호기는 어디로 갔는지 자판을 두들기고 모니터가 채 식기도 전에 말을 바꾸는 대필작가를 보는 것 같습니다(대필작가 폄하가 아닙니다. 제 생업도 글쟁이입니다!). 보수정치의 내부교체로 이어질 대선 이후부터 차기 지방선거에 이르는 시간 동안, 변화에 대한 열망은 실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또 다른 반동을 낳을 것입니다.

이 국면을 예견하고 과감하게 걸맞은 모습을 선택하고 준비했더라면, 작은 파장 안에 갇힐 정치공학과 이합집산에 매몰되지 않았더라면, 최소한 ‘정치’와 ‘운동’을 구별하여 ‘반정치’ 운운하는 소-관료주의를 경계했더라면, 물론 정치선거제도가 달랐더라면, 한국의 좌파정당도 광장정치를 통한 정치변화의 한축을 자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너무 늦진 않았습니다. “늦지 않았음을 그대 내게 말하여 준다면” 지금이라도 그 때를 준비하는 것, 대중과 함께 좌파정치의 폭을 확장해나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할 지점입니다.


1-1. 노동당, 바꿔야 합니다 세상을

우리의 장미가 아닌 다른 자들의 장미-대선 기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선 밖으로, 세 가지를 제안합니다. (여기에선 노동당과 좌파정당을 묶어 사용합니다. 오만해서가 아니라 제 자리를 알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좌파정당 혹은 좌파정당을 지향하는 정치세력의 구성원들 중 변화를 바라는 동지들에게 드리는 제안이기도 합니다. 더하여 이는 사견이자 노동당 경기도당 위원장으로서 만나온 당원들의 의견도 녹아냈음을 밝힙니다.)

첫째, ‘기조의 유지’입니다. 광장과 시민의 정치를 여의도 내부 정치로 축소시키는 것에 결연히 반대하고 근본적인 변혁과제를 제시해야 합니다. 우리는 광장에서 매번 구호를 선도했습니다. 탄핵도, 구속도, 해체도 모두 먼저 제시했습니다. 그 이후에 공통의 구호로 업그레이드되는 장면을 매주 목격했습니다. 선도능력이 강해서만은 아니었지만 앞서 보고 깊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진보좌파를 자임하려면 현 단계에선 정권교체의 보조와 연정 참여의 계산을 넘어 재벌을 해체하여 경제를 바꾸고, 제도를 바꾸어 정치를 바꾸고, 과감한 의제를 던지는 투쟁을 지속해야 합니다. 누가 하겠습니까? 누가 할 수 있습니까?

둘째, ‘제도의 변경’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때만 되면 정치선거제도 개혁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근래에도 결선투표제, 선거연령 조정 등이 여의도에서 나왔으나 지금은 그들의 혀 밑으로 숨어버렸습니다. 양치질에 게으른 자들의 설태 아래 파묻혔습니다. 게임의 룰이 중요합니다. 대선에서 다른 세력과의 유-불리를 떠나 룰을 바꾸기 위하여, 링을 바꾸기 위하여 진보좌파진영은 한목소리로 결선투표제 도입, 선거/피선거권 연령 조정과 일치, 비례대표 대폭 확대를 들이밀고 각서를 받아내야 합니다. 이미 충분히 훌륭한 정책을 가지고 있는 만큼, 주제가 명확한 공동테이블을 꾸려야 합니다.

셋째, ‘의제의 확장’입니다. 보수정치인들도 기본소득을 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최저임금 1만원도, 기본소득도 앞서 주장하고 실천해온 사람들이 여기에 모여 있습니다. 이미 충분히 논박당한 반론을 반복하는 경우가 있긴 합니다. 가장 낮은 수준의 논점들만 거론해볼까요? 가령 우파도 주장하니까? 동불보호법을 최초로 제정한 국가와 정당은? 독일과 나치입니다. 복지제도를 고안한 것은? 우파입니다. 미국도 부러워한다는 의료보험체계는? 한국의 군사정권이 시행했습니다. 그래서 폐기할까요? 저의가 나쁘고 혁명을 지체시키니까?

기본소득이 기존 사회보장체계를 대체한다거나, 만병통치약처럼 여긴다거나, ‘이것에만’ 올인 한다거나 하는 말도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그에 해당하는 주장도, 그런 사고도, 그런 사람도 본 적이 없습니다. 모든 생각에는 허점이, 모든 행동에는 한계가, 모든 이론에는 오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주장을 마냥 추종하는 것과 애써 부정하는 것의 값은 같습니다.

노동의 종말이란 표현은 과하지만 일자리는 줄어들 것이란 예견이 많습니다. 이견은 있어도 ‘일의 종류는 증가할 것이나 일자리의 총량은 감소’하리란 건 상식으로, 경험으로 알 수 있습니다. 새롭게 만들어질 일자리는 소수 전문직 내지 불안정노동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완전고용의 환상에서 벗어나, 적합하고 특별한 의제를 제시하며 ‘신노동-생태사회’를 맞이해야 합니다.


1-2. 노동당, 바꿔야 합니다 당을

이러한 과제들을 수행하기 위해선, 그리고 수행하고 나면 할 일이 있습니다. 목표에 걸맞게 당을 새롭게 바꾸는 것입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새로운 정당’을 위하여 입당하셨을 겁니다. 말을 바꾸면 ‘다른 정당’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다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소수 리더 중심이 아니라 당원이 중심이 되는 것, 연속성과 안정성 그리고 다양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정당시스템에 강조점을 둘 수 있습니다. 주변화되어 있었지만 21세기 현실 속에서 점점 중요해지는 ‘가치’에 방범을 찍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들은 동시에 이루어질 수도, 하나가 선결되어 다른 하나를 이끌어낼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한 판단이 어렵다면, 정말 정략적으로, 목표지향성에 방점을 찍어봅시다. 막연한 지향이 아니라 위에서 말한 기조, 제도, 의제의 수행에 적합한 내용과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 말입니다. 2017년 정기당대회는 준비된 원안이 통과될 경우라면 8월 27일에 열립니다. 대선도 지나고, 더위도 한풀 꺾이고, 지방선거 스케치도 끝내야 할 시점입니다. 이번엔 그때 우리가-각자가 안에서 해야 할 일을 두 가지를 제안합니다.

하나는, ‘강령의 최적화’입니다. ‘사회주의라는 핵심노선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고수하되 보다 진일보한, 풍성한 강령’을 찾아가야 합니다. 현재의 강령은 4년 전 재창당대회에서 제정되었습니다. 이전 진보신당 강령은 ‘만남강령’으로 불리며 철학의 깊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회당 강령은 구체적인 의제와 정책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둘이 만난 노동당 강령은 최소강령이자 엄밀히 말하여 민주노동당 강령의 축약본에 가깝습니다(게다가 현 강령의 초안 제출자는 탈당하였습니다). 강령은 당의 정신이지만 문구가 절대불변의 금과옥조는 아닙니다. 시대에 맞게, 정체성에 맞게, 무엇보다 기조와 의제를 담아 차별성을 도드라지게 써낼 권한은 언제나 당원들에게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당헌의 전면검토’입니다. 당헌 1조 1항부터 해당됩니다. 관련하여 당원들의 의견이 표출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누구보다 당성이 강한 사람들이 선거에 직접 출마했거나 출마하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목소리도 들리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당의 선거전략, 장기전략과도 연계해야 합니다. 즉, 단순히 지향/취향이 아니라 가깝게는 ‘2018년 지방선거전략과 이후 성장전략의 중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면밀한 고려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이 둘은 상충되는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략과 노선에 대한 토론을 내포합니다. 민주적이고 적합한 절차에 따라 의견을 수렴하고 논의한 후, 결정해야 합니다.

또한 앞서 제시한 세 가지 과제에 적합한 체계로 가다듬어야 합니다. 강력한 리더십과 집행력이 부족한 것이 선결과제라면 그에 적합하게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선 당원/대중의 동기부여가 부족한 상황이 근본적인 문제라면 권한-책임의 분산과 일상적 소통체계가 더욱 절실한 것이 됩니다. 이 둘의 조화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다만 막연하고 추상적인 이상과 슬로건이 아니라 분명한 목표지향성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그 분명한 목표에 적합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2-0. 장미와 민들레 그리고 해바라기의 만남을 위하여

얼마 전, 부천시흥당협 송년모임에서 입당을 결심한 분은 습지생태에 관심이 큽니다. 당직선거 기간에 광주권당협 유세 현장에서 입당원서를 작성하여 부부가 함께 당원이 되기로 한 분도 계십니다. ‘최인영 장학금’ 수여식이 열린 의정부당협 모임에서 입당을 공언한, 민주노동당 시절에 공직선거에 두 번이나 나섰던 분과도 만났습니다. 광화문광장 근처에선 입당한 지 1년 만에 지역당협을 부활시키겠다고 팔을 걷어 올린, 노조활동으로 잔뼈가 굵은 분과 빵과 커피를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지닌 동지들이 제 목소리를 충분히 내고(그런 시스템을 만들고), 승복하며(그런 절차를 준비하고), 힘을 모으는(2017 정기당대회) 판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4월 8일로 예정된 전국위원회에서 구성할 당대회준비위원회는 적당히 관리하는 조직, 그룹별로 안배하는 방식의 노회한 회의체여선 안 됩니다. 그래야 2017 대선을, 2017 정기당대회를, 나아가 2018 지방선거와 2020 총선을 ‘난장판’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난장’은 축제의 다른 이름이 되었습니다.

‘장미와 민들레 그리고 해바라기의 만남’을 고대합니다. 장미는 사민주의 정당들의 심볼임에도 어쩐 일인지 노동당이 지목하였으니 우리의 노선을 대신합니다. 봄날에 만나게 될 테고 가을이면 홀씨를 불어볼 민들레는 확장하는 민중과 씨 뿌리는 지역의 상징입니다. 해바라기는 탈핵-녹색사회의 바람입니다. 저마다 달라 보이지만 뿌리 내려야 할 들판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조급해하지 않되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하되 여유를 가져야 할 때입니다. 저 자신에게 충고하는 말이자 동지들에게 드리는 호소입니다.

2017322

(우리 말고 박근혜가 검찰청 다녀온 날)

이음 발행인
노동당 경기도당 위원장
나도원

Comments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