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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노동자가 본 세상 #10] “왜 나한테 영수증을 걸리냐고!”


더위가 한풀 꺾인 저녁나절, 근처 유명식당에서 콜이 떴다. 한 곳을 경유해서 최종 목적지로 가는 콜이다. 코스가 제법 길어서 평소 요금보다 오천 원을 더 올려서 배차 받은 오더이다. 남자 한명, 여자 세분을 태우고 출발하려는데 키가 안 먹는다.

“참 나, 잘 되던 키가 왜 안 먹는다고? 잘 돌려봐요!”

(깐깐하게 지켜보더니) “비켜봐요!”

뒷 좌석에 있던 허스키한 목소리의 차 주인(40대중반의 여성)이 운전석에 앉더니 이내 부르릉 시동이 걸린다. 운전석에서 내리며 뻘건 얼굴로 나를 째려본다. 마치 ‘시동도 못 거냐?’고 힐난하는 눈치다. 옆 조수석의 60대 중반 대머리 아저씨는 “이 양반 이 차를 잘 모르는 구먼” 한다. 오피러스 구형차인데 키박스에 키가 꽂혀있고 스마트키가 차안에 있어야 키가 돌아가는 방식이다. 초장부터 좀 무시당한 기분이다.

“오피러스 수없이 해봤지만 키가 안 먹는 건 이 차가 처음 입니다. 제가 뭘 잘못 했나요?” 라고 말하자, “아, 아니에요. 아저씨 그냥 가셔요!” 뒤편의 조카 분이 이내 화제를 돌린다. “덥다, 이모! 생신 덕에 잘 먹었네요.” 조수석의 노인네가 “우선 휴먼시아 들렀다가 도농부영에서 내려 주고 오남리로 갑시다.”, “아, 네! 그런데 제가 배차 받기는 도농부영만 경유하는 것으로 알고 왔는데요?” 스마트폰 오더 창을 보여 주며 “상황실에 얘기를 다 하셨나요?” 물었다.

뒤편에 있던 또 다른 나이 지긋한 여성분이 점잖은 목소리로 “경유비 더 계산해 드릴게요 우선 출발 부탁드려요.” 한다. 대리운전을 하다 ‘경유‘ 또는 ‘경유비‘라는 것 때문에 많은 사연이 쌓인다. 경유란 차가 출발한 후 고객 일행 중 일부가 중간에 내리는 등, 한 두 번 경유지를 거쳐 최종 목적지로 가는 경우 중간 기착하는 것을 말한다. 대리 콜 신청하면서 상황실에 “경유한다” 얘기를 안 한 경우 대리기사에게는 콜비 이외에 추가적인 수입의 기회가 되거나 손님과의 경유비 문제로 싸움이 되기도 한다.

손님들의 반응 중 일부만 적어 보면,

” 가는 길에 잠깐 들렀는데 그게 경유예요?”

“사무실에는 일부러 얘기 안 했어요. 가는 길에 이 친구 좀 내려주세요 경유비 더 드릴게요.”

“아, 기사양반 이쪽 길이나 저쪽 길이나 가는 길인데 이게 무슨 경유인가? 많이 돌아가면 몰라도…”

“아, 이 양반아!택시도 가다가 들러서 가주는데 가는 그냥 쫌 갑시다!”(돈을 안주려는 경우)

“가다가 한 사람 내리고 나서 도착지에 ○○아파트 입구에서 이 친구 내릴게요. 경유비 ○○원이면 되나요?”

“경유비 얼마 드려야 되나요?”

“네? 아니,~ 잠깐 들렀는데 택시비 보다 더 받는 게 어딨나요?”

대리현장에선 ‘경유’ 문제로 손님과 다퉈서 출발도 못 하고 콜 오더가 취소되거나 사태가 더 심각하게 꼬이는 때도 있다. 내 경우는 대개 ‘경유’를 요청하면 약간 저음으로 ‘그렇게 하시죠!’하고 말하고는 도착할 때까지 절대 먼저 경유비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굳이 경유비 달라고 하지 않아도 80~90%는 알아서 주기 때문에 ‘기다림의 미학’을 발휘하고, 손님이 “경유비를 얼마드려야 하나요?” 하고 물으면 “알아서 주세요” 한다. 내편에서 먼저 말하면 괜시리 서로 기분 상할 수도 있으므로. 그래서 실제 천 원만 받아 본적도 있고 오만 원을 받아 본적도 있다(물론 큰돈이라 사양했으나 굳이 주시겠다고 해서 받았지).

경유비에 대해 굳이 설명이 필요하면 나는 손님들께 대개 이렇게 설명해 준다.

“손님 입장에선 함께 해준 동료(또는 일행)를 배려해서 가는 길에 편의를 베푼 것이고 잠깐 정차하는 것이지만, 저희는 서비스직이라 손님 이외 추가로 서비스 해드린 것이니 경유비를 받는 겁니다. 거리나 시간 개념이 아니라 저를 두 번 부려 먹었으니 응당 거기 맞게 합당한 대우를 해주신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차피 상황실에 얘기했다면 더 주셔야 하는 비용입니다.”


경유비 얘기는 이쯤에서 각설하고, 첫 번째 경유지에서 이모(할머니)와 조카가 내리자 뒷좌석의 허스키 차주인이 앞에 앉은 대머리 아저씨에게 말한다.

“오빠! 솔직히 남자니까 애기 해봐! 김서방이 내가 모를 줄 아는 거 아냐?”

“아니~ 그냥 사정이 있었겠지~”

“사정은 무슨 사정? 오빠도 남자라고 편드는 거야?”

“아냐, 그냥 남자로서. 음… 난 할 말이 없다.”

“왜 나한테 영수증을 걸리냐구! 내가 영수증 관리하는 거 다 알면서.”

잠시 침묵이 흐르고, 이때까지 난 무슨 소리인 줄 몰랐다.

“기사님! 혹 어디 사셔요?“

허스키 여성이 묻는다. 나는 대답하기가 싫어 침묵하고 있는데,

“혹시 ○○안마라고 아셔요?”

○○안마는 그 동네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오래된 상가에 입주한 소위 ‘퇴폐변태’ 업소다. 나는,

“거기 모르는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걸요?”

“거봐! 오빠, 오빠만 모르는 거야? “

대머리는,

“그래요? 참, 난 첨 들어보는데…”

모를 리가 없다. 워낙 건물이 특이한데다 간판도 빛바랜 ‘○○안마’ 가 멀리서도 잘 보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이고 “남자들이 거기 간다고 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셔요. 순수하게 안마만 하는 사람도 많아요!” 여자는 내말을 짜르며 “기사님 그럼 안마만 하는데 얼마예요?”, 이 여자가 나를 어떻게 보고? 나는 한참 대답을 하지 않고 있는데, “언니 한사람에 한4~5만원 하지 않아?” 옆에 있던 동생이 거든다. 나는 여전에 어느 선배가 했던 말이 기억나서 “그런 곳 이면 아마 1인당 8~9만원 할걸요?”, 여자는 “거봐 18만원이면 퇴폐업소에서 그짓 한 거 잖아!”, “에이~ 그럼 두 분이 갔나보죠.”

“오빠, 김서방 너무한 거 아냐? 어떻게 두 달 사이에 두 번이나 갔던 거잖아. 더 이상은 못 참아!”

“글세, 나는 같은 남자로서 ~할 말 없다. 바람피운 것도 아닌데…”

“뭔소리야? 오빠 그럼 여자는 바람 안 피우고 남자들만 있는 뭐라 드라? 호… 호…”

“호빠!”

“그래 나도 호빠 같은데 다녀도 되는 거야?”

적잖이 흥분한 허스키 여동생과 부딪히기 싫었던지 친정오빠가 또 다른 여동생과 서둘러 내리고 나자 차를 최종 목적지인 오남리로 향하는데, “미정아! 엄만데 아빠 집에 들어오셨니?”, 저쪽 딸이 아빠가 ‘집에 있다’고 한 것 같다. “어 그럼 너 고모네 좀 가있어! 엄마 곰방 들어갈게”  “응 엄마가 아빠랑 한바탕 해야 되서 그래!”

통화 끝나고 나서 집에 가는 사이에 알았다. 요즘 남편이 이혼한 친구 위로 해준답시고 두 번 이나 갔고 한 번에 36만을 결제했단다. 남편과의 전투모드를 준비하면서도 대리기사 중에 잔돈을 일부러 안 갔고 다니면서 오천 원을 더 받아 챙겨가는 기사가 있다는 둥 경유비 알아서 줄 텐데 무리하게 요구한다는 둥, 나한테는 “돈부터 받지 거스름돈부터 주냐?”더니 이내 혼잣말로 “오빠들도 참 치사하게 한 번도 대리비를 안 주냐” 한다.

주차를 “전면으로 해달라, 아니 다시 후면주차를 해달라” 그러더니 운전이 종료하자 “경유비 추가 얼마 더 드려요?” 한다. 나는 예의 “알아서 주셔요” 하면서 빨리 이 여자와 헤어지고 싶은 맘이 앞섰다. 오늘 밤 저 집의 전쟁은 쉽게 종전되지 않을 거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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