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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노동자가 본 세상 #11] 왜냐하면 죽는 것보다는 뭐든지 나으니까!


방이동 먹자골목에서 구리 인창동으로 가는 콜이 떴다. 대리비도 괜찮고 손님도 쿨하고 친절한 목소리로 응대한다. 가까운 동현교회 주변 주차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는데 남자 둘하고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걸어온다. 잠시 후 SM7에 뒷좌석에 젊은 여성 혼자 탑승한다. 이내 창문을 열자, “잘 가! 주차비는 내가 계산한다.” 젊고 스마트하게 잘생긴 남자가 손을 흔들며, “기사님! 잘 좀 부탁드려요.”라며 대리비를 건넨다.

차가 출발한지 5분쯤 지나자 스마트폰으로 뭔가 열심히 문자를 보낸 듯하더니 어딘가 전화를 연결한다. 한참 무슨 말을 주고받는데 급! 소리가 약간 커진다. “내가 엄마가 생각하는 것처럼 굴욕적으로 살지 않아!”라고 하더니 한순간 호흡이 길어진다. “엄마가 뭘 걱정하는지 알겠어. 알겠는데, 하지만 내가 그것도 생각 안했겠어? 내가 오년, 십년 후에 후회할 수도 있어. 알아! 근데 엄마! 8개월 동안 매일 밤마다 고민을 했어.”

도대체 뭔 말인지 조금씩 궁금해졌다.

“엄마! 최근에는 거푸 고민을 했어. 영철이랑 연애를 몇 년을 했어. 엄마가 젤 잘 알잖아? 그런데 그 시간 보다 함께 산 8개월 동안 이 사람을 더 속속들이 알겠더라구.”

아, 나는 이제야 조금씩 알 것 같았다. ‘영철이란? 신랑이름’인가보다. 나름 자연스럽게 전/후두엽이 짜 맞추기를 시작했다.

“이제와서 인간적으로 얘라는 사람을 판단했을 때에 얘는 안 되겠구나 생각을 했어! 내가 무엇을 선택하든 후회할 건데 지금 얘하고 끝내고 후회하는 거랑 아니면 그냥 살면서 후회하는 거랑 두 가지 밖에 선택이 없잖아!”

나는 전화기 너머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 보고 싶어 졌다.

“그, 그런데 엄마! 아, 아무리 생각해도 난 지금 끝내는 게 덜 후회할거라 생각해. 끝내고 후회할거야, 엄마! 후회하고 힘들고 그럴 날도 오겠지! 왜냐하면 엄마! 내가 말했지?”

여기서 부터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하더니,

“엄마! 내가 정말 죽을 뻔 했어! 근데 그 순간이 닥쳤다가 돌아오는 순간 때가 되면 그 순간에 죽는 거보다 무서운 게 없다? 그런데 그게 지나니까 오히려 더욱 차분해지더라구.”

이때에 나는 ‘이게 나이든 엄말 가르치려드네?’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죽을 뻔 한 게 아니라 ‘자살시도’를 엄마한테 저렇게 표현 한 것이었단 판단이다.

“정말 죽는 거보다 무서운 게 없는데 그걸 경험하고 보니 생각이 굳어지더라구! 그래서 엄마! 나, 영철이랑은 안 되겠단 결론을 내렸어.”

운전을 하며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쳐갔다. 그 순간의 결론을 내리는 건 각자 다 다르지만 이 여자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조금은 이해 될 듯도 했다.

“왜냐하면 죽는 것보다는 뭐든지 나으니까. 엄마! 내말 듣고 있는 거지?”

저쪽에서 뭔가 소리가 없었나 보다. 아마도 엄마는 가슴을 쓸어담느라 숨소리조차 들키지 않으려 소리를 죽였을 게다. 아마도 눈물소리를 줄였겠지. 나는 운전을 하면서도 어느새 저 젊은 새댁의 얘기에 더 깊이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그러기 전부터 내가 우울증에 너무 시달리면서도 그랬구… 그 순간이 지나고 나서 어떤 생각이 났냐 하면 ~ 엄마가 너무 불쌍한 거야. 엄마는 할머니도 없는데, 엄마한테 엄마도 없는데 나도 없으면 어떨까?”

여기까지 말하고는 이 처자의 목소리가 드디어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엄마! 내가 할머니 되게 좋아 했잖아! 엄마도 힘들지? 내가 봤을 때는 엄마도 힘들어. 할머니라도 있으면 몰라도 없는데다 나까지 없으면 엄마가 힘들 거란 생각이 들더라. 나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때 할머니 다시 만나서 좋은데! 할머니가 물어보면 나는 할 말이 없잖아. 엄마한테는 엄마도 딸도 없어지는 거잖아.”

그리고는 한동안 말없이 훌쩍인다. 아마도 엄마도 훌쩍이는 모양새다.

“너무 감성적인 소리지만 아무리 생각에 생각을 하고 곱씹고 곱씹어도 결론은 결혼한 것도 후회스럽지만 이미 벌어진 것들도 되새겨 보면 이렇게 밖에 못하겠어. 그래서 해결은 해아 돼. 해결하고 나서 고민을 더 하자. 그런데 정남이가 그나마 날 지지해줘서 고마웠어!”

나는 ‘정남이는 또 누구냐?’ 물어 보고 싶었지만,

“내 동생 정남이가 ‘누나 선택을 믿어’ 하고 말해 주는데 정말 눈물나게 고맙더라고.”

아함, 남동생이구나.

“엄마! 난 엄마 아빠가 날 부끄러워 말고 기다려 줬으면 좋겠어. 헤어지고 더 당당하게 살고 행복해지도록 노력해 볼게, 는 잘살 자신이 있어.”

무엇을 선택해도 죽는 거보다 무섭지는 않단다. 이후에 한참 동안 모녀간의 대화가 이어졌고 재산분할 대책도 논하는 듯 했다. 역시 여자들이 더 현실적인 거 같다. 추론해보니 신랑이 부부관계를 자주 안하고 여자 능력의 크기보다 더 작고 비전이 없다는 게 문제였던 거로 들렸다.

“엄마! 나는 내가 스케일이 크게 살아서 영철이가 스케일이 작아도 반대로 잘 맞을 거라 생각했어. 그런데 영철이는 스케일이 작은 게 아니라 스케일이 없는 사람이더라구! 나는 할일이 너무 많은데 어떻게 감당이 안 되더라구. 난 걔 앞에선 이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중에는 밤마다 외로워서 컴퓨터 게임하는 남편에게 존댓말로 문자도 보내봤다? ‘여보, 전 오늘도 혼자 자야 하나요? 여보, 난 어쩌구 저쩌구’ 하루이틀 노력해 본 게 아냐. 솔직히 이런 말 하는 거 엄마한테도 챙피해. “내가 엄마가 아빠한테 한 거처럼 영철이가 뭘 모르는 거 같아서, 가르치려 하면 너무 싫어하고 화만 내더라구.”

그러다 한잔하신 처자의 아빠가 귀가를 하셨는지 급히 통화를 마무리 하는 듯하더니,

“알았어, 엄마! 낼 다시 통화해!”

하고 끊는다. 몇 분의 시간이 지나자 다시 방이동에서 헤어진 친구들과 대화하고 용기를 얻는 듯하더니 집이 가까워지자 말이 없어지고 한숨을 쉰다. 집 앞 500 미터 전, 말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큰 고민이 있나 봐요?”하며 준비된 멘트로 위로를 했다. 그러자 굳이 숨길 기색도 없이 “네, 저희는 6년 연애 끝에 결혼 했는데 궁합도 성격도 안 맞았고 억지로 살았던 거 같아요!”하더니 “다행인지 애가 없어요.”한다.

한쪽 얘기만 들었을 뿐이나 위로라도 해준답시고,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할 거면 어차피 시간 끌지 않는 게 좋습니다. 행복할 시간이 그 만큼 늦어질 테니까요.”라고 말해 줬다. 그런데 이게 적절했나 싶다. 저 집 신랑은 또 입장이 다를 텐데, 끝까지 말하지 말걸…

후진 주차를 하면서 생각 했다. ‘조만간 대한민국의 이혼율은 좀 더 높아지겠지?’ 어쨌든 잠시나마 내 고객이었던 그 처자의 행복을 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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