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2013년부터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조례제정을 시도한 두 가지 운동에 함께 했다. 바로 방사능안전급식조례제정청년기본조례제정이다. 두 가지 조례제정운동을 함께 하며 시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지만 시민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음을 깨달았다. 바로 지방의회 안에서 끊임없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 전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방사능안전급식 조례 제정운동과 청년기본조례 제정운동의 시작

고양시 방사능안전급식 조례 제정은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먹거리마저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는 불안감에서 시작되었다. 특히나 방사능에 취약한 어린이들이 학교에서 꼭 먹어야만 하는 급식부터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이다. 광역단체 및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교육청에서 방사능에 오염된 식재료를 쓰지 말 것을 명시한 내용으로 총 27개의 조례가 만들어졌다. 고양시에서도 2014년 11월 19일 방사능안전고양네트워크가 출범하며 조례제정운동의 시작을 알렸다. 어린이집, 유치원 그리고 학교의 급식 식재료들이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지 방사능검사를 해야 하는 내용과, 방사능으로부터 오염된 식재료들은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은 조례였다. 매 달 몇 차례씩 모여 타 지자체의 조례사례를 연구하고 강의를 듣고 조례제정 공청회, 시의원들과의 간담회를 하며 고양시에 적합한 조례 내용을 만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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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방사능 안전 고양 네트워크 발대식 모습. Ⓒ고양신문, http://www.mygoy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36143]

고양시 청년기본조례 제정은 2016년 초부터 시작되었다. 조례제정을 위해 고양시의 청년단체와 청년들이 모여 고양청년네트워크파티를 결성했다. 이 시대의 사회문제가 청년을 압박하고 있는 현실을 조금이나마 바꿔보고자 하는 시도였다. 더 많은 청년들이 제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스스로 만드는 일이 불가피했다. 따복의 지원을 받아 다른 지자체 등의 청년기본조례를 연구했다. 버스킹, 청년정책 전문가와의 간담회, 고양시 청년실태조사 발표회 등 청년의 문제를 알리고 청년기본조례 제정의 필요성을 지역사회에 알렸다. 그러면서도 시의원과 고양시와 함께 논의하며 조례내용을 만들어갔다.


두 조례제정 운동의 공통점 주민발의를 포기하다.

주민발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여력이 없어서의 문제는 아니었다. 실제로 방사능안전급식조례 제정을 위해 주민청원운동을 했고, 1만1405명의 서명이 이어졌다. 하지만 주민발의로 시작한 조례제정이 오히려 주민의 의지를 반영하지 않는 결과를 목격했다. 그 사례가 바로 의정부의 방사능안전급식조례 제정운동이다. 보통 조례를 제정할 때는 상임위원회를 걸쳐 본회의에서 조례가 제정된다. 시의원이 발의할 경우, 상임위원회든 본회의든 대표 발의 시의원이 조례에 대한 내용을 설명하고 관련한 예산에 대한 계획이나 조례 내용에 대한 질의에 대해 답한다. 하지만 주민이 발의한 조례의 경우는 달랐다. 대표주민이 의회에서 말할 수 있는 자리는 없었다. 오로지 그 조례를 담당해야 할 공무원만이 조례에 대해 말할 수 있었다. 공무원이 그 조례가 제정되기를 원치 않는다면 언제든 조례에 대한 설명은 악의적으로 바뀔 수 있었다. 실제 사례로 드러난 경우가 있었기에 주민발의를 섣불리 결정할 수는 없었다. 더 많은 시의원들이 조례제정에 함께 하고 조례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시민사회는 끊임없이 시의원들을 만나고 때로는 공무원들을 설득해야 했다. 하지만 조례를 담당하고 싶지 않은 공무원 사회의 핑퐁게임을 견뎌야만 하는 것은 정말로(!) 힘든 일이었다.

시의원들이 공동으로 발의하기로 결정을 하고 추진을 해도 어려움은 계속 됐다. 시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전쟁이 시의회에 끊임없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당에 따라 표가 갈라졌다. 1만 명이 넘는 시민이 주민청원운동을 하고, 실제로 조사한 300명이 넘는 고양시 청년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해도 시의원들은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저 당이 찬성하니 우리는 할 수 없다.’ 시민들의 삶은 알량한 전쟁으로 인해 제도 속으로 안전하게 들어가지 못했다.


두 조례제정운동의 차이점 하나는 이루고, 하나는 이루지 못하다.

공통점이 훨씬 많았던 두 조례제정운동의 명확한 차이는 결과의 차이다. 방사능안전급식조례는 결국 제정되지 못했고, 청년기본조례는 제정되어 지난 3월 31일 공포되었다. 공무원과 대화하든, 시의원들과 대화하든 하나같이 시장의 책무를 줄이는 방향을 선호했다. 방사능안전급식조례는 있으나마나 한 조례를 원치 않았고(그건 이미 경기도에서 있으니까!), 청년기본조례는 청년들이 최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에 의의를 두고 수정을 거듭하여 조례를 제정하였다.

방사능안전급식조례제정운동을 함께 하며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을 경험했다. 핵발전을 옹호하는 강한 힘은 국가를 휘감고 있었고, 국가의 방사능관리기준치를 이유로 지역에서의 조례제정을 어렵게 했다. 조례를 반대하는 공무원과 시의원의 논리는 다른 지역에서 수없이 들어왔던 논리와도 너무나 놀랍게도 흡사했다. 마치 핵발전을 옹호하는 강한 힘이 반대 논리를 심어놓은 것처럼 말이다. 지역에서 방사능의 위험성을 알리고, 탈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게 할 운동도 필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힘을 무너뜨리는 것이 중요함을 다시 한 번 느낄 수밖에 없었다.

청년기본조례제정운동은 우리 사회의 어떤 것을 ‘문제’라고 명명할 것인지에 대한 과제를 남겼다. 모두가 청년이 힘들다고 이야기하지만, 그것을 개인의 노오오력 탓으로만 둘지, 사회의 시스템의 문제로 볼지는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시각에 따라 해법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시장과 시의회의 책무를 줄이고, 청년에 해당하는 나이를 줄이는 등의 방식으로 올해 책정된 예산 없이 ‘겨우’ 제정된 청년기본조례이다. 앞으로 청년정책위원회나 청년정책협의체 등을 활용하여 청년들의 목소리가 시정에 반영되도록 해야 하는 크나큰 과제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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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고양청년실태조사 결과보고회 모습. Ⓒ고양신문, http://www.mygoy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40418]


알려지지 않는 전쟁을 없애기 위해서 앞으로의 과제

지방의회는 조례를 제정하고 행정을 감사하는 역할을 한다. 조례에 기반하여 예산을 확보하고, 그 예산이 지역주민의 삶에 녹아들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공무원 사회에서 끊임없이 책임을 다른 부서로 전가하고 부서와 부서 사이의 협력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시민의 삶의 향상에 기여하지 않는 경우를 경험했다. 시 행정 자체에서 변화해야 할 부분이다. 지방의회는 자기 당의 이익을 위해 혹은 다른 당이 성과를 가져가지 못하도록 애쓰기보다 공무원 사회가 시민의 삶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구조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조례제정 제도의 변화를 위해 힘써야 한다. 주민발의는 지역주민들이 발 딛고 있는 지역에서 스스로 정치적 주체가 되는 중요한 과정이자 제도이다. 고양시의 경우 유권자의 1%의 서명으로 주민발의를 할 수 있는데, 1%의 시민들의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헛되게 해서는 안 된다. 주민들이 발의한 조례에 경우에는 주민대표가 조례에 대해 설명할 수 있도록 해서 조례내용이 왜곡되어 시의원들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결국 주민의, 주민의 의한, 주민을 위한 정치는 주민들의 정치적 참여가 커지도록 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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