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치겠네요..제 아내와 아이들앞에선 이런 모습을 보일수가 없으니..죄송합니다”

일요일 오후 오랜만에 진접으로 움직이는 콜을 배차 받았다. 식당으로 이동하고 보니 한떼의 중노년층 남자들이 앉아 심각한 얘기를 나누더니, 잠시 후 80대 초반으로 보이는 대머리의 중후한 노인께서 두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나온다.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회장님, 조심해서 들어가셔요!” 깍듯이 인사를 한다.

차키를 미리 받아 운전석에서 대기하는데 노인이 탑승하고, 하얀와이셔츠의 말쑥한 남자가 대리비보다 5천원을 더 얹어준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그래야죠”

차가 출발하자 회장님은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오늘 모임의 내용을 평가하는 듯이 보였다. 한참동안의 통화를 마친 후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종친회 모임이신가봐요?”
“어, 내가 회장인데,짜식들이 종중재산 탐 내길래 오늘 한방에 정리해버렸어!”
“ 아~ 그러셨군요.”
“내가 다리는 힘이 풀렸어도 아귀힘은 남아 있거든~”

아무튼 종 중 재산이 많으면 어느 때인가 항상 말썽이 생긴다. 회장님을 내려드리고 대리앱을 켜자마자 가까운곳에서 콜이 뜬다.


상계동에 가는 콜이다. 근처 유명식당에 도착하자 스무살 쯤 되보이는 딸과 엄마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있고, 잘생긴 20대 남자가 나를 맞는다.

“잠깐 기다리셔요, 화장실에 가셨거든요”
“네. 차는 어디 있나요?”

엄마가 가리키는 차로 다가서니 중형 쏘나타가 말쑥하게 나를 반긴다.

잠시 후 화장실에 갔던 일행의 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차로 뛰어 오더니, 가족을 남겨두고 먼저 양지리 이편한세상부터 가자고 한다. 첫 인상에 <모범생>이라고 얼굴에 쓰여 있었다.

운전석에 탑승하고 보니, 백발의 노인 부부가 뒷좌석에서 앉아 계신다.
모범생 가장이 조수석에 탑승하고 10여분 거리를 차로 모셔다 드리는 사이에 아들이 뒤를 돌아보며 말한다.

“엄마 손 좀줘봐요”
“나 무릎이 아파, 자꾸 아퍼서 걸을 수가 없어?”
“엄마 손 참 좋다…따뜻하고~~”

응석부리듯 던진 말이 가슴 따뜻하게 들렸다.

어머니는 연신 “다리가 너무 아퍼“ 하시며 애기처럼 보채신다.
“ 아들이 당신 사랑한다고 하는 거야!”옆에 계신 할아버지가 퉁명스럽게 한마디 내뱉는다.
“엄마 이번 출장 갔다 오는대로 바로 찾아 뵐게요”
엄마는 대답은 없고 “ 나 다리가 아퍼요~”만 연신 반복한다.

어느덧 차가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고, 할아버지와 아들이 먼저 내린 후 운전석 뒤에 있던 할머니가 내리려하자 아들이 차문에 다가와 조심스럽게 부축을 한다.

등과 허리가 굽은 백발의 할머니는 꾸부정 꾸부정 걷고 옆에서 케익을 든 할아버지가 서서 걸음을 재촉한다.
입구에 도착하자 아들은 어머니를 꼭 껴안고 한참을 움직이지 않는다.
차안에서 보기에도 애틋한 모습으로 보여 가슴이 짠했다.
할아버지는 지긋이 지켜보시는데 호남형이시고 인상이 참좋으시다. 젊은 시절 한 인물 하셨겠다.

“엄마 미안해요”
“이제 그만 가봐라, 니 식구들 기다린다”
“ 아버지 갖다 와서 뵙겠습니다. 끼니 잘 챙겨드시구요”
“그래 가봐라, 여보 올라갑시다”

할아버지는 말을 마치자 할머니 손을 잡고 조심조심 현관으로 향한다.

잠시후 차에 올라탄 아들,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말 없이 운전을 하면서도 나도 갑자기 울컥하고 눈물이 맺혀버리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너무 오래 끌었지요..”
“아니예요 별말씀을, 오늘 어머니 생신이셨나봐요”
“아니요, 아버지 생신이었는데..저희 어머니가 치매셔요, 저도 잘 못알아보셔요”

아 그랬구나…그래서…

잠시 침묵이 흐르고 아들은 안경을 벗고 연신 손등으로 눈물을 훔친다.

“아..미치겠네요..제 아내와 아이들앞에선 이런 모습을 보일수가 없으니..죄송합니다”

나는 뭔가 대꾸를 하려다가 눈물이 핑돌아 말이 안 나왔다.

가족이 기다리던 장소에 도착할 즈음 물었다.

“형제가 어찌되셔요?”
“누나 하고 저둘이예요, 누님은 미국에 계시고요, 아까 본 남자애가 누님아들인데 한국에서 대학을 다녀요”
“아~ 그렇군요…누님도 마음이 많이 아프시겠어요”
“그렇죠, 가까운거리도 아니다 보니 매번 미안해하고, 그렇죠”
“동생분의 짐이 크군요”
“짐은요..항상 죄송하고. 죄송할 뿐이죠…”

다시 처음 식당으로 돌아오니 가족일행이 기다리고 있다.

상계동 가는길에 20대 남자를 전철역에 먼저 내려 주기로 하고 운행을 하는데..한동안 말이 없던. 모범생 가장이 조카에게 묻는다.

“ 찬열아! 너 엄마 아빠한테 자주전화하니?”
“자주 전화하지는 못해요…”
“ 자주전화해라, 아니면 톡이라도 남겨드리고 그리고 삼촌집에 자주 놀러오련~ 알았지?”
“네”

그렇게 잠시 뜸을 들이더니..

“너 지금은 생각 못하겠지만 자주 연락못드리면….”  하고 말이 끊긴다.

옆에서 목이 메이는지 둘째 손을 코에 가져가고 잠시 뜸을 들인다.
아마도 본인의 어머니 아버지께 죄송한 맘에 울컥 했는가 보다.

“나중에 후회한다. 그러니 자주 연락하련.”

그렇게 우리는 함께 동행하며 잠시였지만 어머니 아버지에 대해 공감하는 시간을 가졌다.

5월은 가정의 달! 어머니 아버지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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