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 진보파의 상당수는 ‘4차 산업혁명’을 실체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여러 종류의 정보화 담론이 국가경쟁력 강화론, 노동 유연화론, 산업 구조조정론 등 전형적인 자본의 논리로 활용되는 현실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이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선 후보들의 발언을 보면 과연 그 지긋지긋한 국가경쟁력 타령 일색이다. 하지만 수출 증가와 기록적인 경상수지 흑자, 반도체, 스마트폰, 자동차 분야의 세계적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내 삶이 개선되기는커녕 벼랑 끝에 서 있다. 삶의 질의 관점에서 국가경쟁력 담론은 허구다.
그러나 일부 좌파가 싫어하든 말든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모종의 변화는 실재한다. 인공지능(AI), 3D 프린터, 가상현실(VR), 사물인터넷(IoT) 등의 정보기술이 가져왔거나 가져올 생산력의 도약은 이제 막 기지개를 켠 상태이다. 저널리스트 폴 메이슨이 2015년에 내놓은 <포스트 자본주의>는 이를 풍부한 사례로 담아냈다. 이 책의 진짜 미덕은 좌파의 임무가 21세기판 지적 러다이트 운동이 아니라 실재하는 이 힘에서 노동과 인간 해방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그 길을 개척하는 것에 있다는 점을 정성스럽게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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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잉여가치 착취론은 오랫동안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이론적 무기였다. 하지만 실업자나 반(半)실업자를 대량으로 쏟아내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임금 노동자들의 최대 요구는 제발 나를 안정적으로 착취해달라는 것으로 바뀌었다. 4차 산업혁명은 이런 존재들의 규모를 더욱 확대할 것이다. 옥스퍼드대학교 마틴스쿨의 연구에 따르면 선진국에서는 앞으로 일자리의 47%가 공급 과잉 상태로 들어간다. 일자리 문제로만 본다면 4차 산업혁명은 18세기 후반 남성 숙련 노동자들을 위협했던 기계처럼 거대한 재앙이다.
4차 산업혁명은 그러나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제도의 불의와 비효율성을 실제 경제 모델을 통해 보여줄 수 있다. 어떤 노동자도 노동의 가치가 자신이 받는 임금과 자본가에게 가는 잉여가치로 분할되는 것을 생산 과정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네트워크 경제의 참여자들은 페이스북, 구글과 같은 정보산업의 거대 기업들이 수많은 개인 정보 보유자들의 개인 정보와, 공짜로 널려 있는 자유재로서의 정보를 회사의 정보관리 수단들에 집중시켜 그로부터 자본이 사적으로 전유하는 이익을 실현하는 과정을 이미 알아챘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는 정보 제공자들의 협업과 관리자들의 무료 봉사를 통해 사회적으로 유용한 정보를 무료로 제공한다.
이런 모델의 성장은 인공지능의 초기 개척자였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허버트 사이먼의 주장을 사회적으로 환기시킨다. “모든 소득의 90%는 이전 세대에 의해 축적된 지식을 활용하여 획득한 것이므로 세금으로 환수하여야 한다.” 아직 지식기반경제를 말할 수 없었던 시대의 인물 토머스 페인은 토지를 인류의 공유자산으로 보고 토지로부터 나오는 이득을 모두에게 평등하게 배당할 것을 주장했다. 약 250년 전 그의 사상은 한국에서 다양한 형태의 기본소득 정책으로 부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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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으로 지칭되는 현상들은 사적 소유의 자유주의적 정당화 사상과 이론들을 공격하고 허무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 복제에 드는 한계비용이 제로로 수렴하는 디지털 정보의 특성은 자원이 희소하다는 주류 경제학의 전제 자체를 전복한다. 자본은 지식재산권 제도를 강화해 사적 소유제도를 수호하려 하지만 정보재의 특성은 사적 소유의 울타리를 끊임없이 허물 것이다. 이처럼 4차 산업혁명은 공유부(共有富) 배당으로서 기본소득의 성격을 드러내고 필요성을 강화한다. 지상의 부가 모든 인류의 것이라는 사상이 보편화될 때, 신성불가침한 권리로서의 사적 소유 관념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기본소득 논의가 활발해진 것은 물론 경제적 현실의 요구 때문이다. 완전고용 시대에 노동자는 자본주의 운동의 큰 축인 소비를 담당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가 노동 규율을 확립하기 위해 마구 양산한 프레카리아트는 자본주의를 지키기에는 너무 가난하다. 여기에 4차 산업혁명이 시장소득인 임금에 미칠 영향은 명약관화하다. 결국 4차 산업혁명은 기본소득을 불가피한 요청으로 만들 것이다.

따라서 이제 문제는 어떤 기본소득이냐이다.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임금 노예’들을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키는 기본소득인가, 장시간·불안정 노동을 악착같이 고수하면서 그저 체제의 연명을 위한 기본소득인가. 개념도 낯설었던 기본소득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가 순식간에 확산됐듯, 어떤 기본소득인가가 최대 쟁점이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 그것 자체로 진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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