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현대사, 잃어버린 30년] 시즌 1 연재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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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8일부터 연재를 시작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 터지고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투쟁이 들불처럼 번지는 시기였다. 그로부터 어느덧 반년의 세월이 흘렀다. 결국 박근혜 정권은 막을 내렸고 새로운 정권이 탄생했다.

이 사건은 하나의 정권이 끝났다는 점을 넘어서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박근혜 정권을 쫓아낸 것은 국회의 탄핵 소추도 아니고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도 아니다. 광화문의 100만 시민이 아니었다면 그날의 결과는 결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시민들은 피를 흘리는 대신 국회와 헌재의 법적 절차를 차용했을 뿐이다. 즉 그날의 사건은 시민들의 힘으로 헌법과 법률 절차를 통해 대통령을 끌어내린 합법적 시민혁명인 것이다.

물론 단지 ‘시민’혁명일 뿐이라는 성격도 분명했다. 미치광이에 가까운 반동적 정권을 청산했을 뿐이다. 혁명의 끝은 자본주의 지배질서를 좀 더 안정적으로 관리할 중도우파정권 탄생으로 귀결되었다. 그 이상은 아니었다. ‘잃어버린 30년’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연재를 중단하며

지난 반년에 걸쳐 총 18회를 연재했다. 초기에는 주로 정사(正史) 중심으로 운동 전반을 서술했다. 시대 배경에 관한 독자들의 이해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최근의 역사로 근접할수록 필자의 경험과 견해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으며 주로 필자가 소속한 정당을 중심으로 서술했다. 누구나 알고 있을 사실을 전달하기보다는 이면의 이야기와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담아내기 위해서다.

지난 18편을 끝으로 2015년 상반기에 노동당 재편논쟁(2차 통합논쟁)을 종결하는 시점까지 다뤘다. 대략 2년 전쯤의 일이다. 그 이후에도 할 말은 많다. 시간의 길이에 비한다면 훨씬 더 많다. 그러나 이쯤에서 연재를 일단 중단하기로 했다. 이유는 대략 두 가지다.

2년이라는 세월은 역사로 다루기에는 너무 가깝다. 역사라기보다는 거의 실시간 서술에 가까운 기사라 표현해야 옳을 듯하다.

이 같은 일반적 이유 말고 매우 특수한 이유가 있다. 지난 2년간 벌어진 일들, 특히 노동당 7기 대표단에서 필자가 사무총장으로 일하면서 겪은 일들은 각별히 민감하다.

세상을 바꾸는 데 알량한 힘이라도 보태고자 애쓰던 세월이 30년을 넘었다. 진보정당운동을 시작한지도 10년이 넘었으며 그중 4년 넘는 기간을 중앙당 당직자로 일했다. 그다지 짧은 경험은 아닐 것이다. 그 세월이 순탄했을 리는 없다. 수많은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다. 정파 간의 갈등도 숱하게 겪었으며 그에 따른 감정과 상처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7기 대표단에서 사무총장으로 일한 10개월의 기간은 지나간 30년 세월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일찍이 목격한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는 황당무계하고 참담함으로 가득했다. 지난 30년의 경험을 통틀어도 전례를 찾을 수 없으며 그 무엇을 상상하든 상상을 초월하는 전무후무한 파행의 연속이었다.

목격한 진실을 은폐하는 것도 죄악이기에, 기록으로 남기고 당원들에게 알려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고민 끝에 연재를 중단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이 글에서는 실명 비판을 마다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대상자들은 당을 떠난 사람들이었다. 7기 대표단에서 벌어진 일들을 언급하자면 현재 당에 남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실명 비판이 불가피하다. 이는 매우 민감한 일이 될 것이다. 그 시기에 벌어진 일들이 너무나 참담하고 황당하기에 더욱 그렇다. 자칫 당원들에게 정치 혐오를 더해줄 수도 있다. 당의 명예에 누를 끼칠 수도 있다. 개인이나 일파의 잘못이라도 결국 당의 명예와 무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무거운 것은 당 내 갈등과 분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진실을 알리고 썩은 상처를 도려내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는 당 내 화합을 지키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아기를 양보하느니 둘로 가르겠다는 생각을 나는 도저히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다. 세월이 흐르면 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이후의 일들도 이미 초고 형태로 기록해 놓았다. 연재 중단은 고민 끝에 내린 필자의 결정이기도 하고, 웹진 발행인인 경기도당 나도원 위원장과 초고를 함께 검토하며 논의한 결과이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종료’가 아니라 ‘중단’이라는 점이다. 적절한 시기에 이야기를 계속할 것이다. ‘시즌2’를 기약하며 여기서 연재를 중단한다. ‘시즌2’가 언제 나올지는 연재를 중단하는 이유로부터 영향 받을 것이다. 생각보다 빠를지도 모른다.


‘8라는 숫자의 내력

이쯤에서 잠시 현재 시점으로 이동해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17년 5월 시점에 노동당 대의기구는 5기인데 대표단은 8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큰 차이가 나는 것은 그만큼 당 대표단이 자주 바뀌었음을 뜻한다. 이 연재물을 꾸준히 읽어본 분들은 대표단이 8기에 이른 내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우기도 어려울 정도로 워낙 복잡하기에 간략히 정리해본다.

1기 : 2008년 3월 출범, 임시 체제, 5인 공동대표, 노/심 상임공동대표

2기 : 2009년 3월 출범, 정식 체제, 노회찬 대표, 2010년 지방선거로 총사퇴

3기 : 2010년 10월 출범, 조승수 대표, 2011년 통합안 부결로 총사퇴

4기 : 2011년 11월 출범, 홍세화 대표, 2012년 대선 실패로 총사퇴

5기 : 2013년 2월 출범, 이용길 대표, 유일하게 2년 임기 채우고 퇴임

6기 : 2015년 2월 출범, 나경채 대표, 그해 당원총투표 부의 부결로 총사퇴

7기 : 2015년 9월 출범, 구교현 대표, 2016년 총선 및 각종 분란으로 총사퇴

8기 : 2016년 10월 출범, 이갑용 대표, ~ ?

이처럼 7기 대표단에 이르기까지 임기를 채운 경우는 단 한번뿐이다. 그 외에는 전국단위 선거 실패, 또는 통합 추진 실패 등으로 실각했다. 그만큼 당의 역사가 순탄치 않았던 것이다. 최소한 2년마다 전국단위 선거에서 숫자를 통해 냉혹한 평가를 받는 것이 대중정당의 숙명이다. 그 과정에서 패배를 거듭했으며 그에 따라 당 진로에 관한 혼란이 거듭되기도 했던 것이다.

현재의 8기 대표단을 비롯하여 앞으로는 이런 혼란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잃어버리지 않는 세월을 기약하며

‘잃어버린 30년’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이 글은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역사보다는 온통 실패와 분노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오늘 우리 운동과 나의 당이 처한 현실에 이르게 된 감출 수 없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필자와 비슷한 세대의 사람들은 군사독재와 싸웠으며 사회주의 이상을 모색했다. 어느 세대의 사람들도 이를 대신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까지다.

아마도 필자에게는 당분간 뭔가를 관리하거나 안내하는 약간의 역할이 남아있을 것이다. 그 이상은 나의 몫이 아니다. 그럴 자격이 없음은 이미 충분히 입증되었다. 30년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인간이라는 종이 사멸하지 않고 존속하는 한에는 궁극적으로 역사 흐름을 낙관한다. 앞서간 어느 세대도 오늘과 같은 야만 속에서 청년기를 보낸 적이 없다. 지금의 지배질서를 전복하는 일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 젊고 성실한 활동가들이 대중과 더불어 세상을 바꿔나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렇지 않고는 어떤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그들이 써나갈 훗날의 역사는 더 이상 잃어버린 세월이 아닐 것이라 믿는다. ■


※ ‘나의 현대사’ 시즌1 연재를 마칩니다. 추후 시즌 2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동안 관심 가져주신 독자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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