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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겨울, 유라시아 횡단기 #15] 파리


우리는 계절을 너무 쉽게 규정하곤 한다(물론 다른 것에도 마찬가지다). 말하자면 여름이란, 맑은 바다의 시원한 빛과 내리쬐는 태양이겠다. 하지만 그것만이 여름날의 것은 아니다. 장마철 눅진한 공기도 녹색이다. 여름이 그러하듯 어느 계절이나 두 개 이상의 성질이 있다. 겨울도 그렇다. 아침 눈보라에 코끝이 빨개지는 요란한 겨울도 겨울이다. 그러나 어디선가는 추운 날에도, 종일 내리는 부슬비에 젖으며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좌우지간 견문을 넓히고 오라는 말을, 여행을 떠나기 전에 들었다. 엄마였다. 처음에는 이해가 잘 안 됐다. 엄마 잔소리라면 건성으로 듣는 못된 버릇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다른 세상에서는 다른 날씨가 있고, 다른 기분이 있었다. 딱 그 정도를 알 만큼 우리는 유럽을 누볐다.

떠나는 날 새벽만큼은 뻬쩨르에 비가 오지 않았다. 물론 전날까지 비가 왔으므로 아스팔트가 젖어 있었다. 이따금 고인 웅덩이에 황색 가로등이 비쳤다. 숙소 열쇠는 잠긴 우편함에 넣어뒀다. 바퀴 두 개가 부러진 내 캐리어는 버렸다. 대신 전날 중심가 쇼핑몰을 이 잡듯 뒤져 구한 1199루블짜리 가방을 끌었다. 그 덕에 기념품이니 하는 것은 구경도 못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서너 블록을 걸어 지하철역에 닿는 순간, 비싼 이어폰을 두고 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속이 쓰렸지만, 이마저도 어쩔 수 없었다. 새옹지마려니. 물론 그 말이 진리인지, 아니면 합리화를 위한 뇌의 반작용인지는 알 수 없었다. 러시아 땅에서 지녔던 마지막 잡상은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파리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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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이었다. 빗방울은 드물었지만 바람이 셌다. 러시아에서는 없었던 히잡 쓴 여인들이 보였고, 공항에 섞인 사람들의 얼굴빛은 다양했다. 여기가 프랑스임을 실감케 했던 것은, 버스 창가에서 본 생드니(Saint-Denis) 스타디움보다는 그런 것들이었다. 드골 공항에서 ‘루아지(Roissy) 버스’를 타고 7호선 오페라(Opera)역으로 간다. 내렸더니 이제는 마른하늘에 비가 퍼붓고 있었다.

여기서도 이동수단은 지하철이었다. 파리의 지하철역은 크고 복잡하지만 어딘지 지린내가 났다. 입구와 출구가 보통 달랐던 것 같다. 입구인줄 알고 가보면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 한 짝만 있다. 나중에는 출구에는 ‘Sortie’라고 쓰여 있어 구분을 했다. 출구에는 도무지 캐노피가 없어서,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안 비를 온통 맞아야 했다.


지하철을 타거나 내리려면 문을 직접 열어야 하는데, 이것이 좀 재미있었다. 양쪽으로 열리는 미닫이문이 모이는 곳에 빨간 버튼이 있다. 전동차가 플랫폼에 멈출 무렵 이걸 누르면 문이 열린다. 2호선이나 3호선 쯤 되는, 연식이 오래된(그래서 풍기는 지린내도 더 진한) 열차엔 버튼 대신 동그란 갈고리가 있었다. 아무튼 먼저 일어나서 문 앞에 서는 사람이 문을 열게 된다. 그 때 타이밍에 알맞게 버튼을 누르면 문이 열리고, 조금 이르면 ‘철컥’하는 소리를 내고 조금 뜸을 들인다. 아무튼 먼저 일어나서 문 앞에 서는 사람이 문을 열게 된다. 급한 한국인의 성미에는 딱 알맞은 일이었으므로, 내릴 역이 되면 넷 중 한 사람쯤은 내리는 문 앞을 미어캣처럼 서 있었던 기억이다.

숙소는 파리 8구의 ‘말셰호브(Malesherbes)’역 근처에 있었다.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조용한 동네였다. 문제는 이 날이 토요일이라, 아파트 열쇠가 지하철 몇 역 떨어진 호텔에 맡겨져 있었다는 것이다. 우산이 없던 우리는 비를 쫄딱 맞은 상태였다. 우선 숙소를 찾고, 치즈버거 따위를 팔던 식당에서 우선 밥을 먹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 내가 호텔에 혼자 다녀오기로 했다. 검은 코트를 입었지만 비 때문에 모자를 눌러썼고, 안경에 물방울이 묻어 시야가 흐렸다. 안주머니에 여권과 보증금에 쓸 돈을 넣었다. 정거장 하나를 지나칠 때마다 손을 넣어봐야 했다.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의 여행은 풍족하지 않았고, 즉 ‘플랜 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끝이었다. 여행 삼 주에서 제일 긴장했던 지하철 다섯 정거장, 그리고 한 번의 환승이었다. 긴장에 입을 꾹 다물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호텔을 찾아가는데, 길거리의 분위기가 확 다르다. 건물 앞에 온통 흑인들이 길가를 보고 늘어서 있었다. 무슨 경비원이라도 되는 양. 절반쯤은 드레드락을 했고 절반은 인상을 쓰고 있었다. 이유를 알 수도 없고, 사실 좀 무서웠다. 나중에 친구들에게는 ‘샘 오취리가 열 명 씩 서있었어’라고 묘사했었다. 로밍을 않아 휴대폰 지도도 볼 수 없었던 나는 한참을 헤맸다.

호텔에 가서 여권을 보여주니 봉투에 열쇠를 준다. 보증금을 내고 거스름돈을 기다리는데, 여직원이 별안간 휴지를 내민다. 일단 메르씨(Merci, 감사합니다)…를 붙이고 보니 모자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하도 비를 많이 맞았으니 측은하게 보였을 꼴이긴 하다. 아무튼 호텔에 올 때보다도 더 품을 꽉 여미고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열쇠를 잃어버리면 안 되었으니까.

숙소를 찾아가다가도 길 찾기는 쉽지 않았다. 걷는 걸 좋아하면서도 길눈은 어두운 게 나였다. 말셰호브(Malesherbes)역으로 나왔는데, 오른쪽으로 몇 번 왼쪽으로 몇 번 꺾다 보니 다음 역인 바그람(Wagram) 근처에 와 있었다. 이상하다 싶어서 반대로 돌아갔는데, 이제는 여기가 어딘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비는 여전히 퍼붓고, 신호등은 또 어찌나 빠른지 초행자의 마음만 급하게 했다.

내가 할 줄 알았던 불어는 ‘마담’과 ‘메르시’ 뿐이었다. 물론 길을 물으면 영어에 밝은 파리지앵들이 친절하게 답해준다.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보았던, 프랑스인들은 영어로 길을 물으면 대답을 피한다는 속설은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고유명사를 모조리 불어로 얘기하니 반밖에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길을 물었다. 사실, 나는 친절할 것 같은(인상이 좋은)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에게만 길을 묻는 ‘쫄보’였다.

마담, 말셰호브 역이 어디죠…

손짓을 하며 방향을 알려주는데, 역시 반 밖에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난감한 표정을 지으니 할머니가 자기 차에 타란다. 파리에서 겪은 ‘초심자의 행운’이었다. 그녀는 와이퍼를 켜며 나에게

“무슨 일로 코트를 입고 그렇게 젖었느냐, 파리에는 처음 왔느냐?”

고 물었다. 나는 왜인지

“아… 공부하러 왔어요.”

라고 대답해버렸다. 정말이다.

부끄럽지만 또 하나의 못된 버릇, 이놈의 공명심이 늘 문제다. 할머니가 ‘아니 이렇게 영어랑 불어랑 둘 다 못 해도 유학을 오냐?’고 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다행히도

“이 근처라면 소르본이겠군.”

이라며 웃었다. 근처에 소르본 대학의 단과대학이 있었다. 이 착한 할머니를 두고 어떻게 더 허풍을 놓을까. 차에서 내릴 때 할 수 있었던 건 ‘메르시’ 뿐이었다. 낯선 나라에 올 때는 회화책 하나라도 살 것을, 꼭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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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지하철역으로 돌아와 아까와는 반대로 골목을 누비니 어딘가 익숙한 건물들이 보였다. 아까 그 치즈버거 집. 그런데 친구들은 그 뒤의 지하주차장 처마에 모여 있었다. 가방이며 옷가지를 구석에 두고 비를 피해있는 모습은 뭐랄까,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우리, 이 어영부영 여행단의 모습을 멀리서 본 일이 처음이었다. 남들이 보면 이런 느낌이구나 생각하니 자기연민 섞은 웃음이 났다.

야 왜 여기 있어… 하니, 나를 기다리느라 하도 오래 앉아 있어서 쫓겨났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세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내가 안 올 때를 대비해 주변의 여관도 찾아놨었단다.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문을 연 아파트는 모스크바와 뻬쩨르의 그것보다 훨씬 허접했다. 젖은 옷은 서너 개 있던 라디에이터에 말렸고, 발을 씻는데 따뜻한 물이 안 나왔다. 어쨌든 이런저런 불평 끝에 우리가 다시 합의한 바는,

밥 먹자.

였다. 사박 오일 파리, 지난한 하루가 가고 다시 일상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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