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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파리의 신호등은 아주 빠르다.]


그동안에 비하면 파리의 숙소는 퍽 만족스러운 편이 못 됐다. 엘리베이터는 지하철이 그랬듯 손잡이를 직접 돌려야 여닫이문이 열렸다. 문을 열면 신발을 신고 돌아다녀야 하는 낡은 마루가 현관도 없이 나타난다. 삐거덕거리는 그 바닥을, 우리는 (통상 젖어있던)신발로 딛어야 했다. 화장실은 의외로 두 개(인 줄 알았)다. 하나에는 좌변기만 있었다. 휴지는, 역시나 재생지로 만드는 듯 한 갈색이었다.

블라디보스톡의 호텔에서부터 만난 그 휴지를 쓰다 보면, 아 이거는, 한국에서는 사포라고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대체 몇 번이나 재생을 했는지 너무 거칠었다. 이 걸로 벌써 보름 가까이 뒤를 닦고 있었다. 지구도 소중하지만 내 항문도 하나뿐인 것이다. 때문에 나는 파리에서 다량의 물티슈를 샀다. 아무래도 이번 생에 녹색당 입당은 힘들 것 같다. 이상하게도 근처의 마트에서는 도저히 그 갈색 휴지를 찾을 수 없었다. 진짜 철물점에 가야 있는 건가?

또 하나의 화장실은 알고 보니 샤워부스였다. 뜨거운 물이 나오다 말다 한다. 보일러가 주방에 있었다. 피노키오 코처럼 튀어나온 버튼을 누르면 ‘틱틱’소리를 내며 가스렌지처럼 켜졌다(담뱃불을 붙이는 데 좋았다). 하지만 주방의 조리기구는 가스렌지가 아니라 인덕션이었다. 따라서 보일러의 쓰임새는 세탁기와 샤워기, 싱크대의 온수뿐이었다.

보일러는 삼일 째 되는 날 저녁부터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았다. 목욕을 할 때 다들 하나같이 신음소리를 냈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은 씻는 버릇이 있어서, 찬 물 샤워의 일 번 타자는 나였다. 아주 괴로웠다. 나는 맨 처음 씻고 나서, 젖어서 축 처진 머리카락에 속옷 차림으로, 또 신발은 신어야 했으니 뒷 굽을 구겨 까치발을 하고, 이런 얘기를 해줬다.

        심장에서 먼 쪽부터 씻어,

        아…

        진짜로.

그래도 찬 물 덕에 감각이 무뎌진다. 아까부터 아려오던 항문의 쓰라림은 좀 경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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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저 물 건너온 OB 병따개가 보이시는가?]

거실에는 타원형 탁자가 있었다. 식사 및 음주가 매일 있는 식탁이었고, 정산과 다음날의 일정을 가늠하는 사무용 데스크이기도 했다. 한쪽 벽에 잠긴 장롱이 붙어있었고, 침실에도 하나씩 있던 라디에이터가 탁자 뒤에 있었다. 양말과 속옷을 말리는 데 아주 유용했다. 난방시설이란 그게 전부인데다 밤에는 빨래까지 말렸으니 하루에 몇 번씩은 아주 기분 나쁜 눅눅함이 엄습했다.

거실과 주방 사이에 있던 화장실 옆에는 세탁기가 있었다. 담당은 어김없이 나였고, 메이커는 일렉트로룩스였다. 구글에 모델명을 검색해 사용법을 뒤졌다. 첫 날 빨래를 하려니 가루비누가 없었다. 그랬던 숙소는 사박오일 간 280유로, 거기다 여행이 끝나고서야 돌려받은 보증금 150유로가 방값이었다. 모스크바에 비하자면 두 배 차이가 났다. 1kg에 300루블 쯤 하던 돼지고기는 여기서 22유로였다. 파스타나 삶아야겠구나. 루블에 비해 훅 꺼진 유로화 봉투도 여기가 서유럽임을 알려주었다.

파리는 여유로왔다. 목도리에 얼굴을 묻고 다녀야 하는 곳이 러시아였다면,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한량 행세를 할 수 있는 곳이 파리였다. 열 시쯤 일어나 돌아다녀 보면 아직도 젊은이들이 조깅을 하고 있었다. 오후에도 동네 골목골목을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덕분에, 한국에 돌아가면 운동을 좀 해야겠다는 의욕에 찼다. 여행 동안 힘들어서 살이 빠질 줄 알았더니 오히려 훨씬 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다짐은 파리 8구에 그대로 놓고 왔다. 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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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개선문 아래 있던 문구. 날짜로 보아 1차 대전 종전을 기념하는 것 같다.]

숙소에서는 금방 중심가에 닿을 수 있었다. 개선문 남쪽으로 내려가면 곧장 상젤리제 거리다. 뭐 그냥 명동 같다. 그 거리를 쭉 통과하면 루브르 박물관이 나온다. 그 전에 호수가 여럿 있는 공원을 만나는데, 물에 뜬 오리들 외에 흰 비둘기들이 숱하게 날아다녔다. 모스크바부터 시작된 트라우마가 아직 선명했다. 진짜 이런 비둘기 새끼들… 누구랄 것도 없이 지난날의 굴욕을 씹는다.

그렇게 지나가다 보면 여럿이 온 관광객들이 가끔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희한하게 서넛 씩 되는 아랍인 남자 그룹이 많았다. 파리 여행가들의 후기엔 사기꾼들의 이야기가 많다. 사진을 찍어준 뒤 카메라나 휴대폰을 돌려주지 않고 돈을 요구하는 것은 그 중 제일 흔한 레퍼토리다. 아마 거기서 가장 뜨내기 같은 이들에게 안심하고 카메라를 맡겼던 모양이다. 어쨌든 우리는 셀카에 장인 수준인 한국인답게, 각도를 선정하고 포즈를 주문하며 사진을 여럿 찍어줬다. 그리고 카메라를 다시 내밀다 능청맞게

        오케이, 원 유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 소년처럼 웃는다. 피스, 원 러브, 그리고 하이파이브. 모나리자 빼고는 뭐가 뭔지 잘 모르는 루브르에 들어가는 대신 그렇게 즐거운 일을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검은 코트를 입은 아시안들이 무슨 건달처럼 보였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모두 해외여행 1회차인 네 남자는 그렇게 여유를 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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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개선문을 다시 찾았다. 개선문 위로 올라갈 수 있다. 얼마의 입장료를 내고 검색대를 통과하면 끝이 있긴 한가 싶은 나선계단을 오른다. 한참 오르면 시원한 바람이 부는 지점이 있다. 그 때 위를 올려다보면 출구가 보인다. 옥상으로 올라오면 바닥이 아직 젖어있었지만, 아마도 대서양에서 불어왔을 바람엔 탄력이 있었다. 상쾌했다. 밑을 내려다보니 개선문은 육거리 중앙에 있는 로터리였다. 여기서부터 길이 쭉 뻗어나갔다. 그 장관이 근거 없는 희망을 줬다.

나의 2016년도 이렇게 쭉쭉 갈 줄 알았던 것이다. 마크롱이라는 이름은 들어보지도 못 했을 때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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