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노래를 사랑하는 노동당 당원 조혜원 님의 <장수 일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서울살이를 하다가 전라북도 장수로 귀촌한 필자의 생활  속 기쁨, 슬픔 모두를 소박하고 진솔하게 담아낼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크고 넙적한 잎들 사이로 초록빛 꽃송이가 보인다. 브로콜리다! 브로콜리 너마저, 익는구나, 익었구나! 가까이서 보니 익어도 한참 익었다. 잎만 무성하고 꽃은 보이지 않더니 언제 이렇게 자랐을꼬. 더 놔두면 꽃송이가 누렇게 바래서 못 먹게 될 수도 있으니 우선 따고 본다. 한껏 자란 요 브로콜리는 모종으로 심은 것. 그 옆에는 씨로 뿌린 브로콜리 밭이 또 있다. 다행히(?) 여긴 이제 막 꽃피기 시작이다.

난 아직 브로콜리가 맛있는 줄 잘 모르겠다. 식당에서도 있으면 먹긴 하는데 애써 찾아먹진 않는다. 그러면서 브로콜리는 왜 심었을까? 볶음 요리할 때 있으면 좋기도 하고, 여름에 찾아올 손님들한테 조금은 세련된(?) 반찬거리를 내주고 싶은 욕심도 있고. 아마 그 정도 까닭 때문이지 않을까나.

브로콜리. 잎이 커서 자리는 많이 차지하는데 먹을 수 있는 건 꽃송이 달랑 하나뿐. 다른 채소들에 견주면 왠지 얌체같기도 하고, 가게 가서 보면 괜스레 비싸기만 하고. 이모저모로 크게 마음에 와닿는 채소는 아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이런 마음 가지면 안 되는데. 브로콜리가 알아채기 전에 무관심도 관심도 아닌 어정때기 마음 얼른 내려놓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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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심은 브로콜리 밭. 여긴 아직 브로콜리가 작다. 이제 자라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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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종 심은 브로콜리 밭엔 어느새 브로콜리가 익었다. 익어도 한참! 잎은 크고 무성한데 먹는 건 달랑 꽃송이 하나. 브로콜리가 그래서 비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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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 꽃송이. 아직까지 이쁜 줄 모르겠다.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을 귀하게 여겨야 하는데..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는 글처럼 이젠 브로콜리를 좀 더 자세히,  자주 들여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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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종으로 심은 브로콜리. 벌써 누래지려고 한다니! 냉큼 따서 카레 속으로~~


오늘 처음으로 만난 브로콜리 두 놈, 장렬하게 매콤한 카레 속에 잠겼다. 첫 맛은 살짝 데쳐서 보았어야 했는데. 샛노란 카레 빛깔과 맛에 제 모습과 맛이 가려진 브로콜리한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다음에 익은 브로콜리를 만나면 고맙게 눈인사 마음인사 나누어야지. 오늘, 브로콜리 보고도 ‘뭘 벌써 익고 그런다냐.’ 하면서 그닥 반가워하지 않았던 마음, 깊이 반성!

올해 첫 브로콜리를 딴 날, 브로콜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반, <브로콜리 너마저>를 꺼내 듣는다. 그래, 눈길 한 번 제대로 준 적 없는데 어느새 자란 브로콜리, 네 덕분에 오랜만에 음반을 꺼내 듣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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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 너마저 1집. “브로콜리” 하면 이 음반이 먼저 떠오르는 사람, 나 말고도 아마 많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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