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감자에 싹이 나고 잎이 나서 묵찌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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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감자싹이 싹~ 다 올라왔다! 올해 감자농사, 잘될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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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감자밭이야, 상추밭이야? 지난해 이 자리가 상추밭이었는데 씨가 살아 있었나 보다. 저 한쪽에 상추씨 심은 곳보다 훨씬 많이 자라서 여기 상추 먼저 먹게 생겼다~]

감자밭에 감자 싹이 좍 올라왔다. 언제 나오실까 기다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한두 개씩 고개 내밀던 때가 바로 얼마 전인데 어느새 감자밭이 푸르러졌다. 심은 감자씨, 거의 백발백중으로 싹을 틔운 듯. 둥글하게 이쁜 감자잎들의 향연을 보고 있자니 가위바위보 노래가 절로 떠오른다. “감자에 싹이 나고 잎이 나서 묵찌빠, 가위바위보!”♬  노래를 생각하다 보니감자가 어쩌다 이 노래랑 얽히게 되었을까 궁금하다. 직접 확인해 볼까?

둥그레한 감자는 주먹 모습이랑 비슷하니 ‘바위’!
감자에 삐쭉 솟아난 싹은 가위랑 닮았으니 ‘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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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하게 넙적한 잎은 손바닥이 생각나니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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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이래서 감자가 가위바위보 노래 주인공이 되셨구나!

헌데 ‘묵찌빠’는 감자랑 어떻게 이어지려나. ‘묵’은 주먹이랑 비슷한 글자여서? ‘찌’는 ‘씨’랑 비슷한 글자여서? ‘빠’는 손바닥의 가운데 글자 ‘바’를 세게 발음해서?

감자에 싹이 나고 잎이 나서 묵.찌.빠!
가위.바위.보!

감자밭 덕분에 오늘 하루, 이 노래 입에 달고 지내게 생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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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감자여도, 같은 땅이어도 싹 틔우는 때는 서로 조금씩 달라요. 사람들이 저마다 다르듯이.]


#2. <못다 핀 감자꽃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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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꽃이 폈다. 하얀 감자를 심었으니 하얀 감자꽃이다. 감자꽃을 보니 슬프다. 마음껏 꽃피우기 전에 꺾어야 하므로, 그래야 땅속 감자가 실하게 자랄 수 있으므로. 아, 잔인한 농사법이여, 사람이여..

활짝 핀 감자꽃, 작은 꽃망울까지 죄 딴다. 그냥 버리기 안쓰러워 접시에 담아 본들 꺾인 생명이 살아날 리는 없고. 제사 지내듯 접시를 보며 미안한 마음만 전하고 다시 땅으로 보낸다.

감자 순지르기 할 때는 줄기를 마구 쳐 주는데 영 내키지 않는 일이다. 꽃을 따는 건 그보다 더 힘들다. 일이 아니라 마음이. ‘이렇게까지 하면서 감자 농사 지어야 하나?’ 싶다가도 좀 더 굵은 감자를 얻을 욕심에 결국 작은 생명들을 꺾고야 만다. 못다 핀 감자꽃들에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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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저 작은 꽃이 감자알로 갈 양분을 얼마나 뺏는다고 꺾어야 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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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피기도 전에 져야 하는 슬픈 꽃망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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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감자꽃 따다 접시에 담아 본다만..]


#3. <다섯 시간을 준비한, 눈물겨운 감자전>

오로지 직접 기른 감자를 버리지 않겠다는 생각 하나로 감자전을 만들었다. 무려 다섯 시간에 걸쳐서! 지난 겨울, 다용도실에서 마구 싹이 나던 감자들을 죄다 냉장고에 넣었다. 하나씩 꺼내 먹다 어느 날, 보았다. 검게 얼고(썩고) 있는 감자 속. 다용도실에 있을 땐 쭈글은 했어도 썩는 일은 없었는데 냉장고가 그리 추웠을까? 밖으로 내놓기엔 어차피 늦었다.  그랬다간 죄다 물러 터질 게 빤하니까. 안 그래도 작은 감자들 껍질 까서 먹니라 힘들었건만 검게 썩은 곳까지 도려내며 먹자니 어찌나 번거롭고 힘이 들던지. 내가 왜 냉장고에 넣었을꼬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 싹 버리고픈 마음이 한번씩 들었다. 썩은 곳 빼면 어차피 먹을 거 얼마 되지도 않는데… 그래도 차마, 차마 버릴 수 없어서 꾸역꾸역 찌개도 하고 볶음도 해 먹다가, 결심을 했다. 한 번에 쫑낼 요리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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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랑 감자전이 공동 후보에 올랐는데 감자전이 간택되었다. 하나하나 다듬는데, 버리는 게 더 많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는 섭섭지 않게 하얀 살을 건질 수 있었다. 조각조각 난 감자들을 보며 감자조림을 할까도 싶었지만, 양이 너무 많다. 다시 감자전으로!

강판에 갈기엔 너무 작으니 믹서기로 윙윙~ 물 쪼금씩만 넣고 돌리니 고것도 시간 꽤 걸린다. 믹서기에 다 갈고서, 베헝겊에 감자 건더기 거르니, 감자에서 빠져나온 검붉은 물이 꽤 많다. 감자전 말고 다른 요리면 저 물도 다 먹는 걸 텐데 버리면서 좀 아까웠다. 검붉은 물 밑에 가라앉은 하얀 감자전분이랑감자 건더기를 합치고 소금 솔솔 쳐서 반죽 마무리! 여기까지 하는 데만 거의 다섯 시간을 잡아 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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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고생 끝 행복이나니 이젠 먹는 시간~ 걸쭉하고 퍽퍽한 반죽이 부쳐질까 싶었는데, 된다. 처음 먹는 건 아니라서 담담하게 맛을 본다. 적당히 고소하고 쫄깃하고 질펀하게 담백한 맛.  삶은 감자, 볶음 감자, 조림감자, 카레 감자, 찌개 감자. 내가 좋아하는 감자 요리들과는 또 다른,  감자전만이 지닌 감자 맛 세계다. 밀가루를 넣으면 어떨지 궁금해서 조금 섞어 보는데 때깔부터 허연 쪽으로 기운다. 쫄깃함도 덜하고. 감자전은 좀 어두운 색이어야 감자전답지~~ 밀가루는 감자전의 본질을 흐리는 것 같으니 넣지 않는 것으로 결정!

한 프라이팬 부치고 먹고, 또 부치고 먹고 배 부를 때가 됐는데 자꾸 손이 간다. 기름을 두른 거니 느끼할 법도 한데 또 먹고 있다. 결국 감자전으로 저녁을 대신했나니. 부쳐 두었다 며칠 두고 먹으려 했는데 조금밖에 남기질 못했네.  백 퍼센트 오리지날 감자전으로 과식한 사람, 오늘만큼은 전 세계에 나 혼자뿐이지 않을까나 ^^

귀하고 맛난 감자전 양껏 먹어서라기보단 감자전을 기연시 만들어 내서 행복한 이 밤. 감자를 꼬옥 버리지 않겠다던 의지를 실천에 옮긴 뿌듯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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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텃밭에서 태어난 마지막 감자들과 씨름하며 눈물겨운 감자전 만들고 먹은 덕에 이제부턴 큰 감자로 편하게, 쉽게~  감자요리 해 먹을 수 있게 됐도다. 만세~~ 만만세에!!

(원죄가 나한테 있는지라 그동안 말은 못 했다만 감자야, 그동안 너 챙겨 먹니라 나두 고생 많았다. 올해는 보관 잘해서 버리는 거 없이 먹도록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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