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표현에 압축돼 있는 유럽의 공유지 인클로저는 자본주의가 자연을 본격적으로 상품화하는 첫 단계였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공공의 것인 부(富)를 상품화해서 사유재산화하는 과정이었다. 자연에 대한 영리상품화가 기후변화로 대표되는 생태적 한계에 이른 오늘날, 축적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자본의 본능이 상품화의 새 영역으로 ‘지식’에 집중하고 있다.

토지와 마찬가지로 지식은 본질상 공적 자산이다. 세계적 인터넷기업들의 사업 모델을 가능하게 한 정보 인프라의 구축은 국가의 세금과, 무료로 개발 사항을 사회에 제공한 사람들의 공헌에 크게 빚지고 있다. 인터넷과 구글의 검색엔진 알고리즘은 미국 정부가 세금으로 운영하는 연구소에서 개발됐고, 월드와이드웹(WWW)은 영국인 엔지니어가 개발해 보상을 요구하지 않고 세상에 내놓았다.

경제학자 강남훈 교수는 빅데이터를 활용한 심층 학습 능력을 통해 인간보다 훨씬 똑똑해진 최근의 인공지능 트렌드를 기본소득이 정당하다는 근거의 하나로 제시한다. 의학에 적용되고 있는 아이비엠(IBM)의 왓슨, 이세돌과의 바둑 대결로 유명한 알파고, 구글의 자동번역기 등이 모두 그렇다. 빅데이터의 방대한 정보량은 수많은 정보주체들의 존재 자체에 의해 또는 의식적인 정보 제공 동의에 의해 집적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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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누군가의 사용이 다른 이의 사용을 방해하지 않는 비경합성을 특징으로 한다. 지식, 특히 복제가 쉬운 디지털 정보에 대해 배타적 소유권을 설정하는 일은 기술적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이윤 기계로서 기업들은 특허권과 같은 지식재산권의 형태로 타인의 사용을 배제하거나 사용에 대해 사용료를 지급하게 하는 방식으로 지식을 배타적으로 소유하려고 한다.

딘 베이커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창의성에 대한 적정 수준의 보상을 훨씬 넘어서는 특허권 남용으로 사회 전체적으로 생산성과 복리가 후퇴하는 상황을 지적해 왔다. 비정부기구인 세계지식생태학협회 대표 제임스 러브는 2010년 “특허법을 위반하지 않고 복합 소프트웨어나 휴대전화, 의료기기, 심지어 신차도 개발하기 어렵다”는 말로 이러한 상황을 설명한 바 있다.

지식자산을 상품화·사적재산화하려는 최전선에 직원들의 높은 연봉과 복지 수준, 끊이지 않는 창업자들의 자선 미담으로 대중적 평판이 좋은 인터넷기업들이 있다. 국민경제 수준에서 이들 인터넷기업의 지위는 기업 이미지와는 딴판이다. 페이스북코리아는 2013년 광고 매출로 1000억원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국 지사장이 언론 인터뷰로 공개한 2016년 6월 한국지사의 임직원은 겨우 60명이다. 컨설팅회사 매킨지의 대표는 2013년 세계 10대 인터넷기업들이 매년 벌어들이는 수백억 달러의 수익과 비교해 “이들이 만드는 일자리는 겨우 20만개 정도”라고 말했다.

인터넷기업들의 편법적인 조세 회피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2014년 프랑스에서 구글은 17억 유로의 수익에 대해 0.3%가 채 안 되는 세금을 냈다. 2억 유로를 번 페이스북이 낸 세금은 소득의 0.12%였다. 프랑스의 법인세율이 33.3%임을 고려하면 세금을 아예 안 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도 차이만 있을 뿐 세계 각국에서 조세 회피가 심각하다. 한국에서는 해외에 본사를 둔 인터넷기업들의 세금 납부 규모는 물론이고 법인세 납부 여부조차 공식 확인할 수 없다. 이들 기업이 보통의 주식회사가 아니라 기업공개 의무가 없는 유한책임회사로 등록해 있기 때문이다.

최경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소득불평등을 주제로 한 2016년 토론회에서 미국과 한국에서 상위 1%로 소득 집중이 심화되는 원인을 자본 구성에서 지식자산의 비중이 증가하는 데서 찾았다. 즉 토지건물, 기계장비 등 전통적 자본에서 창출되는 이익은 소득불평등을 추가로 악화시키지 않고 고르게 분배되는 반면, 지식자산에서 창출된 이익은 최상위 소득계층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익에 비해 지나치게 작은 고용 및 세금 납부 규모도 이 현상을 설명하는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유럽연합이 최근 구글에 반독점 규제의 일환으로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이 국내에서도 화제다. 그런데 플랫폼 기업들의 사업 모델 자체가 그 분야에서 독보적인 시장점유율을 확보하는 것이다. 지식자산에 대한 자본의 인클로저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반독점 규제만으로는 부족하다. 빅데이터 같은 지식자산의 사용 자체에 대해 이윤 규모에 따라 누진적인 사용료를 부과하고, 그 사용료를 모든 시민에게 평등하게 배당하는 정책이 결합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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