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9 부동산 대책으로도 과열이 진정되지 않자 지난 8월2일 내놓은 정부의 2차 안정화 대책에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시장의 과열이 투기 수요 때문이라는 것을 통계로 제시했다. 최근 4년간 이전 기간에 비해 공급이 크게 늘었지만 주택 자가 점유율은 정체 상태에 있고, 같은 기간 유주택자의 거래량은 뚜렷하게 늘었다. 투기가 원인이라는 것이 이보다 더 잘 증명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투기 근절이라는 명분에 대놓고 반대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주장들이 ‘시장을 이기는 정책은 없다’는 식으로 맞서는 데 반해 이병태 카이스트(KAIST) 경영대학 교수는 아예 부동산 투기꾼의 미덕을 칭송하고 나섰다. 지난 7월8일치 <중앙일보>에 기고한 ‘투기꾼은 부동산 가격 폭등의 원인이 아니다’라는 칼럼에 따르면, 부동산 투기꾼은 모험적 투자로 공급을 촉발하는 긍정적 역할을 하고, 시장의 흐름을 먼저 읽은 현명한 이들이다. 그리고 부동산 시장의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시장의 총수요와 공급이라고 한다.

투기꾼이라는 용어에 담긴 부정적 가치판단을 덜어내고 생각해봐도 과연 투기꾼들이 그렇게 훌륭한 사람들일까? 부동산 투기를 웬만하면 남는 장사로 만들어준 제도 환경들과 부동산 불패 신화의 경험이 만인에게 공유된 지식이 된 이상, 사람들을 부동산 투기로 이끌어온 것은 미래 부동산 시장을 내다보는 능력이 아니라 고급 개발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와 생계 걱정 없이 투기에 넣을 수 있는 여윳돈이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투기꾼에게 사회가 어떤 보상체계를 적용할 것인가, 주택을 어느 수준까지 시장에 맡길 것인가, 이것이 정부 주택 정책을 둘러싼 이해의 대립선이다. 이 교수는 주택 가격의 조정과 투기꾼에 대한 보상체계를 최대한 시장에 맡기자는 주장을 펴는 것뿐이다. 그렇게 하면 큰일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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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경제학에서 수요-공급 법칙은 가격의 균형을 잡아주는 핵심적인 메커니즘이다. 이 법칙은 특정 상품의 가격이 균형가치 이상으로 상승하면 소비자가 소비를 줄일 수 있거나, 상대적으로 싼 대체 상품의 소비가 가능한 조건에서 작동한다. 주택은 대체 상품이 없으며 재생산할 수 없는 토지로 인해 공급을 일정 한도 이상 늘릴 수도 없다. 이보다 더 중요한 주택 상품의 특성은, 자산가치가 사용가치만큼이나 중요한 재화로서 가격 상승기에 오히려 구매 수요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즉, 가격 안정화 메커니즘으로서 수요-공급 법칙은 주택에 대해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주택 투기꾼에게 벤처 투자자와 같은 순기능을 기대할 수 없다. 당연히 투기꾼에 대한 보상을 시장에 내맡겨서도 안 된다. 그들의 성공은 전세 대란과 월세 폭등을 감당해온 무주택 세입자들의 고통이다. 그들의 성공이 위험한 또 다른 이유는 집단으로서 그들의 투기 자체가 미래 주택 가격 상승이라는 그들의 예언을 실현시키는 유력한 수단이 된다는 사실이다. 주택담보대출이 가계부채의 절반을 차지하고, 가계부채 관련 각종 지표가 위험 수위를 넘어선 상태에서 부동산 투기는 거품을 더욱 키워 국민경제를 재앙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세계금융위기의 진앙이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직전인 2007년에 경제학자 유진 파마는 미국 주택 시장의 거품 우려에 대해 “거품이라는 말은 나를 미치게 한다”는 말을 남겼다. 경쟁시장 가격에 거품은 없다는 것이 그의 학문적 소신이었다. 미국 주택 시장은 2008년 붕괴했고 그 여파는 세계 경제에 아직도 깊고 넓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잃어버린 20년’을 추동한 일본의 부동산 거품 붕괴 전에 투기꾼들은 큰 역할을 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금융투기를 억제해 생산적 투자로 유인하기 위해 ‘금리생활자의 안락사’를 주장했다. 한국의 지대 추구형 경제를 끝내기 위해 부동산 투기꾼의 안락사가 절실하다. 여기에 가장 좋은 처방은 ‘전·월세 상한제’이다. 이 제도는 임대수익 폭리를 막아 세입자들의 주거 부담을 크게 줄이고, 임대수익 기대에 따라 형성되는 주택 가격을 서서히 끌어내릴 것이다. 투기를 근절하겠다는 반복적인 메시지보다 투기의 매력을 획기적으로 줄일 더할 나위 없는 정책임에도 정부는 아직까지는 간을 보는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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