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동안 가지가지하게 생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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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반찬의 백미, 가지가 주렁주렁 열리고 있다. 요만했던 것들이 하루가 다르게 커진다. 드디어 때가 온 것이다. 가지를 열심히 썰고 말려야 하는 때. 우리 부부 아무리 열심히 먹어도 몇 그루 안 되는 가지나무(?)에서 쑥쑥 자라는 가지들을 싱싱할 때 다 먹어 치울 방법이 없다. 제 때 먹지 않으면 썩고 물러지는 모습 속절없이 바라봐야 하는 쌈채소와 달리, 참말로 다행히 가지는 말려서 보관할 수 있는 고마운 채소다. ‘나 먹어 주세요’ 하고 말하는 듯한 길쭉 통통한 가지들. 게으르게 놔두었다간 어느새 딱딱해진다. 바로 먹든, 썰어 말리든 일단 따야 된다.

한여름에 채소 말리기는 봄, 가을보다 훨씬 어렵다. 바로 뜨거운 온도와 한몸처럼 찾아드는 습기 때문. 특히 통통하니 물기 많은 가지는 이삼일 넘게 햇볕에 말리는데 다 마르기 전에 하루만 비가 와도 곰팡이가 슨다. 가지 말리는 것도 때를 잘 타야 한다. 최소 이삼일은 비 없이 쨍쨍하다는 예보 정도는 등에 없고 시작해야 한다.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말리다가 스멀스멀 곰팡이 핀 가지들 눈물과 함께 여러 번 퇴비장으로 보냈다. 비 오는 하루이틀 사이에 공든탑 무너지기 십상이다, 가지는. (그럴 때면 건조기 사고 싶은 욕망이 막 꿈틀대는데 얼른 눌러버린다. 그거 있음 햇볕에 말리는 일 아예 접을 것만 같아서.)

오늘내일, 비 없이 맑다는 예보를 눈여겨보았다. 어제 자기 전에 마음을 먹었다. 내일 아침, 가장 먼저 가지를 말릴 것! 미리 따 둔 가지를 아침 댓바람부터 썰어서 햇님께 맡겼다. 예보는 그르지 않았고 뜨거운 여름 햇살에 그럭저럭 말랐다. 오후께 죄다 뒤집어 주기도 했지. 하지만 보관할 만치 바싹 마르려면 아직 멀었다. 내일 하루 동안 정말 많이 말라야 한다. 주말에 또 비 소식이 있어서는.

은근히 손도 마음도 많이 가는 한여름 가지 말리기. 요거 귀찮음 자주자주 생가지를 먹는 수밖에. (그래두 가지 말린 거 있음 이 사람 저 사람 언제든 나눠 줄 수 있고 한겨울에도 가지 반찬 만들 수 있으니힘들어도 완전 포기는 못 함이야~~^^) 가지 쪄서 간장에 무치기, 가지 볶음, 가지 구이. 요 세 가지가 우리 집서 자주 해 먹는 가지 요리다. 다 맛나다. 어릴 때 엄마는 살짝 징그런(?) 속살이 훤히 드러나는 가지무침을 주로 해 주셨지. (나는야 어릴 적부터 가지를 참 좋아했음!)

먹다 지치면 말리고, 말리다 지치면 먹고. 긴 가뭄 거치고도 넘나 튼튼하게 자라 준 가지들한테 고마워서라도 올여름, 곰팡이 슬어서 눈물겹게 버리는 일 없이 가지를 잘 말려 보리라. 딱딱해진 생가지 버리는 일 없이 가지를 열심히 즐겁게 먹어 보리라! 앞으로, 한동안, ‘가지가지’ 하게 생겼다! 몽실 푸근하게 씹히는 가지가 있어서, 가지 하나로 한상 푸짐히 차릴 수 있어서, 이 여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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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지도 잘 마르고, 가지 반찬도 잘 먹은 날, 요거시 바로 가지가지시골 여름살이>

어제 썰어 말린 가지가, 이틀 만에 거의 다 말랐다. 어제 오늘 해가 참말 뜨겁긴 했나 보다. 딱 하루만 더 말리면 완벽하겠는데, 밤이슬에 눅눅해질 것을 막고자 망에 담았다. 내일 해가 나면 한 번 더 널어야지. 해가 안 나면 저 상태로 두는 게 낫고.

가지 말린 거 보관하기엔 양파망이 딱 좋다. 가지 말고도 뭐든 말린 채소들은, 마늘도 양파도 물론, 다 양파망에 담는다. 바람 솔솔 통하는 양파망이여기선 쓰임이 참 많다. 서울 살 때 버리지 않고 모아둔 양파망들도, 여기서 양파 사 먹고 생긴 것들도 깨끗이 빨아서 다 보관하고 있다. 한번 썼던 것도 다시 또 빨고, 또 쓴다. 헐어서 구멍이 나기 전까진.

가지 말린 거 기분 좋게 갈무리하고는 바로 밭으로~ 하루 만에 또 자랐다. 가지 크는 속도가 참 대단타. 갓 딴 가지로 두 가지 반찬을 했다. 먼저 가지를 살짝 쪄서 무치기. 국간장 식초 매실액 참기름 조금씩만 넣고 조물조물 무친다. (조금 싱겁게 하면 많이 먹을 수 있다!) 가지를 손으로 죽죽 갈라내니 두껍고 얇고 뭉개지고 모냥이 제각각이다. 칼로 곱게 썰까 싶다가도 어릴 때 엄마가 하던 모습 그대로 따라하고 싶어서 ‘앗 뜨거운’ 가지를 계속 손으로 찢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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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은 계란 입힌 가지 부침. 어제 가지 말리는 글을 썼더니 가지 부침 생각난다는 댓글이 많아서 나부터 먹고 싶어졌다는. 보통은 가지만 그냥 구워 먹는 때가 많다. 기름 두르지 않고 소금 살짝 쳐서 프라이팬에 말 그대로 굽기만 하는 요리. 가지 본연의 맛이 불의 도움을 받아 담백하고 그윽하게 올라온다.

구이와 부침은 확실히 다르더라. 기름과 계란이 만나 만들어 내는 그 맛의 세계는 역시 외면할 수도 비켜갈 수도 없는 진리. 물렁하게 씹히는 가지무침, 고소하고 담백한 가지부침. 가지 하나로 밥상이 꽉 찬다. 날마다 먹어도 질릴 것 같지 않은 이 맛, 당분간은 날마다 가지를 따게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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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지 말리는 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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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를 또 말렸다. 이번 여름만 벌써 세 번째. 지난주 말린 거에 견주면 한참 적긴 하다. 그땐 넓은 대나무 발에 한가득이었는데 이번엔 플라스틱 채반 달랑 두 개에 널어도 빈 자리가 슬쩍슬쩍 보일 정도였으니까. 더 놔두면 쇠겠다 싶은 것들만 따니 때마다 말리는 양이 다를 수밖에. 대나무발에 촘촘히 가지를 널었을 땐 하루하루 가지가 졸아드는 모습이 눈에 참 잘 들어왔다. 대나무 빛깔이랑 가지빛깔이 은근하게 어울려서 꼭 무슨 예술작품 보는 기분도 들었고. 같은 자리에서 시간에 따라 햇볕을 받은 그만큼 모습이 바뀌는 가지. 그 가지를 시시각각 보고 느끼기. 바로 요맛에 가지를 말리는 것 같다.(가지 좋아하는 사람한테 가벼웁게 선물하는 맛도 좋고.)

주말 비가 지나면 또 가지들은 쩍 자라 있겠지. 그럼 나는 또 가지를 말릴 테고. 지금처럼만, 한 번에 열 개 넘지 않게만 발맞춰 자라 준다면 가지 말리는 노동쯤 귀찮아하지 않고 잘 해낼 수 있을 듯도 하다. 지금까진 이 일이 좀 싫었다. 마치 가지를 말리기 위해 가지 농사를 짓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본말이 전도된 느낌을 자주 받아서는..)

남은 여름, 난 몇 번이나 더 가지를 말리게 될까나? 가지 말리는 녀자, 다 마른 가지를 망에 담으면서 문득 궁금해지누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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