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지가지 인생, 곰팡이가 찾아오다>

가지 말리기 경력 4년. 다 말린 가지를 싸그리 버린 일은 처음이다. 아, 이를 어쩔까나. 이번 여름 애써 말려 둔 가지들이 곰팡이한테 그만 점령을 당했다. 분명 이 정도면 되겠다 싶을 만치 바싹 말려서, 양파망에 담아서, 창고에 걸어 둔 가지들. 창고 드나들 때 한번씩 살펴보기는 했는데 오늘 들여다본 결과는 참혹했다.

곰팡이스런 빛깔이 슬쩍 보이기에 가지 담은 망 세 개를 꺼냈다. 그리고 보았다. 곰팡이에 완전 쩔은 가지들을. 기가 너무 막혀서 그런가, 한숨도 나오지 않더라니. 곰팡이 안 슨 거 몇 개라도 골라보려고 가지를 이리 들척 저리 들척 하다가는 가지망 두 개는 완전히 포기. 그나마 망 한 개는 가지들이 성하였다. 요거까지 곰팡이한테 먹혔음 눈물 났을 거야, 정말.ㅜㅜ

성한 가지들을 다시 햇볕에 널었다. 지난 경험을 아무리 돌이켜 봐도 이렇게 마른 가지가 상한 때가 없다. 늘 양파망에 담아 창고에 보관하곤 했는데. 지난해 말린 가지도 올봄까지 잘 먹었는데. 창고에 창문이 두 개 있고, 늘 열어두는데 밤 습기가 창고 안으로 들어간 게 문제였을까? 그래두 지난해는 괜찮았는데 왜 이번만? 모를 일이다. 바람 잘 통하라고 양파망에 담아 두는 것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고사리나 취나물처럼 비닐에 보관하는 게 맞는 걸지도.

가지말리기4

그리하여 오늘 다시 말린 가지들을 지퍼백에 보관하기로 했다. 가지를 비닐에 담는 건 처음. 마른 가지들 다 비닐에 담아 파는 걸 봐도, 이게 맞지 싶다. 그래도 여전히 미스테리는 남아있다. 지난 몇 년 양파망에 담은 가지들은 왜 곰팡이가 찾아오지 않았을까… 밭 농사를 여러 개 망쳐 안 그래도 기가 한참 죽어 있는데 그나마 잘된 가지 수확물마저 싹 버리게 만든 어설픈 텃밭 농사꾼, 작은 텃밭이 안겨주는 시련에 끝이 없도다.

하도 시련(?)이 많아서 그런가, 오늘 가지 말린 거 한 상자나 버리면서도 생각보다 많이 속상하지 않았다. 있어도 되는 일은 아니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스스로 토닥토닥까지. 예전 같음 한 시간쯤 자학을 했을 듯도 한데 텃밭 시련에 면역이 좀 된 건지. 곰팡이 슨 가지를 보며 멍~했던 순간, 잠시 궁금하긴 했다. 나는 지금 가지가 아까운 걸까, 가지 말렸던 노동이 아까운 걸까?

그나저나 겨울 손님들 올 때 가지나물이 반찬 몫 톡톡히 하는데, 고걸 못하게 될까 아쉽다. 가지밭에 아직 가지들이 힘차게 자라고 있으니 다시 말리면 될 일이겠지. 싱싱한 가지 반찬 맛보여 줄 여름 손님들이 계속 오실 듯하여 당분간은 말리긴 어렵겠고. 일단, 생존 말린 가지라도 더는 상하지 않게 잘 보관해 보자꾸나.

가지가지 인생에 어쩌다 끼어든 곰팡이. 이제 더는, 제발 만나지 않게 되기를!


<아쉬운 마음 달래주는, 대왕가지 납시오~>

곰팡이 잔뜩 핀 가지들을 몽땅 버리면서 헛헛한 마음 달래고자 가지밭에 갔더니 며칠 새 쑥쑥 자란 가지들이 반긴다. 우리들 계속 크고 있으니 속상해하지 말라는 듯 보랏빛 무리가 예쁘고 고맙기만 하다. 그러다 엄청 큰 가지를 보았다. 가지가 이렇게나 크다니! 대왕가지일세~ 길고 굵고 단단한 이놈을 냉큼 따서 길이를 재 보니 사십 센티미터가 넘는다. 무게도 꽤 나갈 듯. 가지밭을 더 촘촘히 살피니 길쭉하게 큰 가지들이 꽤 보인다. 가지가 본디 요러코롬 길게 자라던 것이었나, 아님 요번 가지가 유독 잘 자라는 것일까.

대왕가지1가지수확1

마음 같아선 큰놈 다 따서 말리고 싶은데 남은 여름 다녀갈 손님들 생각에 자꾸 미루게 된다. 지금 큰 것들 다 따도 금세 작은 가지들이 커질 텐데, 그것들로도 손님 맞이 충분할 텐데, 고걸 잘 알면서 말이지. 오락가락하는 비 좀 멈추면 가지 몇 개라도 따서 말릴지 생각해 봐야지. 말린 가지 싹 버린 충격 가라앉힐 시간도 좀 필요할 테니 가지로 아쉬운 마음, 가지로 달래기부터 해 보자.

대왕가지 탁탁 썰어 큰 솥에 찐다. 가지는 하나인데, 다른 때 서너 개 찔 때랑 양이 비슷하다. 큰 값을 톡톡히 하는군. 만질 땐 단단하게 느껴졌는데 속살은 작은 거랑 다름없이 말랑하다. 대왕가지 무침을 먹으면서 가지로 쓰렸던 속이 조금 물렁해진다.

기를 때 편하고 바로 반찬 만들기도 쉬웠던 가지. 갈무리마저 쉽게 넘어가려던 마음에 곰팡이로 가르침까지 주어서 그런가, 잎도 꽃도 열매도 보랏빛으로 이쁜 가지가 있는 이 여름이 참 좋다.


< 가지가지 인생, 다시 시~!>

어느새 또 주렁주렁 열린 가지들. 너흰 정말 끝도 없이 잘 자라는구나! 처음엔 그냥 둘까, 말릴까 주저주저했다. 지난번 말린 가지 싹 버렸던 아픈 추억도 슬며시 떠오르고.

가지밭0

그렇다면 가지를 말려야 할 까닭을 생각해 보자.

뜨거운 한여름 뜨겁게 달궈 주신 한여름 손님들도 끝이 났고, 당분간 손님 발길도 뜸할 듯하고. 그럼 우리 부부가 다 먹어야 하는데 지난여름 내내 먹는 바람에 생가지 반찬에 살짝 물렸다. 또 있다. 앞으로 사오 일은 완전 맑음이라는 일기예보!

됐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가지를 다시 말리자!

보관하는 길은 지난번에 뼈 아프게 겪었으니 잘 마르기만 해 주면 다시 가지를 버리는 일은 없으리. 상쾌하게 결론을 내리고 가지를 딴다. 이번에는 작은 가지들도. 작아도 딴딴한 것들은 이미 다 익었다. 더 자라지 않는 걸 알고 있으니 망설임 없이 뚝.

늦여름이라 한여름 때만큼 가지들이 늘씬 길쭉하진 않다. 슬슬 생을 마무리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울퉁불퉁 크기도 제각각인 다 익은 가지들을 보며 느낀다. 여기까지 와 준 것만으로도 참말 고마운데 아마 구월 어느 날까진 가지를 더 만날 수 있을 게다. 가지가 삶을 마치기 전까지 온힘 다 해 맺어 주는 열매들을 소중하고 귀하게 갈무리해야겠다. 볕 좋은 가을날도 시작되고 있으니 앞으로 몇 번은 더 가지 말리는 녀자로 살아가게 될 듯.

열심히 꾸준히 열매를 맺는 가지 덕분에 한동안 외면하고 지냈던 가지가지 인생 다시 시~작이다!

가지말리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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