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6일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 세상을 떠난 지 7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그 해 겨울, 유라시아 횡단기>의 필자 이용규님께서 달빛이 된 요정을 추모하는 글을 보내오셨습니다. 그의 생애와 음악을 기리는 마음으로 웹진 이-음에 게재합니다.

굿바이 알루미늄

2017.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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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날들에는 품질보증서가 없다.

다만 그 고저(高低)는 오후 여섯 시에 보인다. 누군가는 파인 다이닝에서 왼손으로 고기를 찍어먹는 동안 누군가는 텔레비전 앞에서 멸치 대가리를 다듬고 있다. 모습이야 좀 달랐을지 몰라도, 유사 이래 그렇지 않은 저녁은 단 하루도 없었다. 망할 놈의 ‘언젠가는’을 붙잡고 입술에 립밤 대신 풀칠을 대어야 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이다. 투박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렇담 어떻게 살 것인가. 미안하지만 삶에는 매뉴얼이 없다. 물론 세상이 제공하는 ‘대답 샘플러’는 있다. 오래 번민한 이들의 말이 경전으로 엮였고, 세대를 앞선 선배들의 노하우도 숱하다. 그러나 어쨌든 뭐랄까, 제조사가 공인한 사용설명서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매 시간 닥쳐오는 이유 모를 일들을 그저 마주쳐야 한다. 약간의 예측은 가능하지만 그 뿐이고, 끝없는 우리만의 이야기 안에서 살 따름이다. 남들에게는 시큰둥할 서사를 누군가는 삭이고, 나처럼 어리고 가벼운 자는 떠벌릴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포스트시즌이 없는 세상에서 리그 경기만 수백 수천 경기를 뛰어야 하는 야구선수가 아니겠는가, 한다. 로스터에 든 이름이 까뮈 식으로는 시지프스겠지만 이제는 야구공을 던져야 한다. 매일 굴리던 바위보다 가볍다고 좋아하다가는 팔꿈치 인대나 어깨 회전근을 잃게 될 것이다. 월요일에도 쉬지 않는 우리만의 야구가, 그렇다. 그 속에서도 보통은 패전처리나 대타, 잘 해봐야 9번 타자.

그래도 한 타석 정도에선 홈런을 때려낼 수 있지 않겠나, 그 많은 경기 가운데. 중질에서 저질을 오가는 나날의 필부(匹夫)라도 말이다. 인생의 영토가 주공 1단지에 그친대도 말이다. 인생이 온통 절룩거려 왔다고 해도 말이다. 무겁고 안 예쁘게 생긴, 사시미보다는 스끼다시같은 사람이라도 말이다. 그래, 가능하다면 역전홈런이고, 기왕이면 만루홈런이면 좋겠다. 그렇지만 그 기대가 막연하다는 것을 안다. 중학교 야구에서도 알루미늄 배트가 거세된 세상이기 때문이다. 경기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다른 얄미운 선수겠지. 3루에서 태어나 놓고 3루타를 친 듯 하는 애들.

배터박스에서 미간을 찌푸리고 데드볼이란 요행을 바라는 마이너리거의 세상이란, 그런 모양이다. 그 마이너리거가 바로 나다. 어정쩡한 재능으로 이렇게 ‘우리’란 낱말에 숨는 못난이다. 열심히 사는 대신 질투를 배웠고, 치열하게 살기보다는 어설픈 계급의식을 새겼다. 더불어 이해하는 게 아니라 홀로 탓하기에 익었다. ‘니넨 나보다 잘할 수 있었겠니?’


나는 누구의 이해를 구하는 대신 함께할 목소리를 발견했다. 라이브 공연만 되면 얼굴에 실망해 팬들이 돌아선다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진원. 궁상맞고 찌질한 데다 깨지기 쉬운 나의 내면을 달래준 이였다. 저물어가던 락의 시대에 당당한 원맨밴드였고, 멸치 대가리를 다듬던 집에서 음악을 만들었다. 그는 대량생산 시대의 가내수공업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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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한겨레 블로그]

그는 말하지 않아도 내 맘을 알아차리는 듯 하는 노랫말을 적었다. 그의 가사가 바라본 인생은 하나같이 ‘절룩거리고’ 있었으며(1절룩거리네’), 도무지 세상의 주인공은 아닌 것 같은 삶(3스무 살의 나에게’).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행운아(1행운아’)로 일컬으며 그래도 하루를 살아내는 동력을 주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커트 코베인이었다. 귀가 닳도록 그의 노래를 들었고, 어떤 걸 그룹 어떤 인디밴드 어떤 보컬 어떤 뮤지션보다도 그를 사랑했다.

하지만 우리의 만남은 얄궂게 짧았다. 북서풍이 선명해지던 칠 년 전 가을, 나는 여의도 성모병원의 빈소를 찾아야 했다. 11월 6일이었다. 싸구려 과자와 오징어를 씹고 어색하게 앉아 있자니 적막한 빈소가 눈에 들었다. 생활고에 스러진 인디 가수라는 설명은, 그를 반의 반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었다. 치미는 부아에 그의 음반을 사다 영전에 바친 것은 그 때문이다.

가끔 정말로, 특히 이런 계절에, 그립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그는 나처럼 나약한 추종자를 위해 다음과 같은 노래도 준비해두었다.

누구에게나 삶이란 건, 오즈를 찾아가는 길거나 짧은 여행.

그 길에서 널 만나고 사랑하고 가끔 떠나보내고. (2집 히든 트랙 ‘O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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