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정치가 아닌, 국회 안 정치인들은 온갖 영웅적 후일담을 늘어놓고 있지만, 광장정치가 정권을 바꾸었습니다. 국가관 재설정의 기회였지만 다양하고 절박한 목소리들은 곧바로 이어진 대통령선거로 빨려들었고, 어떤 이들은 인민의 눈물을 퍼 담아 보수정치체제의 식염수 주머니 노릇을 자처했습니다. 그 대선 후 첫 선거가 2018년 6월 지방선거입니다. 그간의 경향으로 보면 지방선거는 새로운 정권, 즉 문재인 정권 평가의 장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현 시점까지 문재인 정권에 대한 평가는 긍정 의견이 높은 편입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적폐청산 과정에서 기대와 지지를 얻었고, 외교에서도 몇 차례의 정상회담과 해외순방으로 이렇다 할 성과는 없지만 좋은 인상은 남겼습니다. 그러나 노동정책과 재벌개혁의 한계, 사드배치와 종속외교,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와 탈핵공약 후퇴, 게다가 노동자들이 또다시 목숨 걸고 싸워야 하는 현실을 통하여 한계를 명확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앞서 말한 경향에 의하여, ‘불행한 유권자들’은 이번에도 지지와 비판, 양자택일을 강요당할 판국입니다. 생각할수록 어딘지 억울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근본적으로, 현실적으로, 제도적으로 중요한 것들이 무언지 하나씩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헌’이 대표적이지만, 우선 그보다 덜 주목받고 있어도 무척 중요한 두 가지만 짚어보겠습니다.


 무제-1

선거구획정<왕좌의 게임>

유권자들은 정해진 선거구에서, 정해진 선출정수만큼 뽑는 투표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왕좌의 게임–나, 2인 선출’ 선거구 주민이라면 세르세이 라니스터, 대너리스 타르가리엔, 존 스노우, 산사 스타크와 아리아 스타크 등 무수히 많은 후보들 중에서 딱 2인만 선출되는 모습을 봐야 합니다. ‘한국형 선거 ; 지지하는 후보 선택은 나중으로 미루고 싫어하는 후보를 탈락시키기 위한 선거’의 특성상 대너리스 타르가리엔과 존 스노우의 합당이나 산사 스타크와 아리아 스타크의 단일화를 염원하거나, 반대편이라면 라니스터 남매의 재결합을 기대해야 합니다. 아니, 경우에 따라선 라니스터 남매의 독식, 대너리스 파의 독식 가능성도 높습니다. 완전한 소선구제인 국회의원 선거보다는 낫다지만 우세한 세력들이 독식하는 결과는 비슷합니다.

관련법에 의하면 지방의원은 선거구에 따라 2인 이상 4인 이하를 선출하도록 되어 있으나 기초의원의 경우 2인 선거구가 대부분이며 3인 선거구가 일부 편성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이는 지방선거조차 일부 기득권정당들에게 절대 유리하여 그들 간의 나눠먹기-싹쓸이 의석 배분을 초래합니다. 진보정당, 풀뿌리지역정치인, 정치신인의 등장과 성장은 지방선거에서조차 사실상 봉쇄당하고 있는 셈입니다. 타스의 브리엔느와 호도르 등 다양한 지지의사가 당선자라는 인격으로 나타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익히 보아온 것처럼 기초의원, 광역의원, 지자체장, 광역시.도지사, 그리고 총선 지역구 국회의원까지 지역 현안에 대하여 매번 비슷비슷한 공약을 내걸고 선거에 임합니다. “지하철을 뚫겠습니다, 도로를 확장하겠습니다, 어디를 개발하겠습니다, 무엇을 유치하겠습니다.” 낭비입니다. 광역시.도의원 다수마저 지역별 소선거구제로 선출하고 비례대표를 통한 선출은 10%에 불과합니다. 광역의회의 역할이라는 측면과 유권자의 정치의사 반영이라는 측면 모두에서 문제가 큽니다. 이로써 대형보수정당들의 독식과 지방의회의 여의도 예속화가 지속됩니다.

행정안전부의 <시.도의원 선거구 획정 및 지방의원정수 조정(안)>(2017. 11.) 역시 인구수 증감에 따른 선거구 조정 중심입니다(경기도의 경우 인구증가로 인하여 지방의원의 선출정수는 증가할 것이나 제도개혁 없이는 상기한 문제들이 반복될 것입니다). 이러저러한 제한범위 안에 있는 선거구획정위원회는 ‘결과적으로’ 기성 대형정당에게 유리한 선거구획정안을 만들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또 조례로 정하는 선거 관련 링과 룰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노동당은 ‘게임의 룰’을 바꾸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개혁안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첫째, 광역의원은 전면 비례대표제로 선출하여 유권자의 지지도에 따라 의석이 배분되도록 하고, 광역의회의 역할과 위상 또한 제대로 세워야 합니다. 둘째, 기초의원은 현재 2인 선거구 선출 중심에서 3~5인 선출 중심의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하여 유권자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정치의 다원성을 증진해야 합니다. 관련법을 고치는 것에 덧붙여 선거구획정위원회를 공정성과 개혁성을 담보할 수 있는 참신한 위원들로 구성해야 합니다. 이래야 제대로 된 선거구획정이 가능하고, 진정한 지역정치의 조건이 마련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마룻대와 대들보(동량)를 세울 수 있어야 그들만의 ‘왕좌의 게임’을 다시 쓸 수 있습니다.


진보교육감? 참새와 허수아비

최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어느 자리에서 저출산 ‘상황’에 대한 질문에 답한 내용을 SNS에 올렸습니다. 신혼부부에게는 아파트를 주고 둘째가 생기면 보육/교육료를 전액지원하면 어떻겠냐고 답했다 합니다. 댓글들을 보니 반응이 썩 좋지 않았습니다. 대체로 ‘뭣이 중헌디!’ 하는 의견들이었습니다. 조건부 특혜를 주는 방식보다 모두에게 공정한 혜택이 돌아가는 방식이 맞습니다. ‘온국민기본소득’이 그런 방식들 중 하나입니다.

교육감을 거론한 이유는 지방선거 때에 교육감선거도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컨베이어벨트 공정식 교육의 표본인데, 누구나 대학을 갈 수 있는 교육이 아니라 누구나 대학을 가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야 합니다. 돈 벌기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하여 대학교에서 경영학이니 경제학이니 등을 배우는 동안, 온 가족이 빚더미에 올라앉아야 하는 반경제적인 교육이 오늘날 현실입니다. 동시에 교육현장의 ‘노동’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정교사가 있고, 기간제교사가 있고, 행정공무원이 있고, 비정규직 회계직원이 있고, 다종다양한 무기계약직-비정규직이 종사하는 교육현장은 나쁜 고용노동관계의 압축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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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제에 의한, 소위 진보교육감 다수당선으로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이재정 경기교육감 이후에도 교육노동자, 특히 학교비정규직/교육공무직의 처우는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으며 의지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올해 경기교육청은 “집단교섭에서 하향평준화를 주도하더니 지역교섭까지 무성의로 일관 중”이라 합니다. 카스트제도 못잖은 신분제사회의 압축판인 교육현장을 놔둔 채 진보교육이 정당합니까? 가능하기라도 합니까?

농사철에 참새들이 아무렇잖게 쉬어가는 허수아비는 제 기능을 못하니 무용지물입니다. 추수 끝난 후에 참새들이 쉬어가는 허수아비라면 정이라도 있어 보입니다. 둘 다 못하는 진보교육감이라면 ‘덜 나쁠 것 같은 교육감’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일단 뽑아놓고 속상해하거나 무관심해지는 교육감선거는 그만두어야 합니다. 행정전문가가 아니라 길을 여는 사람이, 교육종사자와 학생 모두 기댈 수 있고 새롭고 급진적인 교육을 선도하는 지팡이노릇을 할 수 있는, 급진적인 선도형 교육감을 찾아야 합니다.

 

다음 문장은 선거제도에도, 교육에도 적용됩니다.

의식은 이론의 관념화가 아니라 현실의 직시에서 출발한다. 의식은 현실 직시에서 출발하지만 현실이 모두 진실은 아니다. 그래서 의식은 사회와 역사를 개별 사건과 개인 차원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하는 힘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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