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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단계 봉지에 담긴 따스함, 김장주간 전야제

오늘따라 마을에 차가 많다. 명절도 아닌데 왜 그런가 싶더니 김장 때문이었다. 이 집 저 집서 김장하는 모습이 언뜻언뜻 비치는 걸 보니. 김장한다고 부모님 댁 찾아든 아들딸 덕에 오랜만에 시끌벅적한 이 집 저 집 소리에 내 맘이 다 므흣하다.

명절 때도 찾아오기 쉽지 않은 고향. ‘그까이거 김장, 김치 좀 사다 먹음 그만인데’하는 마음들 없지 않을 텐데도 농사지어 김장 담그는 부모님 마음 헤아려 먼 길 발걸음 한 그 마음이 참 귀하고 소중하다. (도시에 살았을 때 나라면, 김장하러 부모님 댁 찾아가는 일, 못할 거 같다. 참말로.)

오후 늦은 시간, 나름 창고에서 이거저거 정리하고 있는데 무슨 소리가 들린다. 나가 보니 현관문 앞에 봉지 하나가 보인다. 고개를 휘 저으니 마을 엄니 한 분 뒷모습이 눈에 들어와 냉큼 뒤따랐다. 김장했노라고 김치 맛보라고 가져오셨단다. 사람 없는 줄 알고 문앞에 놓아두셨단다. 에고, 고맙심더. 이 말씀밖에 더 드릴 말씀이 없었다. 조금 지나 부엌에서 뭔 일을 하는데 누가 현관 열고 들어오신다. 엊그제 배추 선물해 주신 아줌니가 검정 비닐을 건네주신다. 역시나 김장 했노라며.

“고생 많으셨을 텐데 받기만 해서 어떡해요. 잘 먹겠습니다!”

“딸내미들이 좀 싱겁다고 그러네. 나중에 김장한 거 안 줘도 돼요~”

귀촌하고 사년 동안 한 번도 안 빼고 김장을 했고, 식구들과 아는 이들한테 택배에 실어 보낸 적 많지만 마을 분들한테는 김치를 드린 적이 없다. 다른 까닭은 없다. 다들 김치가 넘 많으시고, 시골 분들 고급(?) 입맛에 들 자신도 없어서다. 어설픈 산골새댁 김장 김치 건넸다가 오히려 폐가 될까 싶어선. 그런데, 안 줘도 된다는 그 말씀이 진심인 걸 알면서도 이번엔 왠지 드리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구만.

갑자기 생긴 김치 두 봉지에 이 생각, 저 생각 드는 가운데 또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리신다. 이번엔 앞집 할배께서 무시 한 봉지 들고 오셨네. 우리 집도 무시 있는데~. 두고 가신 봉지를 열어 보니 우와~ 무시가 엄청 크네. 울 텃밭 무시 다섯 개 합치면 요 크기가 될라나, 흠.

김장김치에 이어 무시 선물까지 받고 나니 난 대체 이분들께 뭘로 보답해야 하나 머리를 이리저리 굴린다. 아, 울집도 다음 주에 김장을 하니 그때 수육 넉넉히 삶아서 드리면 딱이겠다! 기특한 내 머리, 참 오랜만에 자화자찬을 해 본다~^^

김장 김치가 생기니 어쩔 수 없이 땡기는 막걸리. 흰 봉지, 검정 봉지에 담긴 김치 꺼내고 수육 대신 장 봐둔 삼치 구워 저녁밥상을 차린다. 음~ 김장김치는 역시 갓 만들었을 때 먹어야 제맛! 내가 만든 게 아녀도~~. 매콤상콤아삭한, 남이 준 김장김치에 막걸리 한상 잘 챙겨먹곤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지만 우리 집도 김장 준비를 슬슬 시작해 본다. 김장의 보이지 않는 꽃, 마늘까기부터.

일주일 뒤에 있을 김장 준비한다구 이 일 저 일 손 보다 보니, 자식들 오기 전에 온갖 일 다 해놓으려고 일주일도 훨씬 전부터 손 발 허리 모질게 놀리셨을, 이제는 모든 일 다 끝내고 마음이 후련하실, 마을 엄니들 생각이 난다. 김장이란 게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 기분. 내 앞에 닥친 김장도 정성들여 잘하고 싶은 마음이 막 일어나네. 그랴, 오늘부터 울 마을도 울 집도 김장 주간 지대로 시작인겨~~

김장 주간 덕분에 늦가을 토요일, 토요일 밤 맴이 몹시도 푸근하다.


1단계 김장주간 첫 일감! 마늘생강 까고 다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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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마을분이 주신 김장김치 맛나게 먹었으니 오늘부터 울집도 김장 준비에 들어간다. 이른바 김장주간 첫 일감 시이자악~ 어제부터 까기 시작한 마늘 한 접, 옆지기의 마이다스 손께서 오늘 저녁 먹기 전까지 모조리 마치셨다. 우와~ 대단!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속도!! 무엇보다 그 많은 걸 까고도 손이 아리지 않다는 게 더 신기함.

마늘 까기 트라우마 비슷한 게 있는 난(마늘만 봐도 손이 아리고 쓰린 현상?), 다른 일 핑계 삼아 마늘 까는 데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물론, 다른 일도 만만치는 않은 일, 허나 마늘 까기보단 만만한 일). 대신 오뎅국 맛나게 끓여 저녁밥상을 대령했지이~^^ 저녁 먹고 이어지는 마늘 빻기. 나도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미안해서 안 되겠다. 설거지 마치곤 절구질 몇 번 해준다.

마늘 하는 김에 생강도 같이 빻아야지. 생강껍질만큼은 내가 벗긴다! 마늘까기보담은 덜 힘들고 게다가 양도 그리 많지 않으니깐. 숟가락으로 생강 껍질 벅벅 긁는 일, 요것도 시간 은근 잡아드신다. 싱크대에 서서 하자니 다리도 아프고. 껍질 벗기는 속도가 느리니 기다리다 못한 마이다스 손께서 중간 중간 씻은 만큼 가져다가 또 빻는다.

생강 빻는 건 내가 하고 싶었는데, 요건 마늘처럼 팍팍 튀어 오르는 게 덜하고 푹푹 잘 뭉개져서 절구질하는 손맛이 나거든. 허나, 껍질 없애는 동안 생강을 거진 빻아선 내 몫으로 남은 생강이 없드랬다. 생강 미리 씻어 둘 걸 그랬나? ^^

김장에서 핵심 양념, 마늘과 생강. 김치 속에 들어가면 모습도 보이지 않고 맛도 특별히 느낄 수 없음에도 요 두 가지 준비가 엄청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김장주간 첫 일감으로 마늘과 생강이 간택되는 건 넘나 당연한 일. 김장에 들어가는 온갖 먹을거리들 가운데 부피는 가장 작으면서(젓갈 빼고) 준비 시간은 가장 세게 잡아먹는 마늘과 생강. 시작이 반이라는 말 굳이 들이대지 않아도 요 중요한 둘을 건사했으니 올 김장, 벌써 반은 한 거나 다름없는 듯! 참말 뿌듯한 김장주간 시작이로세~~ *^^*

2단계 쪽파와 지진의 교훈

김장 속에 빠질 수 없는 파. 대파는 파란 잎이 미끈덩하다 하여 다들 대파 대신 쪽파를 많이 쓴다(난 쪽파도 대파도 다 넣는다, 둘 다 비슷이~). 김장 앞두고 미리 해 둘 일 둘째 순위로 쪽파가 꼽혔다. 밭에 있는 걸 뽑고 다듬고 해야 하니 김장 닥쳐서 하기엔 벅찬 일이기에.

시월 초 장날에 모종을 사서 심은 쪽파밭. 그때 두 단에 팔천 원 주고 산 모종은, 말이 모종이지 바로 먹어도 손색없을 모냥새였다. 그럼에도 굳이 심었다. 얼마 안 되지만 김장 바라기 가을 농사를 (무, 배추, 갓) 치르던 가운데, 그만 까먹고(?) 쪽파 심는 걸 놓친 게 못내 아쉬웠기 때문이다. 작정하고 안 심었음 모를까, 까먹고 심지 않은 건 진짜 안타까운 일이었다. 하물며 거둘 거 거의 거둬서 밭도 한참 널럴한데.

곧바로 먹어도 되겠는 쪽파 두 단을 심기 위해 사면서두 쪼끔 고민은 했다. ‘김장 때 쪽파 한 단만 사서 해도 그만일 텐데, 과연 울 텃밭에서 팔천 원치는 되게 쪽파가 나올 수 있을까? 두 단 말고 한 단만 살까? 아냐, 잘될 수도 있으니까, 김장 속으로도 쓰고 쪽파김치도 만들고 쪽파전도 먹고 하게 통 크게 심어 보자!’ 그렇게 사고 심은 쪽파. 잘 자라긴, 개뿔~

파릇 싱싱하던 본디 쪽파대가 시들면서 다시 올라온 쪽파는 아~주 느릿느릿 자랐다. 심을 땐 분명 길~쭉했는데 아무리 지켜보고 기다려도 그만치 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어느새부턴가 반 포기. 울 텃밭에 아니, 게으른 텃밭 농부한테 바랄 걸 바라야지. 그래, 마음 내려놓으마. 심었을 때만큼만, 쪽파 두 단 똑 고 정도만 자라다오. 그대로 있어만 다오.

오늘 쪽파를 뽑으려고 밭과 따악 마주한 순간, 느낌이 왔다. 쪽파 두 단어치는 글렀군. (그럴 자격도 없음서) 서운한 마음 안고 쪽파를 뽑아내는디! 꼬실꼬실 올라오는 무성한 쪽파 뿌리가 내 눈을, 마음을 환히 비춰주는 게 아닌가. 심을 땐 뿌리가 분명 잘잘했는데. 쪽파야, 너두 이 땅에서 뿌리를 내린 게 분명코나. 거름도 물도 한 번 안 내려주는 이 곳에서두 살아가려고, 살아내려구 참말 애썼구나!

그때부터 서운한 듯 쪽파 만지던 손길이 급 다정다감해졌다. 그리고 급 궁금해졌다. 이 투명하게 맑고 흰 뿌리를 먹을 길이 없을까? 요 이쁜 걸 버리긴 너무 아까비~~. 쪽파 죄 뽑곤 인터넷 샘께 바로 물어본다.길이 있다아~~ 차로 먹으시란다. 몸 이곳저곳에 엄청엄청 좋다면서. 세상에나~ 쪽파뿌리로 차를 다 끓이다니! 너무나 새로운 발견(이라기보담 검색)에 가슴이 뛴다. 쪽파 심길 잘했군, 잘했어~^^

김장 (2)

저녁 먹기 전부터 쪽파를 다듬는다. 시든 쪽파대들이 많아서, 그리고 또 심을 때보다 더 작아진(?) 듯한 가는데다 짧기까지 한 것들이 많아서 시간 참 많이 걸린다. 심을 때 샀던 쪽파 모종이었으면 다듬을 것도 없이 후딱 끝났을 텐데. 사서 고생하는 내 팔자가 살짝 안쓰럽고 답답해진다. 그래도 쪽파 뿌리 쌓이는 재미가 그 마음을 밀어낸다. 게다가 얇긴 해도 이 푸릇한 쪽파는 엄연히 이 텃밭에서 새로 움튼 것이니 수확이 주는 기쁨도 실금실금 밀려오고.

쪽파 다듬다 저녁밥상을 차리려는데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 갓 뽑은 쪽파를 데쳐서 먹어 보는 거야! 얼른 몇 가닥 씻고 데치고는 대체 얼마 만에 해보는지 모를 데친 파 둘둘 감기까지 해본다. 이제, 맛을 봐야지. 땅에서 갓 올라온 쪽파에 대한 예의를 차리고저 첫 쪽파는 초고추장 찍지 않고 그냥 먹는다. 어머, 어머머~~~ 넘 맛있어! 쪽파만 먹었는데, 어쩜 이리 새콤달콤하지? 데친 쪽파 더러 먹어봤지만 이런 맛은 처음이야! 새콤한 듯, 달콤한 듯 입에 착착 안기는 이 맛, 손수 기른 쪽파여서 그렇게 맛나게 느껴진 걸까? 그 흔한(?) 쪽파 집어 먹으며 생전 처음 먹는 듯이 맛있다, 맛있다를 연발하는 내가, 좀 웃기기도 하고 잼나기도 하고. 그러면서 또 다짐까지 잘해요. “내년엔 쪽파농사 제대로 해봐야겠어!^^”

쪽파 잘 먹은 기운 살려 남은 것들 싹 다듬고 나니 밤 열 시가 넘는다. 시장에서 샀으면 한 시간쯤 뿌리나 도려내면 끝났을 일이었을 테지. 고런 간단한 일을 하루 일감으로 붙잡고 있던 중에 지진 안내 문자가 왔다. 그 순간부엌에 있던 나는, 싱크대 언저리가 적잖이 흔들거리는 걸 느꼈다. 두렵고 걱정스런 마음을 안고 쪽파를 계속 다듬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수능도 ‘적폐’라는 자연의 경고일지도 몰라. 입시교육 없애고, 아이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라는 하늘의 계시인 것만 같아. 하긴, 밭에서 갓 뽑은 쪽파가 이렇게나 맛있다는 걸 나이 사십 넘어 알게 되는 건 좀 슬프지 않아? 우리 아이들도 어릴 때부터 밭에서 논에서 산에서 들에서 손발 놀리고 뛰놀면서 자라야해. 그래서 쪽파 맛난 것도, 또 다른 온갖 건강한 먹을거리들도 귀하게 맛있다는 걸 느낄 기회를 누려야 해.’

지진도 자연인데, 그러니까 저절로 그러한 건데, 그래도 자연님께 부탁드리고 싶다. 지진이 이제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특히 돈 놓고 돈 먹는 건축 공화국 이 나라는, 사람을 지킬 수 있게 건물을 짓는 곳이 아닌지라, 그리고 그 죄는 지진 따위 상관없이 잘사는 힘 있는 것들한테 있지 지진으로 삶의 뿌리가 흔들리는 힘없는 사람들은 아무 잘못이 없으니 부디 굽어살피소서, 오늘로 지진을 멈추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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