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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 ‘, 지금, 떨고 있니..?’ 유기농 배추님 70여 포기 모셔오기

오늘은 김장의 꽃이자 주인공이신 배추님을 모셔온 날입니다. 벌써부터 김장에서 빼주기로(?) 결정한, 텃밭에 올망졸망 모여 있는 망사배추를 뒤로 하고, 유기농 배추 넘실대는 밭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우리 집에서 한 시간은 걸리는 곳이죠. 그 먼 데까지 왜 가느냐고요? 배추 농사 끝내주게 잘 짓는, 제가 참 좋아하는 유기농 부부한테 배추를 사기로 했거든요.

귀촌하고 이집 배추로 몇 번 김장을 했는데 그때마다 정말 맛있었어요. 다른 집 배추로도 김장을 해봤는데 제 맘에 꽉 차지가 않더라고요. 김장은 양념도 중요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배추가 좋아야 맛있다는 걸 알 수 있었죠. 김장 근처에도 갈 수 없겠는 망사배추 보면서 그리 속 타지 않았던 것두, 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죠. (배추농사를 아주 많이는 짓지 않는 집인데 다행히 우리한테 내줄 여유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달려간다고 했습죠.)

김장 (4)

해살 따스한 오후, 유기농 부부와 함께 밭으로 갔습니다. 오메~ 배추가 엄청 큽니다. 아니지, 본디 이 정도 크기가 맞는 거겠죠. 농사 정성껏 지은 손길 아래서라면. 배추농사 그럭저럭 됐다던 유기농 언니, 배추 크다고 연신 감탄하는 나를 보며 슬그머니 웃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언니도 흐뭇한 게지요.

그러곤 배추 전용 큰 칼로 무지 빠르게 배추 대가리를 쓱쓱 베어 냅니다. 요것두 기술이 필요한 일이죠. 전 아직 잘 못합니다. 하나만 들어도 한 품에 꽉 차는 배추 나르기가 그나마 저한테 어울리는 일이죠. 차 트렁크에 배추를 꼭꼭 밀어 넣고(겉보기엔 승용차 같지만 산골살이에 걸맞은 나름 화물차라서 트렁크가 크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참 뿌듯합니다. 땅과 농사를 제 몸처럼 여기는 진짜배기 유기농 부부의 땀이 서린 싱싱하고 알찬 배추. 밭에서 거두는 일을 같이한 뒤라 그럴까요, 꼭 내가 농사지은 배추인 것 마냥 보람이 넘치고 그러네요.

아이가 어려 쉽사리 마실 다니지 못하는 유기농 부부를 오랜만에 만나서 너무너무 반갑고 기쁜 마음까지 안고 먼 길 달려 집에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배추를 부려 보니, 어마나? 칠십 포기가 넘어 버리네요! 우린 쉰 포기 달라고 했는데요. 배추 건네주는 족족 받아서 옮길 때 주는 쪽도 받는 쪽도 숫자 같은 건 세지 않았어요. 주는 사람은, “차에 배추 넣을 자리 남았어요?” 받는 사람은, “몇 개만 더 뽑으면 충분하겠어요.” 주고받은 말이라곤 이것뿐이었죠.

어디 배추만 많은가요? 당근, 무, 단호박, 사과, 참깨, 그리고 쌀까지 이것저것 싸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랍니다. 배추에 곁가지(?)로 실려 온 요것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다 보니 행복한 웃음이 활짝 피어납니다. 배추님 모시러 갔다가 배추도 한가득,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도 잔뜩 실어 와서푸근한 마음이 뭉실뭉실 일어나네요.

배추 다듬고 절이는 내일부터 진짜, 본격! 김장 시작인데요. 그래서 지금 많이 떨리고요, 걱정도 되고요, 벌써부터 살짝 지치기도 하는데요, 요 푸근하고 행복한 마음이 저절로 비타민 노릇을 해주네요. 잘할 수 있겠다는 용기와 기운이 불끈 솟는 걸 보니깐요. 배추님 모시러 먼길 다녀오길 참말참말 잘한 거 같아요~ *^^*

그나저나 큰일이네요. 유기농 배추 쉰 포기 가져올 걸로 생각해선, 그걸론 좀 모자랄 듯해서 마을 분한테 배추 스무 포기 사기로 했거든요. 칠십 포기쯤 김장할 마음으로요. (그것도 제 깜냥엔 욕심 부린 숫자였어요. 친정 시댁 식구들부터 여기저기 아는 이들까지 넉넉하게 나눠 줄 마음으로요.)

이미 배추는 칠십 포기를 넘어버렸지만 마을 분과 한 약속을 저버릴 수는 없으니까요. 그 밭에는 내일 가서 뽑아오기로 했는데 아마도 몇 포기 더 얹어 주려 하실 거 아녜요? 그거까지 합하면 김장 앞둔 배추가 거의 백 포기 가까이 될 거잖아요? 그거 아세요? ‘칠십 포기’랑 ‘백 포기’라는 글자가, 어감이 얼마나 다른 무게로 다가오는지를… 백 포기까지 할 마음은 정말 아녔는데, 진짜 자신 없는데…ㅜㅠ

실은 그래서 지금 제가 많이 떨려요. 김장 백 포기는 소금에 절이는 일부터가 두 자리 포기 수일 때랑은 차원이 다르거든요. 그래두, 사 년 전에 진짜 무식하게 백 포기 넘게 담아본 경력(?)이 있으니까, (그땐 배추 절이기는 마을 엄니들이 도맡으셨고, 배추 양념과 무치기는 시엄니가 해주셨답니다.) 저를, 그리고 김장 동지 옆지기를 믿고 무엇보다 유기농 배추의 힘을 믿고 신나게, 힘차게 달려볼랍니다. 그러자면 빨리 자기부터 해야겠죠?

김장주간 셋째 날이자, 어마 무시한 대박 일정이 기다리는 김장주간 넷째 날을 앞둔 이야기 여기서 끄읕~ ^^


김장 (9)

4단계 무와 시래기, 깍두기와 동치미 이야기

김장주간 오롯이 마친 지 이틀이 지났다. 아~ 너무 힘들었다. ㅜㅜ 준비부터 본격 김장, 그리고 뒷마무리까지. 엊그제 집안 구석구석, 마당 청소까지 하고서 김장과 얽힌 모든 일을 다 마친 뒤로는 질리고 질린 나머지 지치고 지친 나머지 김장은 생각도 하기가 싫었다. 그렇게 김장과 헤어진 지 이틀이 지나고 나니 슬슬 김장주간을 돌아보고 싶어진다. 올해 첫눈까지 내려 주시니 더욱 그러하네. 그래, 눈님 기운 빌려 김장주간 마무리를 해보자!

먼저 무시 이야기부텀. 지난 금욜, 배추 절이기에 앞서 밭에 난 무시부터 뽑았다. 크기가 참 제각각이다. 가장 큰 것도 마을 할배한테 얻은 것 반 크기나마 되려나. 어떤 것들은 알타리무 크기에도 못 미치고. 겨우내 무국, 무나물 해 먹으려고 단단해 보이는 것들 여나문 게 덜어내곤 다듬고 씻고 하다 보니 아무래도 이걸론 김장속 못 채울 듯하다. 이곳저곳서 얻은 무시를 죄 꺼냈다. 그제사 좀 안심~

무는 작지만 무청만큼은 풍성하다. 마치 시래기 만들기 위해 무를 심은 것 마냥. 당근, 시레기를 만들어야만 하겠지? 헌데 어떻게, 어디다 널지? 일머리 손머리 빠른 옆지기 덕분에 고민은 단박에 해결! 그늘진 천정 밑에 빨랫줄을 만들어서 빨래 널듯 무청 하나하나 널기로~~. 나란히 늘어선 무청 모습이 느무느무 이삐다. 벌써 시래기국, 시래기볶음 잔뜩 먹은 듯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김장 (5)

이제 남은 일은 김장속에 들어갈 무 채썰기. 배추 절여지길 기다리며 채칼에 무를 들이대는데 무가 작아서 시간 꽤나 걸린다. 게다가 백 포기 가까운 배추 양념인지라 양도 많아야 하니 작디작은 무까지 거의~ 채칼로 쓱쓱싹싹. 무 채 써는 데만 네 시간 쫌 더 걸렸나?

덕분에 깍두기랑 동치미 담글 무가 팍 줄었다. 무 자랄 때만 해도 저거면 김장 차고 넘치게 할 줄 알았건만. 이분 저분이 주시는 거 없었음 세상에, 김장속할 무도 모자랄 뻔했지 뭐야. 허참, 내 농사 눈썰미는 꽝~~ 멀었어, 한참 멀었어. 채 썰다 남은 꼬다리 모아 모아서 깍두기 만들고, 채 썰기엔 넘나 작은 무들 남겼다 동치미를 담궜다.

나중에 깍두기 맛을 보는데, 엇! 왜 이리 싱겁지? 나도 참,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깍두기 만들 무 소금 절이는 걸 빼먹은 거다.ㅜㅜ 에효~ 깍두기 조금 해서 다행이지, 많이 했음 큰일 날 뻔했지 뭐야. (싱거운 깍두기여두, 나름 맛은 있드라만.^^) 그나마 동치미는 나름 정식으로 했다. 배추 버무린 뒤 이틀이나 지나서 만들었기에(이 일 저 일 뒷정리하느라 뒤늦게 만듦) 제정신(?)으로 일에 임할 수 있었나. 맛은 아직 보지 못해서 어떨지 모르겠으나. 아~~ 추운 겨울 시원하게 들이킬 동치미 국물 맛, 벌써부터 기대된당~^^

김장에서 배추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무. 무와 김장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이제 배추와 얽힌 김장 이야기를 이어서 해 볼까나~~


5단계 백 포기 넘는 배추와 벌인 사투!

아는 유기농 부부가 기른 배추 칠십여 포기나 마당에 쟁여 놓은 다음 날, 우리 부부는 또 배추 밭으로 향했다. 미리 이야기 된 마을 분 배추를 가지러. 유기농 배추는 아니지만 자식들 먹이려고 정성껏 기른 배추가 참말로 크고 알차다. 스무 포기 사기로 했는디, 밭 쥔 아줌니가 뽑아 주시는 대로 받았더니 서른 포기는 너끈하겠다.

자꾸만 더 주시겠다는 걸 간신히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와선 바로 배추 손질 시작. 옆지기는 배추 가르기, 나는 소금 치기. 처음엔 마당 가득 쌓인 배추를 보면서도 걱정이 안 됐다. 별로 많은 것 같지도 않고. “배추 얼마 안 되네~”

호기롭게 시작한 배추 절이기. 그런데, 그러나아~~ 시간이 갈수록 너무 힘이 든다. 말끔하니 반 토막 난 배추가, 배추가 끊이질 않고 나오는 거다. 배추 건네는 옆지기한테 계속 앓는 소리만 건넨다. “배추 얼마나 더 있어? 배추 왜 이리 많아..ㅜ”

김장 (3)

쌓아둔 배추가 백 포기를 훌쩍 넘는다. 아무래도 너무 많아서 열 포기 넘게 보관하기로 했다. 겨우내 배춧국, 배추쌈, 배추전으로 먹기도 하고 찾아오는 손님들한테 나누어 주기도 하게. 그러니 실제 울집 김장은 약 구십 포기쯤?

배추 절일 통이 모자라 김장비닐까지 꺼내 대략 네 시간쯤 걸려서 어쨌든 저쨌든 배추 절이기는 일단락. 그다음 순서는 배추 씻기. 배추 절이기는 배추를 가르고 소금 칠 때 약간의 기술과 눈썰미가 있어야는디(근디 배추가 많으면 요것두 힘이 꽤 든당.) 배추 씻기는 오로지 힘만 허락하면 된다. 아, 근디 근디 그 힘이 원체도 씨게 드는디 구십 포기 되는 배추인지라 씻는 데만 네 시간쯤 걸리는 이 일이 참말 오지게 심든다. 여지없이 막걸리를 비타민 삼아 배추와 사투를!

김장 (1)

김장 (7)

김장 (11)

간신히 힘을 내어 마무리를 해 놓고 보니… 죽 늘어선 배추 모냥새가 꼭 어느 김장공장 같은 분위기. 내가 욕심을 부리긴 했구나. 부디 헛된 욕심이 아니었길 바라며 쉴 틈도 없이 김장속 만들기로 돌진~ 배추까지 씻었으니 이제 삼분의 이는 온 게야. 나머지 삼분의 일, 김장속 만들어 배추에 버무리는 이야기는 다음 글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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