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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단계 김장 인생 최대의, 있을 수 없는 실수를!

배추가 소금과 만난 지 어느덧 열여섯 시간째가 넘어가고 있다. 김장배추 절이기는 열두 시간 안에 끝내야 맞는데… 어제 낮부터 저녁 여섯 시 너머까지, 백 포기 가까운 배추 가르고 소금 절이기를 마치곤 뿌듯한 맘을 안고 밤 열두 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김장 오 년째 해온 경험으로 그때쯤 배추 뒤집으면 적당하다는 걸 알기에. 김장속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밤 열두 시가 넘었다. 이젠 배추만 뒤집고 푹 자야지~~ 그.런.데.에!!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에~~ㅜㅜ

배추가 조금도 절여지지 않은 것이다. 이맘때면 반 너머 소금물에 잠겨 있어야 하는데 소금이 거의 그대로 살아 있다. 맨 맡에 있는 배추마저도! 왜지? 왤까?? 날이 춥지도 않은데 대체 무슨 일이지? 어, 어? 어엇! 으아아~~~ 나 몰라, 나 몰라, 엉엉엉. 배추 소금 절이기에서 한 과정을 빼먹은 게 그제야 생각이 났으니 이를 어째.

김장 (3)

배추 가른 다음에 소금물에 한번 적셔서 소금 쳐야 하는데, 옆지기가 막 갈라놓은, 물기 하나 없는 배추에다 바로 소금을 뿌린 것이었던 것이었다. 김장 인생 최대의, 있을 수 없는, 있어선 안 되는 실수! 아니, 그 누구도 해낼 수 없는 기상천외한 일!

하~~~~ 새벽 한 시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밀려오던 절망감이란. 배추 절이기는 김장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데, 그게 부실하면 김장맛은 끝난 건데. 이제 어떡하지? 하루 종일 허리 휘게, 눈물 찔끔 나게 힘들었는데 이런 시련까지 와주시다니, 날보고 어쩌라구우.ㅜㅠ

아냐, 정신 차리자. 일 년 동안 귀중하게 먹을 김장을 망칠 순 없어. 순간, 소설 아리랑에서 만난 독립운동가들을 억지로 떠올랐다. 그래, 그네들 앞에 닥쳤던 시련에 견주면 이 정돈 암것도 아니야. 새벽 찬바람 맞으며 생각을 가다듬으니 가장 무식하고 정직한 방법밖에는 없겠다. 배추를 하나하나 꺼내고, 물 뿌려가며 다시 차곡차곡 쌓는 것. 그나마 소금을 아주 많이 쳤던 게 다행이라면 다행…

오늘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배추를 살피니 건듯건듯 저려지긴 했다. 맨 위 배추에는 여전히 소금이 살강거리고 있었지만 이젠 진짜로 뒤집어주긴 해야겠다. 안 그럼 위쪽 배추들 나가리 나게 생겼으니. 덜 절여진 위에 배추를 아래로 보내고, 많이 절여진 밑 배추를 위로 보내는 뒤집기. 모든 배추를 하나하나 옮기는 일이라 이 또한 쉽잖은 일. 큰 통이 모자라 비닐에 절인 건 거꾸로 팍 뒤집어주는 걸로 끝냈다. 배추 싹 뒤집어주고 나니 이제야 마음이 좀 안정된다.

‘시간 앞에 장사 없다고, 배추 지가 때 되면 절여지지 않고 배기겠어? 소금이랑 오래오래 같이 있어서 어쩜 더 맛있을지도 몰라.^^’ 본디대로면 배추 씻느라 정신없어야 할 지금, 갑자기 시간이 생겨서 맘도 갑자기 느긋하다.

하지만 마냥 쉴 수는 없는 일. 어제 못다 준비한 김장속 거리들이 여기저기서 저 봐주십쇼, 하며 기다리고 있으니 말여. 어제 밭에서 캔 갓부터 다듬어야겠다. 틈이 도저히 안 나서 이 일까진 미처 못 했는데 뜻밖에 할 시간 생겨서 좋구마니라. 워낙 쪼깐쪼깐허니 자라서 다듬으려면 시간 좀 걸릴 테니, 다시금 바삐 움직여 보자꾸나. 그러다 보면 배추 씻을 시간이 다가오겠지. 김장 모든 일감 가운데 힘이 가장, 디립따, 대따시 많이 드는 바로 그 일!

양념 버무리기는 오후 두세 시에 시작이나 수 있으려나. 이거 이러다 오늘로 쫑하려던 김장주간 하루 더 늘어나는 거 아닐지이~*^^*


7단계(마지막 이야기~) – “천사 같은 당신들과 아이들 덕분에 해냈어요!”

김장 (6)

구십 포기 너끈한 배추를 씻고 나니 어느덧 오후 네 시가 넘었다. 날이 추워 배추가 얼까 걱정되어 그 많은 걸 집 안으로 낑낑대며 들이곤 물 빠질 동안 김장속을 만들기. 무 채 썬 거에다 쪽파 대파 양파 당근 갓 붓곤 고춧가루, 마늘, 생강, 새우젓, 까나리액젓, 찹쌀풀, 매실액 들을 막 붓는다. 김장속이 많아야 되니 뭐든 많아야 할 것 같아서 양 가늠 할 것도 없이 있는 거 싹 다 넣었다.

대체 무슨 자신감인지, 아님 배추 씻니라 넋이라도 나간 건지 그리 대충 쏟아부음서 맛 같은 건 걱정도 안 된다. 이렇게 고민 없이, 떨림 없이 김장속 간을 맞추기는 또 처음. (하긴 뭐, 맞출래야 맞출 방법이 없긴 하지만. 본디 갖다 댈 아무 기준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김장속을 준비해 놓으니 때맞춰 천사 같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실은 이이들 오기 전 얼추 김장 마쳐놓으려던 계획이었으나 계획이란 게 원래 어그러질 때 더 스릴 있는 법이지이~^^)

수육 삶은 거랑 배춧국이랑 해서 저녁 먹곤 밤 여덟 시부터 김장 버무리기 시작. 김장하러 날아든 천사들은 어른 셋, 아이 둘. 실은 시작할 때만 해도 초등 사학 년, 일 학년 요 어린 아이들이 무슨 일을 할까 싶었다. 김장 놀이쯤 하고 말겠지 싶었는데 이 아이들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건 물론이요, 어른 못지않게 많은 배추를 버무렸다. 우와~ 이 대단하고도 사랑스런 아이들을 보라~ 어디 아이들만 그랬을까. 아이 못지않게 천사 같은 어른들도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배추를 버무렸다. 나는 자꾸만 쉬자고 하는데, 말을 듣지 않는다. 버무린 배추 담기 전담인 나는 몇 번을 쉬었건만.

그리하야아~~ 그 많던 배추 버무리기를, 무려 한 시간 반 만에 끝내고야 말았다.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던 순간.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 우리 부부만 했더라면 아마, 확실히, 새벽까지 하다 지쳐선 다음 날까지 넘겼을 텐데. 정말이지 이 어른들이, 아이들이 없었다면 이 김장 마무리가 끝도 없이 힘들었을 거다. 어쩜 지금까지도 회복 못할 만큼 김장’독’에 빠져 있을 수도 있고. 이번 김장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천사 같은 당신들, 그리고 너희들 덕분입니다! ^^

이제 정말 김장은 끝났다. 백 포기 넘는 배추를 집에 들인다는 것, 그걸로 김장을 꾸린다는 것, 그 김장을 보관한다는 것까지. 그게 얼마나 큰일인지를 느꼈다. 그리고 내가 그걸 감당할 만한 깜냥이 모자라다는 것도.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으로 무리하게 부렸던 김장 욕심, 소중한 사람들 덕에 간신히 마무리는 했지만 짧은 김장주간 동안 너무 많이 지쳐 버렸다. 며칠 동안 김장의 김자도 생각하기 싫을 만큼. 앞으로 김장이든, 농사든, 돈벌이든 그게 무어든, 힘듦이 즐거움을 넘어서지 않을 만큼, 딱 그만큼만 일하면서 살아가고프다는 마음을

더는 욕심 부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이번 김장을 하면서 여러 번 되뇌었다.

농사 못지않게 김장도 갈무리가 중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지. 김장한 거 보관하고 김장하니라 나온 온갖 그릇과 기구들 정리하고 집안 곳곳에 묻어 있는 고춧가루 흔적까지 씻고 치우고 없애고. 이삼일 동안 요 갈무리에 완전 진이 빠지면서.

그래두~~ 다행히~~ 김장이 맛은 그럭저럭 든 듯하다. 배추 버무린 아이들이 맛있다니까(자기들이 한 거라 마냥 맛있다고 느끼는 걸 수도 있는뎅, 해튼.) 맛있을 거라구 믿으면서 이제 슬슬 고마운 이들에게 나눠 줄 궁리를 해 보련다.


*덧붙이기

김장 백 포기쯤 한다는 건, 힘도 엄청 들지만 돈도 엄청 든다. 지금 대충만 떠올려 보면 이번 김장에 팔구십 만원은 족히 든 것 같다. 특히 고춧가루 값이 엄청나게 올라선~. 김장은 힘과 기술만 드는 게 아니라 돈!도 많이 드는 일이라는 걸 이번에 완전 새삼 깨달았다는! 물론, 농사지은 걸로 할 수 있다면 젓갈 종류에나 돈이 들려나.

이번에도 여지없이 무시 빼곤 다~ 사서 했는데, 여지없이 좀 부끄럽다. 난 언제쯤 김장 정도쯤 자급자족할 수 있으려나. 마음은 늘 굴뚝같은데,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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