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머리, 가슴, 발끝으로의 공부라 여기는 한 시민이 가족과 함께 떠난 첫 스페인 여행을 글과 사진으로 담아내렸습니다. 머리, 가슴, 발끝으로 떠나는 스페인 여행기를 2월 한 달동안 이-음에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필자 소개 : 나희성

‘평범함’. 평범한 학생, 평범한 가장, 평범한 회사원으로 47년을 살아오다. 경기도 구리시에 사는 4가족의 가장에게 평범함은 인생의 목표이자 벗어날 수 없는 레일이었다. 2014년, 평범해선 안된다는 것을 깨닫고 노동조합 지회장, 노동대학, 교육시민단체의 문을 두드리며 평범치 않은 삶을 살고자 하는, 아직은 평범한 소시민이다.


Prologue. 우리가 스페인에 온 것은… 

내가 떠나온 곳에선 ‘관광한국’을 외치며 좁은 골목을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화려한 금속 빛의 거리를 만들어 버린다. 켜켜이 쌓여있는 삶의 흔적을 모조리 쓸어버리는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끊어버리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나라. 좁음은 한편으로 ‘서로간의 가까움’이었음을 깨닫지 못하고, 넓고 편함을 위하여 ‘서로 멀어져 버림’을 선택한 나라.


[사진 – 그라나다의 작은 가게]

 

여행은 낯선 땅의 온기를 느끼며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의 삶과 애환 속에 들어가는 것임을 모르는 것일까? 화려한 금속 빛의 나라로 다시 돌아와 버린 나는 잃어버린 삶의 흔적과 이웃의 정이 그리워서인지 지금도 한여름에 걸었던 스페인의 좁은 골목길을 다시 걷고 있다.


#좁은 골목, 그리고 이웃

이번 스페인 여행에서 짧은 기간 동안 제법 많은 곳을 다녔다. 톨레도, 마드리드, 세비야, 코르도바, 그라나다, 바르셀로나,  화려한 중세성당, 스페인광장, 곳곳의 궁전, 가우디의 건축물, 몬세라트의 중장함까지 …..  그 중 가장 인상깊은 곳이 어디였냐고 나와 17년째 같은 침대를 쓰는 분에게 물었다.

     ‘골목이 너무 예쁘다’  

웅장한 건축물과 수려한 경관을 뒤로 한 그녀의 대답은 이것이다.

우리의 눈길과 마음을 머물게 한 곳은 화려한 광장과 넓은 번화가가 아니었다. 좁고 가까운 골목이었다. 화려한 관광지보다 눈길이 더 머무는 곳은 시가지의 야경과 골목.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사진 – 그라나다의 한 골목 풍경]

골목마다 줄지어 서있는 가게들과 조그마한 카페에서 사람들의 수다 소리가 넘쳐나온다. 알함브라 맥주와 상그리에를 입에 떨어넣으며, 옆 테이블의 현지인처럼 우리도 못다한 대화를 나눈다. 겉보기에 멋지고 그럴싸한 풍경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보다 내 영혼이 그 사람들 사이에 안겨 있을 때, 이게 여행의 맛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어렴풋 스쳐간다.

 

차 한 두 대가 겨우 다닐만한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3층, 4층의 건물들이 가느다란 테라스에 조그마한 화분들을 들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스페인의 강렬한 태양을 저 건물을 위해 이 건물이 막아주고 이 건물을 위해 그 옆 건물이 또 막아준다.

서로 도와가며 만들어낸 시원한 그늘 사이로, 화분에 물을 주기 위해 창을 열었다가 우연히 마주친 이웃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할 수 있는 거리, 오늘은 기분이 우울한 지 즐거운 지 서로의 맘을 알아 볼 수 있는 거리, 좁은 거리가 아닌 가까운 거리,  그것이 바로 이웃의 거리가 아닐까?

서로간에 건네는 인사와 덕담, 때론 욕지거리도 이웃간의 정으로 녹아 골목길 아래에 소복이 쌓여서인지 스페인의 골목은 참 예쁘다.

화려한 조명 속에 우뚝 선 유명 관광지와 달리 조그마한 불빛들이 하나하나 모여 펼쳐진 별빛의 바다. 권력의 힘으로 화려한 등불 위에 높이 올려진 위대한 건축물보다는, 수천년 반딧불이처럼 버터낸 민중의 삶을 담은 “등잔불들의 모임”이 더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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