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겨울, 유라시아 횡단기>를 연재하고 있는 이용규님의 단편 소설 「레시피 」를 上, 下 편으로 나누어 게재합니다. 초여름에서 겨울까지, 엄마를 떠나보내는 시간을 담담하고 따스한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입니다. 엄마의 삶은 소담하지만 맛있고, 비슷한 듯 하지만 저마다 다른 내용을 품고 있는 레시피처럼 그렇게 ‘나’에게 아로새겨집니다. 천천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편집자주-
▶ 레시피 下 : http://2-um.kr/archives/5078

 


 

열 시 이십 분 예약이었다. 대기실에 사람이 바글거렸다. 소화기내과는 소아과와 같은 층을 썼다. 뜀박질을 하거나 떠드는 아이들이 있었고, 부모들은 주의를 줬다. 드물게 조용한 어린애들은 사탕을 물거나 인형을 안았거나 아니면 손바닥보다 큰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시끄러운 가운데서도 치마가 돌아간 채 조는 여자아이도 있었다. 병원 냄새를 지우는 나른한 오전이었다. 아직 사복을 입은 어른 환자들이 의자를 빼곡히 채우고 그것을 지켜봤다. 대기자가 꽉 차서 예약시간이 밀릴 듯 했다. 의외로 간호사는 우리를 정시에 들여보냈다.

일주일에 하루씩 한 달에 네 번을 쉬는 엄마였다. 어릴 때는 분명 주부이기만 했던 그녀는 언젠가부터 당연한 일처럼 식당에 나갔다. 월급을 받다 그만두면 얼마간 파출부 소개소에 회비를 내고 ‘일당’을 뛰기도 했다. 올해로 쉰여덟인 엄마는 어느 가게에서든 큰언니였다. 덕분에 작은 가게에서는 조리실장이라고 불렸지만 보통은 찬모였다. 열 시부터 열 시까지 일하는 것이 주방의 일과였고, 그 시간만큼을 서 있는 직업이었다. 때문에 늘 부어있던 다리의 통증을 막연히 하지정맥류라고 여겼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엄마는 밤마다 종아리를 주물러달라고 했다. 그러다 걸어 다니기도 힘에 부치던 며칠, 미루고 미루다 대학병원에 갔다. 엑스레이만 찍으면 된다더니 정형외과 의사는 별안간 소화기내과 진료를 권했다. CT 촬영을 했고, MRI를 찍었고, 몇 번 씩이나 피를 뽑았다. 이상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모두 당뇨를 앓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당뇨 합병증이라도 왔나보다 했다. 순진한 생각이었다.

진료가 아니라 진단이었다. 의사는 굳이 입원을 권하지 않았다. 외래진료실을 나선 건 열 시 이십오 분이었다. 엄마는 말이 없었다.

 

나는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여름날의 햇살이 아프게 따가웠다. 하지(夏至) 무렵 태양이 천천히 남중(南中)하는 시각이었다. 우리는 신촌 로터리로 돌아가는 길 내내 그것을 고스란히 맞았다.

 


 

2.

 

집에서도 엄마는 말이 없었다.

 

나는 저녁에 있었던 약속을 조용히 취소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유월 셋째 주였고, 그러므로 엄마가 이번 달에는 세 번째 쉬는 날이었다. 첫째 주에도 둘째 주에도 그랬던 것처럼 저녁을 지어 먹었다. 엄마는 텔레비전 앞으로 동그란 밥상을 들고 왔다. 우리 가족은 내가 여섯 살 때 쯤 남원에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사온 목제였다. 밥술을 뜨기 전에 엄마는 미지근한 물을 마셨고, 나는 밥을 먹는 내내 찬물을 켰다. 늦은 저녁에 볼만한 것은 뉴스뿐이었다. 대한민국의 오늘은 평온했다. 그렇게까지- 큰일은 없었던 것이다.

 

닭도리탕이었다. 뻘건 국물은 달짝지근했고 덜 다져진 마늘이 한두 번 씹혔다. 감자는 뜨겁지만 그만큼 포슬포슬해서 흰 밥에 뭉개 비벼 먹을 수 있었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로 썰린 파가 부드럽게 익어 있었고, 그게 단맛을 더했다. 닭고기의 껍데기는 이미 다 발라져서 없었다. 무어든 대충 먹이는 법이 없던 엄마였다. 돼지고기에서는 비계를 손질했고, 닭을 사면 껍질을 벗겼다. 소고기는… 쉽게 사먹을 형편은 아니었다. 어쨌든 내가 좋아했던 예의 그 닭도리탕이었다. 당연하지만 너무 어이없게도, 맛있다는 생각을, 했다.

 

밥그릇을 다 비웠다. 입맛이 없어지거나 밥을 먹다가 눈물이 나는 일은 없었다. 밥상을 통째로 들어 부엌으로 옮겼다. 설거지는 엄마의 몫이었다. 엄마는 텔레비전을 보다 거실 소파에서 잠들었다. 잠을 설친 나는 조정화면이 나오는 텔레비전을 껐다. 누가 CCTV로 우리 집을 훔쳐본다면 어제와, 아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십 년 동안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을 풍경이었다. 보통의 폐쇄회로 카메라는 녹음 기능을 탑재하지 않는다.

 

다음날은 토요일이었다. 주말의 볕도 부셨고, 매미가 울었다. 그런 계절이었다. 나는 늦잠을 잤고, 엄마는 출근하지 않았다. 육 개월에서 하루를 뺀 시간이 우리에게 남아있었다.

 


 

3.

 

엄마는 느지막이 일어난 나를 가만히 보더니 입을 열었다.

 

“오늘 어디 가니?”

“아니.”

“엄마랑 장 좀 보자.”

 

마트에 갔다. 엄마는 축 처진 꽃무늬 장바구니를 오른팔에 걸쳤다. 그 안에 천 쪼가리로 만든 네모난 주머니를 넣었다. 똑같은 꽃무늬였다. 도무지 지갑처럼 생기진 않았지만 그 주머니 안엔 현금도 있고 카드도 있고 그저께 산 즉석복권도 있었다. 그 복권을 긁었을 백 원짜리 동전이 있었다. 그걸로 쇼핑카트를 뽑았다.

 

뭘 사려고,

 

라고 물었다. 반찬은 있었다. 엄마는, 그냥 뭐 이것저것… 하더니 숙주나물이며 두부며 고기며 부침가루, 뉴슈가, 오이, 고춧가루, 참기름, 흑설탕, 선동오징어, 그 밖에 엄청나게 많은 식재료를 담았다. 개중에는 집에서 쓰던 것이 한참 남아있는 것도 있었다. 카트를 밀고 돌아다니다 눈에 띄면 넣는 듯 했다. 그녀는 원래 이렇게 장을 보는 여인이 아니었다.

계산을 하고 나니 짐이 장바구니 하나 하고도 세 상자를 꽉 채웠다. 올 때는 버스를 탔지만 이걸 들고 가려니 택시를 잡아야 했다. 집에 도착해서 엄마는 상자를 풀기 무섭게 냉장고며 찬장을 채웠다. 그러더니 냄비에 물을 받기 시작했다. 점심도 이른 열한 시였다. 그리고는,

 

“이리 와 봐.”

 

하더니 싱크대 앞으로 갔다. 어느새 콩나물 한 봉지가 다 씻겨 있었다.

 

“원래는 콩나물을 다듬어야 되는데, 요새는 처음부터 잘 나와. 그러니까 찬물에 씻기만 해.”

 

엄마는 그걸 한 움큼 집어 냄비에 넣었다. 물이 조금씩 끓었다.

 

“콩나물 삶을 땐 숨이 죽어도 완전히 익을 때까지는 뚜껑을 열으면 안 돼. 비린내가 난단 말이야. 아니면 처음부터 냄비뚜껑을 열고 삶던지. 아니면 네가 실수로 익기 전에 열어버렸으면 소금을 조금 쳐야 해. 한 오륙 분 끓이면 되는데, 너무 아삭아삭한 거 같으면 좀 더 오래 놔둬야 되고.”

 

콩나물 삶는 법을 시작으로, 엄마는 나에게 콩나물로 국을 끓이는 법이며 무침을 하는 법 따위를 모두 알려주어야겠다고 했다. 이 집에서는 그녀밖에 모르는 것들이었다. 이내 엄마는 싱크대 밑에 쪼그리고 앉아 바가지를 꺼냈다. 그리고는 콩나물을 무치기 시작했다. 나는 한참을 보고만 있었다. 엄마가 손을 오므리고 들기름을 조금 부어보라고 하거나 찬장에서 고춧가루를 찾으라고 할 때만 손발을 움직였다.

 

“아나. 간이 맞어?”

 

간은 적당했다. 맛있었다.

 

“알겠지? 어디 적어줘? 종이 가지고 와 봐. …소금, 참기름 조금, 고춧가루는 곱게 갈은 걸 조금만 넣고, 간 마늘, 파도 좀 썰어 넣으면 좋고, 통깨도 살살 뿌려. 그 다음에… 적으면서 보라니깐.”

 

그 날부터 엄마는 나에게 요리를 가르쳤다.

 

“인제 앞으로는 네가 살림을 해야지.”

 

말하자면 인수인계였다. 물론 나도 엄마와 단 둘이 산 것이 벌써 십 년이 됐다. 세탁기 돌리는 법은 대충 알고 있었다. 빨랫감을 넣을 때 점퍼는 지퍼를 닫고, 남방은 단추 하나를 잠가야 하는 줄도 안다. 그릇의 ‘이빨’이 나가지 않을 만큼 부드럽게 설거지를 할 요령도 있다. 그럭저럭 진공청소기를 돌려왔고 바닥에 걸레질도 해 봤다. 하지만 먹을 것만은 아니었다. 항상 밥상을 받기만 했었던 것이다.

 

“그런 소리 하지 마 엄마.”

“며느리라도 데려올 거냐?”

 

엄마는 내가 시간이 날 때마다 나를 가르쳤다. 정확히는 내가 시간이 날 때를 기다렸다. 나는 모든 약속을 취소하지는 않았다. 나는, 마찬가지로, 내가 시간이 날 때마다 재료 목록을 받아 적거나 채소 고르는 요령을 익혔고, 이따금 다리를 주물러 드렸다. 엄마에게 나는 전부였다. 엄마는 당신의 시간을 내게 모두 쓰고자 했다. 그것을 똑같이 돌려드릴 수 있을 때까지는 조금의 시간이 필요했다. 나에게 엄마는 큰 일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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