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용도실에 보관해둔 감자에 싹이 아주 잔뜩 올랐다. 딱히 놀라거나 속상한 일은 아니다. 저온저장고 없는 울집, 해마다 겪고 보는 일이니까. 다만, 쭈글쭈글한 감자를 보니 아쉽긴 하다. 탱글할 때 더 열심히 먹었음 좋았을걸. 이 겨울, 나는 감자를 왜 더 많이 먹지 못했을까.

아쉬움 뒤로 하고 감자 싹을 모조리 뗀다. 더 놔두었다간 쭈글한 감자 몸통마저 아예 사그라질까 싶어서.
무덤덤하게 시작한 감자 싹 떼어내기. 그러다 어느 순간 맴이 찌릿해지더니 눈물마저 핑 돈다. 저 작은 감자알보다 열 배도 훨씬 더 길고 크게 길쭉이 뻗어나온 싹, 그 애튼한 싹에 맺힌 동글동글한 감자 알을 본다. 물도 없고 암 것도 영양분이랄 게 없는 메마른 상자 안에서, 제 몸을 땅 삼아 싹을 내고 열매를 맺은  이 작은 감자들의 질기고 질긴 생명력!
감자야, 너희들은 대체 무엇이기에 이토록 진하게, 끈덕지게 생명을, 삶을 이어가고자 하느냐..
쪼글쪼글하고 작디작은 감자들을 매만지며 자꾸만 물어본다. 묻고 또 물어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감자처럼, 감자같이 살아보고 싶다고. 감자처럼 사는 게  감자같이 사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겠으면서도…
감자 작은 것 한 상자, 그리고 감자 아주 작은 것 한 상자. 지난해 텃밭에서 거둔 이 감자를 어찌할까. 먼저 작은 감자. 올 봄, 씨감자로 써볼 마음을 먹었다. 쭈글하고 작고. 잘 자라줄지 자신은 없지만, 한번 해보려고.
그리구 아주 작은 감자. 요건 씨감자로 쓰기엔,  뭘 모르는 내가 봐도 자격미달이라 어떡하든 먹어야 할 테지. 워낙 작아서 껍질 까는 것조차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뭘 해 먹을지 바로 답이 안 나온다.
양이 꽤 돼서 한꺼번에 싹쓸이식 요리를 하긴 해얄 것 같다. 더 놔두면 아예 짜부라들 것만 같으니. 카레?, 감자전? 아님 감자 옹심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감자 옹심이에 은근 마음이 가네.
뭐가 됐든, 난 요 작디작은 알감자들을 꼭 먹고야 말겠어. 그렇게라도 감자가 지닌 생명력을 몸에, 마음에 고이 담아두고만 싶어. 혹여나 손질하기 번거롭다고 외면해버리면 여기까지 애써 살아낸 감자들한테  너무 미안할 것 같아

2018년 3월 6일 12시 28분.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경칩이라는데, 개구리가 겨울잠 깨어 울어대는 날이라는데. 아까부터 개구리 만나러 마당으로 나가고 또 나가는데 개구리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대신 내가 운다. 아니, 아까부터 운다. 뉴스룸에 나온 김지은씨를 봤을 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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