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돌을 하나하나 쌓아 만든 기둥인데, 마치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있는 살아 있는 나무, 숨쉬는 숲인 듯한 느낌… 도대체 이곳에 무슨 비밀이 있는 것일까?

 

 

스페인을 떠나기 하루 전, 우리 일행은 지중해의 아름다운 도시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독립을 외치는 대규모 시위를 하루 앞 둔 상태였지만, 우리에겐 그저 평온한 이 곳.  성가족 성당을 가기 전, 가우디의 역작 중 하나라는 구엘공원에 들어섰다.

가이드의 안내로 후문으로 들어선 일행을 줄지어 선 돌기둥들이 내려보고 있다.

윗쪽 구조물(도로)을 떠받치는 교각이고, 아래쪽 산책로를 이루는 기둥인 듯 한데 자기들이 진짜 야자수 나무인 줄 아는 듯 공원 중심을 떡하니 자리잡고 자라고 있다.

공사장에서 나온 돌을 차곡차곡 쌓아 만든 이러한 조합이 서로를 의지하며 구조물을 지탱하는 과학적 역학.


[가우디 습작: 출처 ‘가우디 1928’]

마치 바닷가 파도 속을 지나고 있는 듯한 착각까지 안겨주는 안토니오 가우디는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곳이 본래 전원주택단지를 만들다가 자금난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는 것. 사업가 에우세비 구엘이 의뢰하여 그의 절친 안토니오 가우디가 시작한 공사는 산책로, 수위실, 광장 등 기반시설만 완성된 상태에서 자금난으로 중단되었다고…

중단된 공사현장은 흉물스럽기 마련인데 가우디의 손을 거친 이 곳이 그마저도 아름다운 공원으로 남겨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여행에 가 보지 못한 가우디의 또 다른 미완성 역작, 콜로니아 구엘(구엘공단지구)의 구엘성당 지하제실

지상부의 성당건물은 아예 손도 못댄 상태로 공사가 중단되었음에도 지하제실을 보기 위한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는 곳. 수 억년 동안 신이 물과 바람으로 한 땀 한 땀 만들어 놓은 동굴을 가우디란 천재가 그대로 옮겨와 더 아름답게 꾸민 듯 하다.

공사 중 살아 있는 나무를 해치지 않기 위해 지상으로 이어지는 계단의 설계를 변경했다는 가우디.

건물을 짓기 전 설계할 때 그 주변 자연환경과의 조화를 먼저 생각했다는 가우디.

인간의 편리함을 강조하는 직선이 아닌 자연 속 생명의 형태인 곡선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을 고집한 가우디.


[카사 밀라의 전경]

당시에는 공사중단으로 투자자에게 손실을 끼친 ‘실패한 프로젝트’라고 비난받았음에 틀림없었던 이 구엘공원은 살아있는 건축물을 위해 어떤 살아있는 생명도 희생할 수 없다는 외고집과 벽돌 하나에도 생명의 혼을 불어넣은 가우디로 인해 바르셀로나 시민과 함께 살고, 함께 호흡하는 공원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이런 가우디의 신념의 손길로 만들어진 건축물은 미완성으로 중단된 것 같으나,

돌 하나 하나 쌓아올려질 때마다 버무려진, 생명에 대한 사랑으로 이미 완성되어 버린 것이다.

직선으로 나누는 인간의 단순함과 매정함,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강조하는 실용적인 경제원리를 앞세우며 인간의 안락함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데 어떤 죄의식도 없는 우리사회가 왜 비인간적이 되고 흉포화되는 지…. 가우디는 구엘공원을 통해 알려준다.

무생물에 생명을 부여하는 것은 신만이 할 수 있다. 그러나 조그만 돌덩이가 생명이 되버린 구엘 공원에서 가우디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생명을 만들고, 그것을 사랑하는 신을 조금이라도 닮으려 모든 인간이 노력한다면, 이 세상은 살만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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