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나고 처음으로 빨래를 해님께 맡겼다. 그동안은 날이 추워 집 안에서 말렸는데, 그러다 다 마른 빨래를 시린 겨울 햇볕에 잠시나마 맡기고 들여놓곤 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해가 쨍쨍,  하늘은 푹 뛰어들고 싶을 만큼 맑고 푸르다. 바로 널어도 잘 마르겠지 싶어 세탁기에서 건진 빨래들을 마당에 너는데 감개가 무량하다. 정말, 봄이, 오는구나…

한동안 눈길 한번 제대로 닿지 않았던 텃밭에 절로 발길이 쏠린다. 저 앞에 푸른빛이 살랑거린다.  시금치다. 지난해 가을에 씨로 심은 시금치가 추운 겨울 딛고 싹을 틔웠고나. 아이, 이뻐라, 기특해라~~ ^^
텃밭 저 끝에 마늘 싹, 양파 싹도 보인다. 겨우내 많이 힘들었는지  작고 가늘게 솟아있는 요 싹들. 다른 집 마늘밭, 양파밭은멀리서 봐도 푸릇푸릇하던데 울집은 가까이 가야만 싹이 보인다. 것두 간신히. 비닐도 씌우지 않고, 왕겨도 조금만 덮어서 그런 걸까. 하지만 난 마늘과 양파를 믿어. 지금은 저리 힘없이 보여도 곧, 금세파릇하게 자라날 거야.

자, 어디 또 뭐 없을까. 온통 흙빛투성이 텃밭.  푸른 때깔을 찾아 이리 저리 휘젓고 다니니, 마침내 보인다.  아,기다리고 고, 기다리던 우리 봄냉이님들! 아흐흑,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웠는지… 땅에 바짝 붙어 있는 냉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막 설렌다.
아직은 많이 작은 냉이들, 조금 지나면 그 향긋한 내음을 입으로 몸으로 마음으로 만날 수 있겠지. 가장 먼저 냉이국수부터 해 먹을 거야, 지난해 나를 황홀경에 빠뜨렸던 바로 그 냉이국수를! 냉이 캘 그날을 손꼽으며, 텃밭을 살살 걸어나온다. 곧 있음, 요 밭 곳곳을 뻔질나게 드나들게 되겠지. 오랜만에 김매기하려면 분명 힘들 텐데, 왜 이렇게 호미 쥘 그날이 기다려질까?^^

아, 빨래들이 참 잘도 마른다. 촉촉하고 끈적했던 내 마음도 뽀송뽀송해진다. 오랜만에 해님 만난 빨래들도 기분 좋아하는 것만 같구. 그나저나, 빨래 말리기는커녕 이제야 빨래감 찾기 시작한 우리 사는 세상. 얼른 얼른 더러운 빨래거리 죄 골라내서 다같이, 힘 모아 깨끗이 빨아내야지. 함께 웃고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그날까지

< 저 혼자 알아서 피어난, 냉이한테 고맙다 >
냉이를 캤다. 정식으로, 호미 쥐고. 참 고맙게도 곧 감자 심을 밭에 냉이가 가득하다. 냉이를 캐면, 감자밭 김매기가 절로 되나니. 작디작은 냉이들. 땅바닥에 바싹 붙어 있어 멀찍이 보면 흙만 있는 듯한데 가까이 가면 푸릇하고도 보랏빛스러운 냉이잎이 한가득 보인다.
새봄 첫 호미질. 괜스레 설렌다. 바람도 햇볕도 무지무지 따수워 호미질 몇 번에 살짝 땀이 비치려하네. 냉이를 캐다가 흙 묻은 뿌리에 코를 댄다. 얼마나 기다리던 내음인지.  문득 뭉클해지는 마음. 지난해 봄에도 이 냉이를 보며 그리 좋아했는데 올해도,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꼭 그때처럼 냉이 내음에 실린 행복에 젖고 있구나. 지난 일 년을 어찌어찌 살아내고 다시금 봄을 맞이하고 있구나. 냉이를 오롯이 사랑하는 내 마음, 일 년 전과 하나도 바뀌지 않은 이 마음이 오롯이 살아 있음에, 고마움이 밀려온다.  그 마음 되살려 낼 수 있게 이 봄, 저 혼자 알아서 피어나준 냉이한테. 냉이 씨앗을 겨우내 품어준 흙한테.
냉이 캐는 이 순간이 참 좋다. 냉이 캐서 바로 먹을 수 있는 이 삶터가 참 좋다.
감상은 이제 그만. 냉잇국 끓일만치만 캐고 첫 호미질 마무리. 이젠 씻어야 하는데, 워낙 작은지라 캐면서 따라붙은 검불들이 많아 손이 좀 간다.  마당 수돗가에서 냉이를 씻는데 찬물이 두려워 고무장갑 끼고 하다가 나중에 그냥 맨손으로. 그래도 손이 안 시리다. 아, 정말 봄이 좋긴 좋구나 마당에서 나물도 씻을 수 있고~^^ 잘 씻어 건진 냉이에 코를 킁킁 댄다. 이 향긋하고 알싸한 내음, 역시 좋아, 무지무지 좋아!
이젠 냉잇국을 끓여야지. 멸치다시물에 된장 풀고 두부 조금 넣고 마지막으로 냉이를 풍덩~
끓는 냄새부터 맘 설레게하는 냉이된장국. 슴슴하게 그윽~하다. 냉이가 작아서 그런지 향이 많이 진하지는 않다. 그래도 좋기만 하다.  야들야들 씹히는 냉이잎도, 뿌리도. 다시 한번 냉이한테 고맙다. 이런 멋진 맛, 새봄을 맞아 어김없이 안겨주어서.
 
어느덧 감자 심을 때가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감자가 터 잡을 자리엔 냉이 무리가 가득하다. 오늘부터 시작이다. 냉이도 캐고 감자밭도 매는 일석이조 봄 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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