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수한 민들레커피, 민들레의 투혼으로 캐고, 만들고 마시고~

비 그치고 나서 바로 하면 좋은 일은? 바로 민들레 캐기!

아직 축축한 흙, 다른 밭일은 하고파도 젖은 흙이 가로막지만 민들레만큼은 이때가 캐기에 딱 좋다. 왜냐! 빗물 덕에 땅이 조금 물렁해져서 땅속 깊숙이 박힌 뿌리를 마른 땅일 때보다 그나마 쉽게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선 텃밭보단 자갈마당에 민들레가 더 많다.  비 그치고 해님 내리쬐니 잔뜩 오무렸던 민들레꽃이 활짝 피어나 마당이 온통 노란 물결이다.

“오메, 이뻐라. 저 이쁜 것들을 어쩌면 좋아~”

어쩌긴 뭘 어쩌나, 뽑아야지. 밭에 난 것도 뽑는데 마당에 난 건 더 말해 뭐하겠나. 동네 사람들, 우리 마당 들어섰다간 엄청 혀 끌끌 찰 듯. 저 많은 민들레 한 번에 다 캘 수도 없거니와 그럴 필요도 없다.
아직 작은 민들레는 잎으로 샐러드도 하고 고기 쌈으로도 먹으면 되니 고이 둔다. 그 이쁜 꽃 더 보고도 싶고.

잎이 바짝 시든 민들레만 캔다. 어차피 억세서 잎을 먹기도 어렵고, 나이 든(?) 민들레가 뿌리도 굵고 실하니까. 옆지기가 약초 호미로 민들레를 캐내면 난 옆에서 뿌리를 잘라낸다. 잎은 거름으로~ 오늘 캐는 민들레는 뿌리가 목적이니까! 작고 가는 뿌리부터 삼 년 묵은 도라지처럼 굵고 길쭉한 거까지 뿌리 모양이 가지각색이다. 뿌리에서 나는 내음은 구수하게 비릿하다. 쌉쌀함이 바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나, 나는 이미 알고 있지. 이 뿌리가 얼매나 쓰디쓴지.

그렇게 한 시간쯤 캐고 다듬은 민들레 뿌리를 물에 담그곤, 칫솔까지 쓰면서 박박 문지른다. 도라지 씻을 때처럼 꽤 잔손 가는 일이다. 깨끗이 씻은 민들레 뿌리는 바로 말리기 시작. 여러 날 잘 마르면, 그때 잘게 썰고 볶고 해서 민들레커피를 만든다.

비 갠 오전, 민들레 일을 마치고, 민들레커피를 마신다.우리에겐 미리 만들어 둔 재료가 있나니! 민들레 뿌리를 말리고 볶아 둔 걸 믹서에 간다. 울퉁불퉁 딱딱한 뿌리들이라 아주 곱게 갈아지지는 않지만 괜찮다. 물에 타지 않고 커피처럼 걸러 마실 거니깐.

원두 커피 내리던 기구 고대로 써서 민들레 가루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꼭 모래에 소금 거품이 이는 때깔 비슷하게 모래 빛깔 비슷한 가루에 보글보글 거품이 일면서 뿌리 볶을 때 코를 간질이던 구수한 향내가 은은하게 퍼진다.

자, 이제 맛을 볼까? 구수하게 넘어가는 듯하더니 뒷맛이 쓰다! 막 쓴 건 아녀도 적당히는 쓰다. 그럼에도 코로 입으로 스미는 은은한 향이 좋아서 한잔 마시는 것쯤 가뿐하니 좋다.

그나저나 고민일세. 민들레 커피를 다른 사람들도 맛보게 하고픈데. 쓴나물에 얼추 길든 내 입에 쓰면 다른 이들은 더 쓰게 느낄 텐데. 요 쓴 뒷맛을 잡을 길이 없을까? 설탕은 조금만 넣어도 단맛이 도드라질 거 같고 해서~ 맥심 알커피를 넣어 봤다. 낯익은 커피 맛이 추가되었을 뿐 쓴맛 잡아내기는 어렵네. 방법이 없을까?

그나저나 또 고민일세! 어제부로 딱! 원두가 떨어져서 당분간 민들레커피로 원두커피 대신해 볼 마음이었는데. 카페인 중독자라 그런지  카페인 없는 민들레커피 두 잔이나 먹고도 커피 생각이 떠나질 않네. 게다가 입도 쓰고 하니 믹스 커피가 다 생각나. 에이, 모르겠다. 잘 꺼내지 않는 믹스 봉지 털어넣고 따땃하게 한 모금 들이키니 어머, 이거 월케 맛있니? 다른 땐 좀 느끼했는데, 민들레커피 후유증인감? 그래도 민들레커피를 포기할 수 없음이야! 어차피 원두도 없고, 하루 석 잔은 먹는 커피 맥심 알로만 타 먹으면 좀 단조롭잖아.믹스커피는 되도록 멀리 하는 게 좋고.

어디 그뿐인가! 민들레 뿌리가 어찌나 몸에 좋다는지. 간에 위에 호흡기에 고혈압에 당뇨에 나아가 흰머리 검게 만들어주기까지 한다는데 곧 잡초 신세로 뿌리뽑힐 민들레 뿌리들 어떡하든 먹어 주어야만 하겠음!

최초로 이 나라에 서양 커피가 들어왔을 때 그때도 사람들한테 검정 물이 엄청 썼을 테지. 낯선 먹을거리라서 더 그랬을 거야. 민들레커피도 마찬가지일지 몰라. 낯설고 길들지 않아서 쓰게 다가오지만
날마다 가까이하면 그 맛에 어느새 푹 젖어들 수도 있을 거야. 쓴나물 하나도 모르던 내가 어느덧 쓴나물 사랑하는 사람이 된 것처럼. 그래,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민들레커피를 계속 만나도록 하겠어.

혹시 알아? 써도 참고 먹고 마시고 하다 보면, 수천수백의 꽃씨가 되어 해방의 봄을 부르는,  그 ‘민들레의 투혼’을 조금이라도 몸과 마음에 새길 수 있을는지.

올봄 처음으로 민들레 노동도 했겠다, 시린 사윌을 노래하듯 눈비도 세차게 내리겠다, 박그네 씨 살인보다 강한 처벌도 받았겠다, 민들레랑 어울리는 노래 한자락 해야 쓰겄는데. 민들레가 나오는 고운 노래 참 많고 많은디, 역시나 나는 민들레 하면 이 노래가 최고야. 민들레 캘 때도, 민들레커피 마실 때도 어김없이 떠오르는 이 노래.

“아아 민들레 뜨거운 가슴
수천 수백의 꽃씨가 되어
아아 해방의 봄을 부른다
민들레의 투.혼.으.로.~♬”

비처럼 내리던 눈이
그새 오롯한 눈으로 바뀌었다.

삼월의 눈은 참 따스했는데
사월의 눈은 참 시릿하구나.

눈물로 얼룩진 시린 사월을
검은 하늘도 잊지 않았는지.


#2. 뱀발나물과의 아쉬운(?) 첫 만남!

지난해부터 꼭 한번 해 보고 싶던 뱀밥나물. 드디어 해봤다! 소가 잘 뜯어먹는다는 ‘쇠뜨기’. 그 쇠뜨기의 어린 줄기를 ‘뱀밥’이라 한단다. 쇠뜨기 나는 곳에 뱀이 나온다고 해서 (마치 뱀딸기처럼) 뱀밥이라는 이름이 붙었나 보다.

쇠뜨기=잡초 대마왕. 지난해는 쇠뜨기 뿌리 뽑는 데 치여서 뱀밥 요리할 엄두를 못 냈는데 오늘은, 아주 쪼금만 엄두를 내 보기로 했다. 어린 뱀밥 줄기 스무 개 좀 넘게 꺾고, 줄기 사이 사이에 치맛자락처럼 보이는 껍질을 벗기고. 요기까진 같이 사는 남자가 하셨음. 고다음, 씻고 데치고 볶는 일은 내 몫으로.

뱀밥을 보고 또 보면서도 이거 먹는 나물 맞나, 의심스럽다. 물론 먹는 음식 백 퍼센트 맞다는 걸 확인은 해 두었지. 버섯처럼도 보이고, 묘한 모양새가 거참, 모르겠다. 막 다가오지가 않아, 왠지. 일본 만화책 <리틀 포레스트>를 열어 뱀밥조림 만드는 법을 보고 또 본 뒤에야 다시금 믿음을 갖고 나물 만들기에 들어간다.

자꾸 보니까 조금씩 정이 붙긴 한다.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치니 희끄무레하던 때깔이 불그스름하게 바뀐다.

자, 다음으로 간장 넣고 살짝만 볶기. 처음이니까, 본맛을 느껴보려고 들기름 참기름 종류 일체 넣지 않았다. 슬슬 볶는데 다시금 의심이 인다. 이거, 정말 먹는 음식 맞을까?

폭 줄어든  뱀밥나물을 작은 접시에 담아 저녁상에 올린다. 맛보기 왠지 겁나서 옆지기한테 먼저 먹어보라고 슬며시 등떠밀었지. 한입 넣더니 별 말이 없다. 나도 한입 넣으니 음, 짜다! 뱀밥은 적은데 간장을 너무 많이 넣었나 봐. 어? 짠 다음에 쓴맛이 난다! 강하진 않지만 쓴 뒷맛이 혀에 남는다. 몇 젓가락 더 집어 들어도 대체 무슨 맛인지 잘 모르겠다. 꼭 고사리처럼 씹는 맛이 쫄깃한 건 알겠는데.

고 작은 접시에 담은 뱀밥나물, 끝내 남고야 말았다. 나물 앞에 사족을 못 쓰는 나인데..ㅜㅜ

저녁 마치고 뱀밥나물에 대해 인터넷 선생님한테 이모저모 확인해 봐도, 맛있는 나물이라는 말이 나온다. 뱀밥으로 밥을 해도 좋다는 이야기도 있고, 고추장, 된장으로 무친다고도 하고. 데친 다음 물에 담가 떫은 맛 우려내라는 말도 있네? 아차차~ 그걸 놓쳤군! 아까 약간 쓰다고 느낀 건 어쩜 떫은 맛일지도 모르겠어.

저녁밥상에서 많이 실망한 나머지 뱀밥나물 다신 안 하려고 했는데 새로운 도전 정신이 싹튼다. 첫인상이 중요하다지만 거기에 너무 얽매이면 안 좋겠지? 곧 있음 텃밭에 쑥보다 더 널리 퍼질 쇠뜨기, 나물반찬으로 다시 또 시도해 봐야겠어. 씹는 맛이 좋았으니까, 쓴맛 떫은 맛을 잡으면 뭔가 특별한 나물이 탄생할 것도 같은 기대감도 슬며시 생기네! 아, 물론 다듬기가 고구마줄거리 이상으로 손이 많이 간다니, 적당히 조금씩만 도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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