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명세서가 그의 임금 내역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어떤 급여명세서는 사회의 성격도 보여준다. 2015년 기준으로 입사 13년 차인 K자동차 생산직 정규직 노동자의 급여명세서를 보자.

명세서에는 통상시급과 구분해 기본시급이 8059원이라고 나온다. 그렇다면 기본급은 주말유급휴일을 적용해 산출한 1개월의 통상 노동시간 209를 곱해 168만원이 정상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적혀 있는 기본급은 193만원이다. 시급 8059원에 209시간이 아니라 240시간을 곱하자 정확히 기본급 193만원이 산출된다.

수당을 살펴보자. 직급수당, 직급제수당, 본인수당, 복지수당, 보전수당, 근속수당, 가족수당, 가족수당(통상), 근무형태변경수당, 심야보전수당, 보건위생수당, 교대수당, 연장근로수당, 심야근로수당, 심야근로수당2, 개수만 15개이다. 임금 총액에서 임금 항목별 비중을 알기 위해서는 월별 지급되지 않는 상여금과 일부 수당을 1개월 평균으로 환산해야 한다. 대략 기본급 42%, 수당 27%, 상여금 31%로 구성되어 있고, 기본급과 상여금과 수당을 합친 변동급여의 비율은 42% : 58%이다. 평균적으로는 이 비율이 4:6 정도라고 한다.

 


 

입사 16년 차에 접어든 2018년에도 임금의 구성 항목은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기본급은 215만원으로 3년 전보다 22만원이 올랐다. 기본시급은 8975원으로 최저임금보다 1445원 높다. 그리고 중요한 점, 기본시급이 여전히 기본급을 240시간으로 나눈 값이다. 그러니까 월 노동시간이 209시간이 아닌 240시간이 표준처럼 되어 있는 것이다. 기본 240시간의 장시간 노동을 전제로 시급을 낮추고, 낮은 시급으로 임금가산율이 적용되는 연장 및 휴일노동수당을 낮추고, 이로써 3인이 할 일을 2인에게 시키는 것이 사용자에게 훨씬 남는 장사라는 것은 간단한 셈법이다.

나아가 기본급과 변동급여의 비율을 나타내는 임금 구성(pay mix)이 4:6이라는 것은 사용자의 간단한 셈법이 그대로 관철되는 힘의 역관계를 보여준다. 이는 대공장 노조가 임금 총액을 올리는 싸움에 매몰되어 임금 구성의 계급적 이해에 둔감했던 결과이기도 하다. 그 결과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높은 변동급여 비중은 두 가지 사회적 사실의 반영이 된다.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으로 수당을 챙기지 못하면 생계가 불안정하다는 것,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공공복지를 사내 복지가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높은 사내 복지는 대기업에 국한되는 얘기이다. 하지만 중견·중소기업도 낮은 기본급을 장시간 노동을 통한 수당으로 보충하는 한, 이러한 임금 구성의 사회적 효과는 사업장 규모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임금 구성을 바꾸는 문제는 공공복지 지출을 늘리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하지만 이번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와 관련해 분명히 드러난 자본과 정부의 속내는 그럴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산입범위 확대를 주도한 인사들이 불합리한 ‘임금체계’를 간간이 들먹이긴 했지만 명분용이었을 뿐이다. 통상임금과 최저임금의 불일치 문제도 두 제도의 목적이 다르고 당장 해결해야 할 사회적 고통이 큰 것도 아니다. 사실 최저임금법 개정이 실제로 일으킬 효과는 현재의 기형적인 임금 구성을 고착화하는 것이다. 산입범위를 확대하지 않았으면 기업은 최저임금 인상에 맞춰 기본급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변동급여 중심의 임금 구성은 사회적 전환을 위한 정치적 동력을 약화시키는 힘으로 작동한다. 저성장 시대의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자동화·정보화의 일자리 잠식 효과를 훨씬 상회하는 큰 폭의 노동시간 단축과 이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임금의 손실은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과 대대적인 공적 이전지출이라는 정책 조합으로 풀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최저임금법 개정에서 분명히 드러났듯이 이러한 정책을 자본이 수용하거나 정부가 주도할 리 만무하다.

그런데 변동급여 비중이 높은 현재의 임금 구성은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대기업 생산직 노동자들의 동의를 주저하게 만든다. 저임금 노동자들에겐 배부른 소리로 치부된다. 임금 구성이 노동자와 노조의 시야를 사회적 전환을 조망하지 못하게 짜놓은 생계의 공식 안으로 가두는 것이다.

임금 총액이 동일하더라도 다른 임금 구성은 다른 사회적 정체성을 구성한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문제를 점점 자신들의 문제로 수용해온 인식의 발전만큼, 임금 구성의 계급적·사회적 이해에 대한 노조의 인식과 투쟁도 진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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