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그게 뭐에요?”

내달리던 자전거가 바퀴에 브레이크 거는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멈춰 섰다. 앞서 지나간 아이들까지 불러 세우더니 다짜고짜 물었다. NHK가 1980년대에 제작한 <대황하>는 훌륭한 역사기행 다큐멘터리인데, 그 사운드트랙으로 유명해진 오카리나 음악인 소지로를 좋아해온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두 개의 오카리나를 구했다. 가끔 한적한 밤까지 기다렸다가 지금보다 고즈넉했던 석촌호수에서 연주하곤 했다. 그날 밤, 연주가 한창 절정으로 치닫는 순간이었다. 베토벤 9번 교향곡에서 막 합창을 이끌어내려는 순간에 장내 안내방송을 듣게 된 지휘자의 심정이라고나 할까. 소년의 관심에 화낼 수도 없는 일, 퉁명스럽게 답했다. “오카리나라고….” 이어 들려오는 외침, “야, 오카리나라고래!”

 


 

1992~1993년 무렵은 트렌디 드라마 전성시대였다. <질투>의 최수종과 최진실 커플을 비롯한 여러 선남선녀들의 비슷비슷하면서 세련된 연애이야기들이었다. 이런 흐름은 1994년, 색소폰을 들고 나타난 차인표와 신애라의 <사랑을 그대 품 안에>로 이어진다. 하지만 내게 ‘본방사수’는 없었다. 대학이란 데를 갈 생각은 없었지만 딱히 대안도 없었다. 올림픽공원 근처 재수학원에 앉아 ‘공일오비’ 콘서트장에서 들려오는 <아주 오래된 연인들>을 들어야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비디오대여점에 들렀다가 귀가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골목길을 오가며 이승환과 오태호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을 듣곤 했다.

 

 

 

내 사정과 무관하게 좋은 음악은 계속 나왔다. 강산에와 정원영 그리고 조규찬의 데뷔앨범이 나왔고, 김광진과 김현철도 인상적인 앨범을 발표했다. 록 밴드 에이치투오(H2O)의 《걱정하지마》와 《오늘 나는》, 그리고 ‘낯선 사람들’의 《낯선 사람들》은 숨겨진 보물들이었다. <난 알아요>로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가 갑자기 열리면서 재수생들마저 춤을 따라하고 있었지만, 나는 춤 대신 한국 록 밴드 네 팀의 옴니버스 《Power Together》에 실린 <내 곁에 네 아픔이>를 ‘삐삐 인사말’로 녹음하는 일에 열중했다.

 

 

환경문제는 그때에도 심각했다(지금은 더 심각해져버렸다). 당대 인기가수들이 대거 참여한 환경음반 《내일은 늦으리》의 합창곡인 <더 늦기 전에>는 ‘넥스트’의 신해철이 만들었다. 사실 환경 생태문제는, 그리고 요즘 미세먼지라 부르는 오염물질은 국경을 넘나드는 파괴적인 산업화와 자본주의형 대도시화가 원인이다. 세상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 26년 전 노랫말은 앞으로도 허망할 것이다. “우린 느껴야하네, 더 늦기 전에/ 그 언젠가 아이들이 자라서 밤하늘을 바라볼 때에/ 하늘가득 반짝이는 별들을 두 눈 속에 담게 해주오.”

적당한 점수를 얻자 학원을 그만둔 후부터는 일을 시작했다. 편의점에서 온갖 사람들을 만난 후에 새벽하늘을 보며 자전거 페달을 밟아 귀가하곤 했다. 유흥가 주점에선 주말마다 인내의 한계를 시험 당했다. 그런 곳에서 일할 때엔 카세트오디오로 녹음한 편집테이프를 틀곤 했는데, 편의점에서야 마니아타입의 음악 위주였지만 혼합소주를 파는 주점에선 그럴 수 없었다. 그래도 이상은의 <언젠가는>, 장혜진의 <키 작은 하늘>, 신성우의 <노을에 기댄 이유>, 윤상의 <가려진 시간 사이로>, 부활의 <사랑할수록>처럼 좋은 ‘최신곡’들을 골라 손님들에게 서비스했다. 그러는 사이 친구들은 병무청에 차례로 불려가 김광석이 다시 부른 <이등병의 편지> 속 주인공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1990년대 내내 여러 일을 경험했다. TV드라마 스태프를 하다 현장의 군사-서열문화에 넌덜머리가 났고, 지방합숙 막노동 생활을 할 때엔 담배꽁초를 주워 피워야 하는 비극적 상황까지 받아들이며 애연가의 최고경지에 올랐다. 그래도 노래방은 무제한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연습장이었고, 록 클럽 디제이 겸 멀티플레이어 생활은 일생에 큰 도움이자 이루 말할 수 없는 갖가지 경험을 선사했다. 요릿집에서 일을 마치고 기름에 쩐 몸으로 자전거 대신 광역버스 막차를 기다리면서 굴욕과 극한을 이겨낸 자신을 스스로 치하하기도 했다. 혼자 살면서 ‘잘하면 표가 안 나고 못하면 표가 나는 일’, 즉 가사노동에도 전문가가 되었다. 그런데,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재수생으로 시작하여 록 음악인으로 살던 시기) 이후에도 나는,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여전히 아르바이트-노동자로 살고 있는 것이다. 막 세상에 등장한 ‘천지인’의 <청계천 8가>와 ‘꽃다지’의 <바위처럼>은 긴 생명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호수는 겨울이 끝나갈 즈음에 얼음 깨지는 소리를 낸다. 깊은 밤에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두 개로 이루어진 석촌호수 한 편에 놀이공원이 들어서면서 낮에는 지옥의 전망대에나 들릴 법한 기괴한 비명소리가 메아리치지만, 밤에는 다른 편 호수에서 얼음이 갈라지고 부서지곤 했다. 겨울이 끝나면 호수는 얼음에 갇혀 무늬가 된 나뭇잎들은 놓아주었고, 풀려난 잎사귀들은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을 권리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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