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게 살기 위해서는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2009년 5월18일치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는 빈곤층이 우유, 채소, 주거 등에 단위 상품당 부자들보다 더 많은 돈을 쓰는 내역과 원인을 파헤친다. 가난한 이들에게 가장 불리하고 고통스러운 상품은 무엇보다 금융이다. 만기 2주 이하의 초단기 소액대출(payday loans) 300달러의 수수료가 46.5달러이며, 7일간 이자율은 연리로 환산해 806%였다. 은행 계좌가 없는 사람은 전화요금 청구서를 결제하는 데 10%의 수수료를 냈다.

 

 

미국소비자연맹은 2013년 사고 경력은 없으나 가난한 운전자가 사고 경력 있는 부유한 운전자보다 더 많은 보험료를 내는 광범위한 사례와 통계를 발표했다. 보험사들이 운전 실력보다 학력과 직업을, 결국 빈부의 격차를 보험료 책정의 격차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금융 이외에 어떤 상품도 현실화되지 않은 미래의 위험 때문에 구매자를 미리 차별하지 않는다. 신용등급이 낮은 어떤 가난한 이가 신용대출을 성실하게 상환했다고 일단 가정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가 자신과 똑같이 대출을 성실히 상환한 부자보다 훨씬 비싼 값을 치르고 대출상품을 샀다는 사실은 참으로 불공정하게 느껴진다.

 

신용카드 수수료 역시 가난한 이들 입장에서는 생각할수록 괘씸한 비용이다. 카드사들은 카드 사업 수익의 30%가량을 포인트 적립과 할인 서비스, 무이자 할부, 광고선전비 등 마케팅 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비용을 이루는 소비자 혜택은 카드를 많이 사용하는 부자 소비자들에게 듬뿍 돌아가지만 결국 각종 수수료 가격에 반영돼 모든 카드 소비자가 골고루 부담한다. 재벌그룹 소속의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주유소가 협상력을 이용해 전체 가맹점 평균보다 훨씬 낮은 수수료율을 적용받는 것까지 고려하면, 카드사 마케팅 비용의 최대 수혜자는 부자 소비자인 셈이다.

 

소상공인의 카드 수수료 부담을 제로로 만든다는 목표로 ‘제로페이’가 연내에 서비스를 개시할 전망이다. 제로페이가 성공할 경우 가난한 소비자와 비재벌 상공인들에게 더 불리한 수수료 혜택의 불공정은 일정하게 시정될 것이다. 하지만 제로페이의 성공은 카드 수수료 혜택의 역진성을 이번에는 조세 및 재정의 재분배 기능으로 옮겨놓을 기세다.


[사진 출처 – kbs 뉴스]

 

정부는 여신 기능이 없어 신용카드보다 훨씬 불리한 위치에 있는 제로페이가 소비자의 환심을 살 수 있게 제로페이 사용액에 대한 소득공제율을 신용카드 15%보다 월등히 높은 40%로 올리겠다는 입장이다. 자영업자들에게 매출세액공제를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절반이 면세점 이하인 상태에서 세금의 환급 혜택이 주로 어느 계층에게 돌아갈까? 그렇게 줄어든 세수로 약화될 정부 재정의 재분배 기능 축소는 어느 계층에게 더 불리할까?

 

 

이것만이 아니다. 금융위는 예상되는 가맹점 카드수수료 수익의 악화보다 훨씬 더 괴로운 표정을 지어온 카드사들을 달래기 위해 신용평가업 진출을 허용하려고 한다. 카드사 개인 신용정보 유출 대란 이후에도 안심할 정도의 재발 방지 대책은 없었다. 변변한 공론화 과정 한번 없이 신용평가업을 덜컥 허용하면 금융감독 당국 관료들의 은퇴 이후 괜찮은 일자리는 늘지 모르지만 그 위험은 전 국민에게 돌아온다.

 


이처럼 아직 전망도 불투명한 제로페이의 성공은 상대적으로 작은 사회적 이익에 비해 비용과 위험은 더 커질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좋은 방안은 2011년 10월 홍준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공공의 영역에서는 아마도 처음 제안했다. 그는 “신용카드는 준화폐이므로 국영카드사를 설립해야 한다”고 했다.

 

독점일 수도 있고 여의치 않으면 민간 카드사와의 경쟁체제일 수도 있는 국영 카드업은 아래와 같은 공익을 모두 충족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국영 카드업은 가맹점 수수료를 제로로 또는 현저히 낮출 수 있고, 현금서비스 대출의 약탈적 이율을 가난한 이들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내릴 수 있으며, 금융 관료들과 민간 금융기관의 사익 동맹이 추구하는 섣부른 규제완화의 위험을 제거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적 편견을 거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사고는 신용카드업을 왜 국영으로 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너무나 중요한 금융의 한 분야를 땅 짚고 헤엄치기로 돈을 버는 민간 기업에 굳이 맡겨 여러 골치 아픈 문제를 만들어야 하는지를 물을 것이다. 그 답변은 궁색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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