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1일, 만남의 끈을 발견했다. ‘노동절’에 공사현장 한복판에 홀로 남겨진 작은 건물 주변으로 노동의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온종일 노래하고 연주한 60여 팀의 밴드와 싱어송라이터 그리고 1,000여명의 음악애호가들이 모여들었다. 신촌 재개발 지구에 있던 칼국수집 ‘두리반’이 처한 부당함에 공감을 표하기 위해서였다. ‘전국 자립 음악가 대회 51+’ 혹은 ‘뉴타운 컬처 파티 51+’로 명명된 이 페스티벌은 축제이자 시위였다. 이 운동을 둘러싼 인연으로 두 편의 음악다큐멘터리 <파티51>과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에도 ‘출현’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오래된 인연 하나를 더 발견한다. 1997년, 새 운동화를 신고 집안을 누비는 아이마냥 악기와 악보를 안고 지내는 날이 많았고, 시끄러운 지하 록 클럽 바 안에서 묵묵히 움직이는 날도 많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전과 다른 음악을 하고자 결성한 나의 밴드가 ‘결애사(결혼한 애인 교통사고사 비관자살)’와 공연한 적이 있다. 전날 사고를 당한 나는 한쪽 눈이 시뻘겋게 변하고 두개골이 통증에 매몰된 상태로 공연했다. 진통제로 버티다 다음날 병원에 가봤다가 바로 입원처분 당했다. 얼굴뼈가 부러진 줄도 모르고 베이스기타를 튕기며 노래했으니, 이 대목에서 록의 힘과 장인의 투지에 경의를 표해주셔야 한다. 그런데 그날 함께 했던 ‘결애사’의 전상현 씨가 5월 1일 페스티벌에 참가한 ‘휘루’와 ‘TV옐로우’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휘루’의 <아침에 너를>은 숨겨진 명곡이다).

 

세상은 급변하고 있었다. 훗날 <나는 자연인이다> 출연자를 대거 양산한 ‘IMF 시대’가 도둑처럼 찾아왔다. 이 잔인한 시절에도 음악은 꾸준히 말을 건넸다. 《B.C 603》(1989)을 시작으로 히트송을 쏟아내며 라이브 가수로 자리 잡은 이승환은 외국인 음악인들과 유희열 등을 대동하고 다섯 번째 앨범 《Cycle》(1997)을 발표했다. ‘토이’는 《Present》를, 이상은은 《외롭고 웃긴 가게》라는 좋은 작품을 내놓았다. ‘시나위’의 <은퇴선언>은 ‘서태지와 아이들’을 빗댄 것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고, ‘산울림’의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는 신선했다.

 

 

그 중에서도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는 소중하다. 김현철, 조동익을 차례로 만나며 다른 경지를 밟아온 장필순이 윤영배까지 만나며 아티스트로서 가장 높은 경지에 올라선 작품이며, 1990년대를 대표하는 자리에 놓일만한 자격 또한 충분하다. 일상의 아름다움부터 생태적 생활관 그리고 삶을 성찰하는 메시지가 아름다운 선율과 허스키한 음성에 실려 나왔고, <TV, 돼지, 벌레>와 <빨간 자전거 타는 우체부>는 성찰하는 포크와 모던 록의 조화를 믿기 힘들 만큼 근사하게 완성했다. 표제곡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는 명곡의 덕목을 거의 모두 품고 있다. 쓸쓸하면서 포근한 서정, 공간을 울리는 소리, 자극적이지 않되 감동적인 기법이 하나가 된다. 게다가 대중의 사랑까지 받았다. 이 노래를 여러 번 들었다고 생각하더라도 다시 들어보면 장담컨대 떨림을 경험할 것이다. 그건 마음과 마음의 만남이다.

 

역시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있던 인디음악은 공연장을 찾는 관객의 수나 음반의 판매량보다 훨씬 중요한 가치를 얻어갔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 유포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과 예술관이 이쪽 애호가들과 그 주변에서 흘러나와 공유되었으며, 젊은 문화가 확산하는 촉매가 되었다. 그리고 상징과도 같은 노래, ‘델리 스파이스’의 <챠우챠우>가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큐어(The Cure)’의 <Disintegration>과 상당히 유사한데,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너의 목소리”가 지칭하는 대상은 풍문처럼 평론가라든가 챠우챠우라는 견종의 ‘개소리’가 아니라, 어쩌면 창작자로서 단호히 거부해야 하지만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거부할 수 없는 어떤 만남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고상하고 다양한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에 나의 얼굴은 강철덩어리와 만난 덕분에 장기간 입원 중이었다. 나중에 국회에서 만나게 될 친구 ‘주호’가 병문안을 왔다. 그는 얼굴에 무슨 솥뚜껑 손잡이 같은 걸 붙이고 있는 환자의 바람에 부응하며 병원 구석진 곳에서 함께 담배를 피워주었다. 인생의 히든트랙 같은 장면이다.

 

 

한 해 앞서가자면 ‘코코어’의 데뷔앨범 《Odor》(1998)의 히든트랙도 특별했다. 애잔한 분위기, 자연스레 튀어나오는 “너는 어디에, 밥은 먹었는지”라는 노랫말, 자세히 들어보면 (연인이 아니라) 집 나간 개나 고양이에 대한 걱정이 아닌가 싶은 이야기, 그럼에도 서정을 간직한 곡이 ‘코코어’의 <비 오는 밤>이다. 발표 당시엔 제목도 없었던 이 노래를 지금까지 꾸준히, 가끔 손에 맥주잔을 들고 책상에 다리를 길게 올려놓은 자세로, 듣곤 한다. 긴 시간이 흘렀어도 이상하게 아련한 이유는 아마도 청춘들이 괜히 들뜨고 달떠 있었던 1990년대 무렵의 바람이 깃들어서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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