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자라 서울에 온 이후, 청소년기 첫 단짝은 대갈이었다. 혜화동에서 강동중학교(지금 송파중학교)로 전학 온 대갈이, 등하굣길에 소주병을 숨겨두고 함께 마신 우간다, 이렇게 셋은 같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녔다. 어린이대공원에서 소주 병나발을 불기도 하고 밤새 라디오를 틀어놓고 놀다 아침에 방송되는 음악에 맞춰 국민체조도 했다. 나중에 우간다는 목포로 돌아갔고, 20대 중반 이후 대갈이와도 소식이 끊어졌다. 고등학교에서는 (한때 배명고등학교 일진이었다가 권좌에서 밀려난) 투투와 부시맨이 음악과 영화에 조예가 있어 어울렸는데, 졸업 후에 투투가 오카리나를 빌려갔다가 두 동강 낸 이후로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무리는 메기를 첫 단추로 이어진 칠득이와 노가리 등이다. 고개 쳐들고 잠실 동네를 활보하며 뚝방전설을 남긴 예닐곱의 무리가 모인 곳은 우습게도 교회였다. 그들 중에서 가장 늦게 알게 되었지만 가장 많은 추억과 음악을 나눈 친구가 뿌리였고, 그가 청소년기 마지막 단짝이다. 둘은 라디오 심야음악방송을 즐겨 들었던 터라 제스로 툴(Jethro Tull)의 <Elegy>를 우리의 주제곡으로 삼았다. 그 곡이 담긴 레코드를 산 음반점 자리에 옷가게와 아이스크림 체인점이 들어서는 동안 대학교에 기부금이나 바치는 학생이 되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졌으며, 잊히고 잊어갔다. 1990년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때로 돌아가 보면 노래 속에 재미있는 장면들이 많다. 탁자 위에 놓인 사진을 보며 헤어진 연인의 이름을 불러본다거나(신승훈, <미소 속에 비친 그대>), 공중전화 부스에서 떨리는 수화기를 들고 동전 두 개를 넣지도 않은 채 눈물 흘리며 사랑한다 말하는(‘015B’, <텅 빈 거리에서>), 지금으로선 상상만으로도 민망한 청승가요들이 신세대 감성을 대표하는 음악들로 떠올랐다. 물론 노랫말이 아니라 멜로디와 사운드에 감응했기 때문이지만. 그러나 1990년대 말은 달랐다.

 

 

 

훌쩍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삐리리리~ 삐~ 삐” 소리를 내며 연결하는 PC통신 파란 화면에 머리를 박고 앉아 있었다. 누군가 접속하면 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은 전화기를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첨단 네트워크’ PC통신은 주체적인 음악마니아들의 소통창구이자 새로운 음악담론을 이끌어갈 인재들의 산실이었다. 밴드 활동으로는 그다지 바쁠 일이 없었던 탓에 PC통신에 음악이야기를 쓰곤 했는데 이 취미가 훗날 직업이 되어버릴 줄은 몰랐다. 지금은 옛말이 되었으나 당시엔 유행어였던 ‘세기말’의 정점기인 1998년과 1999년은 한국 인디음악사에 무지막지한 시간이었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들을 음악과 쓸 이야기가 넘쳐났다.


[사진 – 영화 ‘접속’의 한 장면]

 

귀곡메탈이라 불린 ‘레이니 선’의 《Porno Virus》, 백현진이 활동한 ‘어어부 프로젝트 사운드’의 《개, 럭키스타》, ‘루시드 폴’이 노래하던 ‘미선이’의 《Drifting》, 펑크스타 ‘크라잉 넛’의 《Crying Nut》, 인디음악계의 거목이 된 ‘허클베리 핀’의 《18일의 수요일》, <사막의 왕>이라는 명곡을 남긴 ‘아무밴드’의 《이.판.을.사》, 본격 테크노 음악을 선보인 ‘달파란’의 《휘파람 별》, 전설이 된 블랙메탈밴드 ‘새드 레전드’의 《Sad Legend》, 지금은 ‘민박집 사장’으로 유명한 이상순과 ‘롤러코스터’의 《Rollercoaster》, 이런 수작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완성을 이룬 예수라기보다는 예수의 도래를 선포한 세례 요한에 가까웠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세례 요한이 죽지 않고 계속 살아남아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많이들 기억하겠지만, 태풍과 집중호우에 의한 피해가 발생하면 거국적으로 ‘수재의연금’을 걷었다. 특별방송에는 흰 봉투를 든 사람들과 돼지저금통을 들고 나온 어린이가 긴 줄을 만들며 서 있다가 짧은 인터뷰를 마친 후 성금을 넣고 사라지곤 했다. 알고 보니 그 돈은 수재민에게 직접 전달되는 대신 정부의 재난지원기금으로 적립되었다. 그러니까 TV뉴스를 보며 안타까워했던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건 아니었다. 나중에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어쩌면 엇갈린 인연, 타이밍이 맞지 않은 사랑과 비슷한 면이 있다. 21세기에도 곳곳에서 그런 엇갈림과 만남이 이어지고 있을 테고.

이 연재의 첫 글 첫 부분에 등장한 친구가 ‘뿌리’다. 그를 전혀 예기치 못한 시간과 장소, 그러니까 봄날 국회에서 만나고 나니 입 안에서 굴리던 사탕처럼 점점 작아지고 사라지던 기억이 어떤 거리와 어떤 건물의 공기로 순식간에 되살아났다. 그날 밤, 우리는 여기저기 자리를 옮겨가며 밤늦도록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지막 코스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잠실 어느 골목에 있는 LP바였고, 우린 함께 <Elegy>를 들었다.

 

 

 

나도원의 음속여행 ’90 연재를 마칩니다. 읽어주시고 관심 가져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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