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마을에 찾아온 첫번째 손님,

프리다수진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장수에 사무치게 아름다운 사람이 왔다. 약자들 곁에 늘 노래로 함께하는 민중가수 프리다 수진. 아마도 거의 십 년 만일 거다 우리가 이렇게 얼굴을 마주한 건.

 


[민중가수 프리다 수진. 출처 – 프리다 수진님의 블로그]

 

내가 이십 대일 때 수진씨를 처음 알았고, 장기수 선생님들을 위한 공연도 함께했고, 이랜드 투쟁 때도 만났고… 그래, 그게 다였다. 수진씨 말처럼 우린 이십 년 가까운 그 긴 시간 동안 얼굴 마주 바라본 시간은 다섯 번이 간신히 되거나 말거나일 것이다.

 

페이스북이 수진씨와 나를 다시 이어 주었다. 나는 이이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리라 여겼지만. 내가 가진 기억으로 용기 내서 페친 신청을 하고, 참 고맙게도 나에 대한 기억을 끌어내 주어서 예전에 나에게 언니라고 불러주었듯이 다시 나를 언니라고 불러주었다.

 

다섯 번쯤의 만남으로 한 사람을, 그 삶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수진씨도 나를 잘 모르고 나도 수진씨를 잘 모른 채로 그럼에도 뭔지 모를 그 인연의 끈으로 페북 이야기를 주고받았을 뿐인데… 수진씨가 이 뜨거운 여름보다 더 뜨거운 용기를 내었다. 홀로이 우리 집에 찾아오겠다고 했다. 뛸듯이 반갑고 설레는 마음과 잘 모르는 이 친구를 어찌 맞이할까, 하는 걱정으로 수진씨가 오는 그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그이가 왔다. 프리다수진이 장수에 오고야 말았다. 낯익음과 낯설음이 뒤섞인 첫만남. 기차역에서 그이를 맞이하고, 가장 먼저 지리산 정령치로 향했다. 빨치산의 정기와 혼이 온가득 서려 있는 그곳으로 가는 길, 아니 기차역에서 수진씨를 만난 그 순간부터 나는 느꼈다, 알 것 같았다. 이이랑 나는 맺어지겠구나. 아름다운 인연이 시작될 수 있겠구나…


[사진 – 동학 최제우의 혼이 서린 교룡산성에서. 내 책을 전달하는 사진이 영 흐릿하게 나와서 합성 사진으로 대신한다.]

 

문화노동자의 현실부터 이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까지 밤늦도록 이어진 우리의 술자리는 참으로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나는 문화노동자들을 만날 때 참으로 많은 것들을 조심하고자 애쓰는데(이이들은 예술가들이니까, 함부로 노래건 뭐건 하면 안 된다고 믿고, 내 기분 꾹 누르려 참 애쓴다.) 수진씨는 그런 내 조심성을 무장해체시키는 바람에 야밤에 기타를 들고 나와 나의 노래를 하고 수진씨의 노래를 듣고, 그렇게 산골 혜원 인생에 길이 남을 짜릿한 밤을 나누었다.


[사진 – 수진씨에게 안겨준 처음이자 마지막 밥상!]

 

수진씨는 어머니 고향이 전주란다. 세상에나! 수진씨의 그 호소력 짙은 아름다운 목소리가, 소리의 고장 전주와 이어졌을 거라는 쓸데없는 짐작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또 모르는 분들은 모를 수 있지만, 수진씨는 노래를 정말 잘한다. 아주 많~이 잘한다. 게다가 약자들과 함께하는 마음은 그 잘하는 노래보다도 더 깊고 넓다. 노래도 마음도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다. 우리 시대가 보듬고 지켜주어야 할 참으로 귀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프리다수진이 전라도에 노래 연대를 하러 올 때, 숙식은 내가 무조건 책임진다! 그러니 지리산 언저리에서 벌어지는 우리네 투쟁의 현장에서 부디 수진씨를 많이 불러 주면 좋겠다. 그 덕에 나도 수진씨를 많이 볼 수 있을 테니까…

 


1집, 2집 앨범을 낸 수진씨가 앨범 판매를 주저하는 모습에 잔소리를 했다. 제발 그러지 말라고… 열 말 필요 없이 돈 쥐어 주고 앨범을 주문했다. 그리고 그 앨범이 집으로 왔다.

1집은 십 년 전에 들었는데 2집은 이번에 처음 듣는다.

 

좋았다, 마구 좋았다.

멋졌다, 열나 멋졌다.

 

싱어송라이터 이수진이 가진 힘을,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더 이야기할 거리들은 분명히 있다. 나중에 수진씨와 나눌 것이다, 뭔가 해야 할 것만 같은 그 이야기는. 허나 다 떠나서 나는 수진씨 2집에 제대로 물들었다.

수진씨가 보이지는 않아도 그 목소리가 들리고 그 마음까지도 들렸다. 그냥 편하게 표현하면 노래만 잘하는 게 아니라 노래에 삶을 그려내는 그 감수성이 참말 탁월하다.

더 깊은 이야기는 수진씨랑 이어서 해야겠지만 모래사장에 숨어 있는 바늘이라도 찾아낸 듯 나는 기쁘기만 하다. 노래를 잘하고 신심을 담은 노래를 잘 만든다는 것. 이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그걸 프리다수진이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해나갈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길에 몸과 마음을 내걸고 싶은 우리들에게 프리다수진이란 민중가수가 있다는 건, 정말 놀라울 만큼 커다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수진씨가 장수에 다녀간 뒤로 난 그 놀라움과 행복에 푹 젖어 정말 뜨겁게 애틋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내가 원래 이렇게 건조한 문체를 글자로 남기는 걸 못 하는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그러고 있다. 프리다수진을 알아 가고 느끼는 순간이 너무 벅차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얼마전에 알게 된 정현종 시인의 시, ‘방문객’을 떠올린다. 프리다수진이 장수에 왔다는 건 적어도 나에겐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이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는 프리다수진이 지나온 시간에 더해, 이 세상 많은 약자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 같이 담겨 있기에… 그 많은 이야기를 안고 장수로 날아든 프리다수진에게 정말 깊고 시린 고마움을 담아 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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