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먼 곳에서 산골로 날아든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 백야가 한창이라는 핀란드! 엊그제 찾아든 산골손님 일행으로 함께 발걸음한 이 남자분과 이박삼일 산골여행을 함께 나누었답니다. 맞이하기 전만 해도 음식 걱정, 말도 걱정, 거기에다 설레는 마음까지 더해져서 아주 두근두근 했답니다. 터미널에 마중 나가 첫 만남을 가진 순간 뭔가 느낌이 오더랬죠. 말도 음식도 다른 우리지만 서로 잘 통할 것 같은. 핀란드에 살지만 한국에 더러 오가서 김치 같은 우리 음식들을 잘 먹게 됐다는 얘기를 미리 듣기도 했고요.

첫날 저녁식사에 과감하게 강된장에 호박찜 그리고 감자호박전을 내밀었어요. 호박잎을 요리조리 싸먹는다고 알려주고, 요거이 한국 여름밥상의 백미라고 자랑도 했는데 기쁘게도 알려준 대로 잘 먹습니다. 거기다 감자호박전도 진짜 맛나게 먹는 거예요. 우리 음식이 먹혔구나!

고렇게 첫 산골밥상을 내주곤 바로 이어서 산골 숯불구이를 대령했습죠. 고기가 나름 주식이라는데 채소만으로 끝낼 순 없으니까요. 뜨거운 여름밤, 산골손님과 인연이 깊은 옆지기께서 땀 뻘뻘 흘리며 숯불 만들고 고기도 맛나게 구워서 고기 못 먹는 저까지 행복해질 만큼 푸근하고 넉넉한 가든파티를 벌였어요.

여기서! 어찌 음악이 빠질 수 있겠나이까. 귀동냥으로 핀란드 청년이 기타 쪼끔 친다고 들었기에 냉큼 기타를 건넸고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이 산골 여름밤을 촉촉히 적셔 주었답니다. 제가 가만히 있을 수 있나요. 답가를 건넸죠. 그것도 여러 노래로! 그 가운데 아침이슬을 부르고서는 열심히 콩글리쉬로 노래 설명을 했네요. 고등학교 뒤로 영어공부를 1퍼센트도 한 적이 없는지라 단어가 안 떠올랐지만 더듬더듬 주저리주저리 흘러나오는 콩글리쉬를 새겨듣고 이해해 주는 멋진 청년 덕분에 어느 때보다 맘껏 영어 회화(?)를 즐겼답니다.^^

 

핀란드 사람과는 생애 첫 만남이었는데 이박삼일 음식과 노래와 마음까지 넘칠 만큼 나누면서 가본 적 없는 그곳, 핀란드가 괜스레 그립고 미녀들의 수다에 나왔던 따루도 생각나고 흥분과 기쁨과 행복함이 넘실대던 이박삼일이 지나가고야 말았습니다.

모든 핀란드 사람이 그런 것만은 아니겠지만 배려심과 따스한 마음, 순수함과 넉넉한 가슴, 거기다 음악을 사랑하고 산골새댁 콩글리쉬 개그까지 이해하고 웃어주는 한 사람 덕분에 지난 이박삼일, 제가 꼭 핀란드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답니다. 시골마을을 오롯이 보고 싶었다던 핀란드 청년은, 아름다운 곳에 머물게 해줘서 진심으로 고맙고 행복하다며, 꼭 다시 오겠노라는 언약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아직 한국말이 익숙하지 않은 그이에게 사진으로라도 이곳을 기억해 달라고 전하며 제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에 사인을 담아 건넜습니다. 이야기는 콩글리쉬로 어찌 되던데 글만큼은 도저히 안 되겠어서 구석방에 들어가 컴퓨터 켜고는 난생처음 번역기 돌려서 한글과 영어로 동시에 사인을 남겼습니다.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영원히 잊지 못할 시간을 선물해 준 아름다운 핀란드 청년이 참말 그리운 밤입니다. 우린, 아마,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 이 그리움을 막걸리 한 모금에 담아 훌쩍 넘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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